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의 경제정의 한마디로 나눔

성서의 경제정의는 한마디로 나눔이다. 기독교는 나눔과 섬김을 통해 하나님의 참사랑을 완성한다. 하나님은 참사랑이시다. 때문에 기독교를 사랑의 종교, 생명의 종교라고 말한다. 헌데 오늘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서 한국교회와 세계교회는 사랑이 실종된 종교로 평가받기 시작한지 오래다. 더욱이 신자유주의경제체제서 인간 모두는 혼자만 살겠다고 아우성친다. 특히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이 하나님에게 예속되어 있다는 것을 잊고 살아간다.

세상과 분리되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렇다보니 모두가 편법을 동원해 출세하려고 달려든다. 모두가 많이 가진 것을, 높은 자리에 앉는 것을 성공이라고 말한다. 인간 모두가 불법과 합법의 경계를 교묘하게 이용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세상이 말하는 성공에만 매달린다. 특히 신종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이 같은 모습은 곳곳에서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교회의 모습은 더욱 그렇다. 교회는 세상을 품지 못했다. 나를 개방해 너를 받아드리지 못한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곤궁한 삶을 사는 이웃을 나 몰라라 한다. 초대교회는 당시 주류였던 바리새적인 사람들을 교회에서 몰아내고, 세상을 품는 새로운 교회로 태어났다. 모두가 함께 사는 교회, 함께 사는 사회를 만들었다. 당시 교인들은 자신이 가진 것 모두를 가지고 나와, 자신에게 필요한 만큼 가져가는 새로운 교회를 창립했다. 중세이전까지 이러한 교회의 전통은 철저하게 지켜졌다.

중세이전의 교회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교회였다. 부자들의 가난한 사람에 대한 고리대금업도, 교회법으로 막았다. 한마디로 성경의 경제정의인 나눔을 철저하게 실천했다. 그 결과 교회는 크게 성장했고, 세계적인 종교로 발전 할 수 있었다. 또한 기독교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종교로 자리매김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중세로 넘어와 교회가 봉건영주들과 결탁해 세속화되면서, 교회는 더 이상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종교에서 이탈해, 부자들을 위한 종교가 됐다.

기독교의 전통인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는 종교에서 이탈했다. 타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치유 할 수 없을 상황에 이르렀다.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 인간의 속성을 그대로 드러냈다. 당시 모든 사람의 삶과 경제가 종교에 예속되어 있었다. 삶과 경제가 천상의 삶을 위해 있었다. 이에 루터는 종교개혁을 단행했다. 중세의 종교개혁자들은 천상에서의 삶도 중요하지만, 지상에서의 삶도 천상의 삶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학설을 내놓았다.

한국교회 가던 길 멈추고, 헌혈 등 생명나눔운동 다시 벌여야
한국교회가 벌인 헌혈운동 혈액 수급에 기여, 장기기증운동도

생명의 종교, 사랑의 종교 무색

문제는 한국교회가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에서 종교개혁의 전통을 따른다고 말하면서, 신의 자리를 돈으로 대치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금융, 돈이 최고가 된 종교가 됐다. 교인들이 드린 헌금 대부분은 십자가 탑을 높이는 데만 경쟁을 벌였다. 이웃을 위해서 사용했다는 말은 거의 들리지 않는다. 일부단체가 벌이는 이웃교회의 고통에 참여한다고 하며, 벌이는 사랑실천도,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아 지원하는 일이 다반사이다.

최근 모단체가 벌이는 사랑의 집짓기 운동만 보아도 그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이 단체는 수 십 억 원에 달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여기에 들어가는 재정의 일부는 교회가 감당하고 있기는 하지만, 상당부분은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아 진행하고 있다는 지적은 매우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또한 탈북민 및 가난한 이웃을 지원하는 재정도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을 지원받아 대신한다.

더 이상 기독교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종교에서 멀어지고 있다. 성서의 경제정의인 나눔도 실종됐고, 이웃을 위한 사랑도, 생명 나눔도 실종됐다. 그렇다보니 가난한 교회는 더욱더 가난해지고, 부자교회는 더욱더 부자 되는 부익부, 빈익빈현상이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다. 부자교회는 부자교회끼리, 가난한 교회는 가난한 교회끼리 어울린다. 이것은 사회도 마찬가지며, 교인들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신종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후 이 같은 현상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교인수가 20%, 아니 40% 줄어들었다는 통계도 나왔다. 가난한 사람을 지원하던 재정은 자연스럽게 중단됐고, 작은교회들은 교회운영도 어렵다고 아우성친다. 이는 교회 안에서의 시행하던 나눔섬김이 실종된 결과라는데 이의가 없다. 대부분의 중소형교회들은 가난한 사람을 지원하던 사회복지 재정과 사랑의 실천 재정, 해외선교비를 중단했다.

