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등

아버지의 등에서는
늘 땀 냄새가 났다

​내가 아플 때도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어머니는 눈물을 흘렸지만
아버지는 울지 않고
등에서는 땀 냄새만 났다

​나는 이제야 알았다
힘들고 슬픈 일이 있어도
아버지는 속으로 운다는 것을
그 속울음이
아버지 등의 땀인 것을
땀 냄새가 속울음인 것을

문 현 미 시인
문 현 미 시인

중학교 2학년 초봄, 그날, 그때의 봄 기운은 지금도 서늘하게 남아 있다. 중1 마지막 성적표가 하위권이었던 나는 겨울 방학을 보내면서 다짐을 했다. 2학년이 되면 꼭 열심히 공부하겠다고. 그렇게 새 학기를 맞이했고 첫 성적표를 받았다. 뜻밖에 최상위권이었다. 무척 들뜬 마음으로 집에 갔는데 대문은 열려 있고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현관 앞에 신발들이 잔뜩 놓여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고 했다. 

친지들이 장례 얘기를 나누고 있었고 어머니는 이미 현장으로 가고 안 계셨다. 주룩주룩 비가 내리던 밤이었고 몸도 마음도 얼어 붙어 있었다. 버스를 타고 2시간 남짓 지나 도착했다. 아버지는 하얀 천에 쌓인 채 놓여 있었다. 아버지의 등은 커녕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채로 그만 먼 이별을 하고 말았다. 

아무리 아버지의 등을 떠 올려 보려고 애를 써도 잡히지 않았다. 직업 상 객지 생활을 하셨던 아버지는 주말이 되어서야 잠시 볼 수 있었다. 함께 있을 때는 대부분 밤 늦게 들어 오셨기에 그저 열심히 일하시는 아버지, 말수가 적은 엄하신 아버지로 남아 있다. 이 땅의 아버지들은 그렇게 묵묵히 땀을 흘리시며 일하셨을 것이다. 

하시인의 시 <아버지의 등>을 읽는 내내 뭉클했다. 아버지들이 짊어진 삶의 무게가 ‘아버지의 등’이라는 상징을 통해 절절히 전해진다. 첫 연“아버지의 등에서는/늘 땀 냄새가 났다”에서 고단한 아버지의 일상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이어서 ‘어머니의 눈물’대신‘아버지의 등에서 나는 땀 냄새’가 대비된다. 즉 아버지의 땀 냄새는 바로 그의 깊은 눈물이다. 시적 화자는 마지막 연에서 “아버지는 속으로 운다는 것을”깨닫는다. 그래서 속울음이 아버지 등의 땀 냄새라고 토로하기에 이른다. 좋은 시가 아득한 그날의 아버지와 동행하게 헸다. 삶에 대한 깊은 관조에서 우러나오는 시 덕분에 나의 아버지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의 아버지를 묵상해 본다. 아버지의 등이 몹시 그립다. 그 땀 냄새를 맡고 싶어 눈물이 나는 계절이다.                                               

백석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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