이재희 목사.
이재희 목사.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만드실 때 흙을 가지고 덩어리를 뭉쳐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드셨다. 하나님의 생기, 하나님의 영이 속에 들어가기 전 이 흙은 흙덩어리, 육의 덩어리에 불과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아담의 콧구멍에 성령의 생기를 불어넣으니 생령이 되었고 숨을 쉬게 되었다. 이 호흡은 우리 인간들에게 일반적으로 주신 하나님의 은혜이다.

요한복음 623절에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 생기를 보호하기 위해 외형을 만드셨다. 그래서 영이 떠나버리면 우리는 그때부터 썩어진다. 아담의 범죄로 인해 인간은 죄악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둘째 아담, 예수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사망의 저주를 소멸시키고 해독시키셨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40일 후 승천하신 다음 제자들은 성을 떠나지 않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문을 잠그고 기도했다. 그 기도는 모든 것을 제쳐놓고 밤낮으로 오직 예수님만 향한 전심전력의 기도였다. 그리고 열흘째 되는 날 부활하신 후 50일째 되는 날 오순절에 성령이 임하였다. 성령이 임하니 기도하던 120문도 제자들의 옛 생각들이 사라지고 재창조가 되었다. 생각이 살아나고 힘이 났다. 비겁하고 배신하며 예수님을 저주까지 했던 베드로도 문을 박차고 나가 예수가 부활했다고 예수는 다시 오실 것이라고 시편 16편을 인용하며 구약에서, 시편에서 다윗이 예언했던 내용이 그대로 이루어졌다고 말씀을 전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바로 성령받은 사람의 행동이다. 오늘 우리의 썩어질 옛 습관과 생각, 잘못된 신앙관에 성령을 부어 주시며 재창조를 이루어 축복의 길로 인도하시는 것이다.

베드로처럼 스데반 또한 예수님에 대해 증거 하기 시작했다. 성령이 충만했던 스데반집사가 예수님에 대해 증거하니 바리새인들은 마음이 찔렸고, 스데반을 향해 돌을 던졌다. 그러나 스데반은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예수께서 하나님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말하되 죽을 지경에 하나님의 영광이 보인 것이다. 당시 유대인들은 성령이 없는 육의 덩어리였기 때문에 스데반의 소리가 듣기 싫어 귀를 막고 큰소리를 치며 성 밖에 내치고 돌로 쳐서 죽여 버린다. 창조의 영이신 성령, 그 생기는 오늘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말씀을 따라갈 때 하나님의 생기가 우리 안에 들어와 우리는 산 영혼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똑같이 숨을 쉴지라도 하나님을 믿지 않고 진리의 말씀대로 따라가지 않으면 육신은 호흡할지라도 내 속에 영혼, 생명은 감각을 잃어버려 영의 아픔과 고통을 느끼지 못하고 죽은 영혼이 되어버린다.

내 안에 성령이 없는 육에 속한 사람은 땅의 것, 생계유지에 대한 것, 물질 등 육안으로 보이는 것만 중요하게 여기며 산다. 모든 소망을 땅의 것에 두고 간다. 사단이 물질, 명예 등으로 땅의 차원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안내하여 멸망의 길로 인도하고 결국 구원받지 못하게 한다. 하나님을 좇을 때 오는 영과 육의 복을 바라보지 못하고 사단의 유혹과 미혹에 끌려 다니게 되는 것이다. 또한 입술로만 주님을 외치며 행실 속에 예수의 능력을 갖추지 못한 자도 영에 속한 사람이 아닌 육에 속한 사람이며, 성령을 잃어버린 사람, 죽은 사람이다. 창조의 영이신 성령을 받아들여 우리의 생각 등 모든 것이 하나님의 재창조 속에 살아가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광야로 나왔을 때 홍해 앞에서 길이 막혔다. 그때 애굽의 군대가 추격해 왔고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홍해를 가르시며 백성들을 건너게 하셨다. 이것은 물세례를 의미한다.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너희들의 옛 모습은 여기서 죽었다고 의미하는 것, 이것이 침례이다. 그러고 나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밤낮 지켜주시고 인도하신다. 불은 성령을, 불기둥은 바로 불세례를 의미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령의 인도를 받고 간 것이다.

우리는 내가 지금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내 생각과 행동이 지금 어디를 향해 있는지 내가 지금 하늘에 소망을 두고 있는지 아니면 온통 이 땅에 소망을 두고 예수님을 믿고 있는지 실질적으로 깨닫고 느끼며 회개하고 돌이켜야 한다. 성령의 사람은 내가 가야할 곳이 바로 저 천국이기 때문에 오직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산다. 성령의 역사를 위해 교회는 육의 덩어리, 흙덩어리에 머물러 있는 자들에게 말씀을 불어넣어 예수님과 함께 살 수 있도록 산 영혼으로 만드는 곳이다. 육의 덩어리는 열등의식, 비교의식 속에 살아가지만 하나님의 사람, 성령의 사람은 예수님의 마음을 담아 그분의 뜻대로 사는 창조의식을 가지고 산다. 하나님은 창세기에서부터 이미 우리에게 창조적인 능력을 주셨다. 그렇기에 우리의 마음이 늘 날마다 새로워져야 한다.

분당횃불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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