적십자사의 요청으로 실시하던 사랑의 헌혈도 중단됐다. 대신 그 자리에 한국교회가 문제의 집단으로 규정한 신천지 등이 대신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사실 실종된 나눔과 봉사의 자리를 한국교회가 문제의 단체로 규정한 신천지를 비롯한 단체들이 메우고 있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크다. 한국기독교지도자협의회는 30여년 동안 적십자의 요청으로 국민일보와 함께 부활절 전에 사랑의 헌혈을 실시했다.

한국교회가 해야 할 일 신천지에

당시 한국교회의 사랑의 헌혈은 국내의 모자라는 혈액을 수급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이것에 대해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이 기간에 혈액이 남아 사랑의 헌혈을 112달 나누어 참여해 줄 것을 요청 할 정도였다. 충현교회를 비롯한 여의도교회 등 중대형교회들이 사랑의 헌혈운동에 대거 참여했다. 국내의 모자라는 혈액의 상당부분을 교회가 담당한 것이다. 교회들은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고난에 동참하고, ‘보혈의 피를 나눈다는 의미에서 헌혈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사순절기간에 헌혈차량이 모자라 헌혈에 참여의사를 밝힌 교회들을 수용하지 못 할 정도였다. 적십자사는 헌혈의사를 밝힌 교회들을 수용하기 위해 사순절이 아닌 다른 기간에 헌혈 할 수 있도록 교회와 조정하는 일까지 일어났다. 이렇게 한국교회는 예수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를 나눠, 생명의 살리는 헌혈운동에 적극 동참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지도자협의회의 사랑의 헌혈운동은 유명무실해졌다.

한국교회가 적십자사의 사랑의 헌혈운동에 참여했다는 소식은 전혀 들리지 않는다. 기독교가 생명의 종교, 사랑의 종교라는 말이 무색해졌다. 그 자리를 한국교회가 문제의 단체로 규정하고, 교회내 출입을 금지시킨 신천지가 대신하고 있다. “신천지는 1개월 동안 18천여명이 헌혈운동에 참여했다고 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가 밝혔다. 지도자협의회 산하 사랑의 헌혈운동본부를 통해 한국교회가 감당했던 일을 신천지가 감당하고 있다는 얘기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단체는 적십자의 요청으로 헌혈나눔운동에 참여했다. 한국교회가 감당하던 사랑의 헌혈운동, 나눔운동을 한국교회가 무시무시한 단체로 규정하고, 교회출입을 금지한 신천지에 넘겨주는 꼴이 됐다. 무엇보다도 신종바이러스감영증(코로나19)으로 해외의 혈액수입이 원활하지 않은 상태에서, 대한적십자사가 한국교회에 요청하던 헌혈운동을 신천지에 요청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비상혈액이 3일치 밖에 없던 상황서, 신천지교회의 참여로 6일치를 확보할 수 있었다는 적십자측 관계자의 말에 한국교회는 그냥 지나쳐 버릴 수 없다. 비상이 걸린 혈액을 충당하는데 신천지가 큰 역할을 감당했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한국교회의 강남B교회 K목사는 코로나19 확산의 진원지 역할을 한 신천지가 대한적십자사의 요청에 의해 헌혈에 참여한 것은, 이것에 대한 빚을 갚는다는 의미가 크다. 신천지예수교회는 정부나, 국가기관이 요청하면, 이것보다 더한 것도 해야 한다면서, “신천지 예수교회에 속한 18천여명이 헌혈에 참여했다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신천지는 이러한 행동으로 자신들의 잘못을 상쇄하려고 한다고 적십자사의 헌혈운동에 참여한 신천지의 평가를 절하했다.

한국교회여! 나눔운동의 주류가 되라

분명한 것은 한국교회가 해야 할 일을 한국교회가 문제의 단체로 지목한 단체들에게 빼앗기고 있다는 것에 대해 한국교회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이 문제의 단체는 모 언론에 게재된 홍보기사에서 단체로 헌혈에 참여한 것은 성경의 경제정의인 나눔을 실천하고, 예수 그리스도가 흘린 보혈의 피를 나눔으로서, 죽어가는 생명을 살리고, 모자라는 혈액, 해외에서 수입해야만 했던 혈액을 국가적 수급난을 돕자는 목표로 시작했다고 한국교회의 신천지의 헌혈에 대한 비판을 맞받아쳤다.

