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희 목사.
이재희 목사.

예수님께서 공생애기간 동안 사람들에게 복된 소식, 기쁜 소식, 생명의 소식을 전하는 것이 아버지의 뜻이었다. 그런데 주님을 따라다니는 영혼을 보면 원해서 따라다니는 자들도 있지만 어떻게 하면 예수를 잡아 죽일꼬. 어떻게든 흠을 잡아서 고소할 조건을 찾고자했던 서기관 바리새인들도 있었다. 예수님이 당시에 세리들과 죄인들에게 복된 소식을 주고 회개케 하고 그들과 함께 식사를 나누기도 하는데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이 모습을 보고 죄인들하고 같이 손을 넣고 밥을 먹는다고 흠을 잡자 예수님께서 누가복음 15장에서 3가지 잃은 양, 잃은 돈, 탕자 비유를 설명하고 있는 내용이다.

어떤 목자에게 양 백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한 마리를 잃어버리자 목자는 잃은 양을 찾아서 헤매다가 그 양을 찾아서 어깨에 메고 기쁨으로 돌아와 이웃을 불러서 잔치를 베푼다. 먼저 길을 잃어버린 이 양은 어리석고 미련했다. 백마리가 되는 양 떼가 무리를 지어서 목자를 따라가는데 얼마나 어리석었으면 그 큰 무리 떼 99마리를 따라가지 않고 잃어버렸는지, 양은 풀을 뜯어먹다가도 목자가 움직이면 따라 간다. 혼자 길을 잃어버렸다는 것은 세상 유혹에 빠져 주님의 음성을 듣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목자의 말씀을 듣지만 결국 하나님의 음성보다는 세상의 것에 취해서 달려가기 때문에 목자의 음성을 따라오지 않는 것이다. 목자의 음성을 따라오지 않으면 결국은 길 잃은 양이 된다.

오늘 우리가 예수님의 양이다. 우리는 주님의 음성, 주님의 모습을 알기에 주님을 따라가야 한다. 주님의 음성은 곧 하나님의 말씀, 성경이다. 이 세상에는 하나님을 믿지 않고 우상을 따르는 자가 많다. 그들은 주의 음성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회 안에도 똑같이 신앙생활을 하고 직분을 받았는데도 목자의 음성을 아는 자와 모르는 자들이 있다. 오늘날 양떼들은 강단에서 목회자가 설교를 할 때 하나님의 음성인지 목사의 경험의 소리인지 인간의 이성과 윤리 도덕의 소리인지 파악해야 한다. 목사들은 내 경험, 내 상식, 내 이론, 내 이성, 인간의 지식을 가지고 목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성경 66권 테두리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음성을 들려주고 양떼들의 영혼을 관리하는 것이다. 우리는 아버지의 전에 왔을 때 어떤 일 때문에 근심이 있어도 근심을 내려놓고 아버지를 든든히 생각하면서 평안을 찾아야 한다. 내 아버지가 계시고 나를 인도하는 종이 있으니까 주님의 음성을 들려주는 목자가 있으니까 행복해야 한다.

잃어버린 양은 세상 유혹을 좋아했고 딱딱한 단체생활에서 떠나 자유로운 생활을 원한다. 교회 안에는 세상의 것을 즐기지 못하게하고 세상의 것을 사랑하지 못하게한다. 성경에서는 썩어져가는 옛 구습을 좇지도 말고 세상의 유혹을 따라가지도 말고 오직 여호와 오직 주님 한 분만을 좇아 달려가라고 하는데 이는 세상을 등지라는 것이 아니다. 세상을 사랑하지 말고 마음은 하늘에 둬야 천국에 갈 수 있고, 마귀에게 넘어가지 않는다. 자유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주님 안에 참된 자유와 마귀가 어둠의 영 안에 나를 묶고 육신을 즐겁게 만드는 자유가 있다. 내 생명을 묶어버리면 영원히 지옥이다.

누가복음 1511~20절에 탕자가 있다. 탕자는 독립해 자기 맘대로 살고 싶어서 아버지가 갖고있는 재산을 먼저 물려받아 나갔다가 다 탕진하고 완전히 망한다. 결국 아버지를 그리워하다 집으로 돌아온다. 매일 밤낮 집 나간 아들을 기다린 아버지는 멀리서 오는 아들을 보고 달려가 목을 끌어안고 운다. 이것이 우리 아버지의 마음이다. 탕자가 되어도 돌아올 때는 기뻐하는 아버지. 오늘 예수님도 백 마리 양 중에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다 두고 (그 아흔아홉 마리는 목자가 잠깐 떠나가도 그 양 떼들은 서로가 흩어지지 않는다) 잃어버린 양을 찾으러 갔던 것이다. 찾아서 양을 어깨에 메고 기뻐하면서 돌아오셨다. 주님이 죄인하고 밥을 먹는 것은 바로 이 비유를 들어서 내가 이렇게 기뻐하니 내가 죄인과 잔치를 벌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 예수님의 마음이었다.

우리는 양이다. 잃어버린 양이 되지 말자. 우리는 잃은 양이 되어서는 안 돼요. 주님과 항상 함께 가야 한다. 탈선하면 죽는다. 예수님이 안 보이니까 참 종을 따라가야 한다. 참 종을 따라가면 성도는 복 받은 것이고 거짓 종을 따라가면 죽는다. 목사는 예수님의 문이고 우리의 구원의 문은 예수님이다. 참 목자의 음성 듣고 풀을 뜯어먹고 쉴만한 물가로 인도함되어 마지막까지 주님 앞에 달려가는 주님의 양이 되어 영육이 행복하며 참 자유를 누리기를 원한다.

분당횃불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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