신천지는 질병관리청의 요청에 따라 코로나 치료제 개발 혈창 공여에도 6천여명이 참여했다고 한다. 그것은 초기 코로나19 집단감염으로 인해 치료제 개발 혈창 공여에 참여 할 수 있는 단체가 신천지 밖에 없어, 질병관리청이 신천지에 요청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면서, “이와 관련해 신천지는 코로나19 후유증과 정신적으로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국가적 위기, 생명 나눔에 참여하기 위해 집단적으로 참여 할 수밖에 없었다. 모두가 자발적으로 참여했다고 신천지 관계자는 주장했다.

교회가 해야 할 일을 한국교회가 문제의 단체로 지목한 신천지에 빼앗기는 꼴이 됐다. 유명무실해진 한국기독교지도자협의회 산하 사랑실천헌혈운동본부가 예수 그리스도의 길, 사랑실천운동에 충실했다면, 적십자사와 질병관리청이 헌혈과 코로나19 치료제 개발 혈창 공여를 신천지에 부탁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안타깝다. 한마디로 한국교회가 해야 할 일을 신천지에 빼앗겼다.

이를 계기로 신천지는 일반 언론을 통해 업적을 세상에 알리며, 교세를 확장해 나가고 있다는데 한국교회는 경계해야 한다. 한국교회는 각성하고, 변화되어야 한다. 한국교회 목회자 1천여명이 신천지 집회에 참여하고 있다는 이들의 주장을 그냥 넘겨버릴 수만은 없다. 한국교회가 세상을 품지 않는 한, 죽어가는 생명을 외면하는 한, 정통교회들은 기독교의 주류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한국교회여! 그리스도인들이여! 행동하라

다행히 일부 대형교회가 신종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어려움에 처한 작은 교회 임대료 및 방역비, 교역자 생활비, 비대면 예배 영상 제작비 등 상생의 모습을 보여준 것은 초대교회의 주류전통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는 것을 그대로 드러낸다.

초대교회는 세상사람 모두가 곤궁 할 때, 노동자와 사회적 약자를 외면하지 않았다. 초대교회는 약자를 괴롭히는 교회를 밀어내고, 새로운 교회를 세웠다. 초대교회는 박해를 받으면서도, 세상을 품는 교회가 됐다는 사실. 사회적 약자를 위한 교회가 됐다. 이들 교회는 주류가 되어 오늘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는 사실을 한국교회는 잊지 말아야 한다. 이 길이 한국교회가 가야 할 길이다.

한국기독교지도자협의회는 20여년전 에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를 죽어가는 생명을 살리고, 국내의 부족한 혈액을 교회가 감당하겠다는 목적을 가지고, 국민일보, 적십자사와 공동으로 사랑의 헌혈운동을 펼쳐, 외국에서 수입 할 수밖에 없었던 부족한 혈액을 충당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따라서 한국 중대형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에 참여한다는 의미에서 사순절기간과 고난주간에 사랑의 헌혈운동에 대거 참여했다.

생명을 살리고, 보혈의 피를 나누는 일로 교회의 이미지를 세상 사람들에게 새롭게 보여주었다.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이며, 나눔의 종교이고, 생명의 종교이다. 성서의 경제관은 한마디로 나눔이다. 한국교회는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에서 빛바랜 나눔을 실천하는 예수님의 시대, 초대교회로 돌아가야 한다.

교회가 문을 활짝 열고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 생명이 꺼져가는 사람들을 받아드리지 않으면, 교회가 해야 할 일을, 그리스도인들이 해야 할 일을, 한국교회가 문제의 단체로 지목한 단체들에게 빼앗길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한국교회의 목회자와 교인들은 깨달아야 한다.

왜 교회의 교인수가 줄어들고 있는가(?) 그것은 교회가 해야 할 일을 잃어 버렸기 때문이 아닌가. 이제라도 한국교회는 교회가 있어야 할 자리에 들어가 행동해야 한다. 한국교회를 걱정하는 목회자와 신학자, 그리고 교인들은 교회를 향해 행동하라고 말한다. “한국교회, 성서로 돌아가라고 촉구한다. 얼마 전 아픈 엄마를 치료해주기 위해 의사를 꿈꾸던 12살 소년은 같은 또래 5명에게 새 삶을 주고, 하늘나라로 갔다는 언론보도, 20대와 50대 남성 2명이 총 9명에게 장기를 기증하고 하늘나라로 갔다는 이야기는, 그래도 오늘 우리사회가 삭막한 것 같지만, 희망이 있다는 이야기로 들린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 모두에게 생명의 나눔의 의미를 일깨워 준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이 해야 할 이다. 교회가 해야 할 일이다. 예수 그라스도가 한 일이며, 초대교회가 한 일이다. 그렇다. 교회가 성서의 경제정의인 나눔’,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길을 마다하지 않을 때, 한국교회는 다시 성장의 길로 다가가게 될 것이다.

저작권자 © 기독교한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