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버린 사람을 찾아 나설 때 하나님의 은총이 임한다

인구절벽의 문제는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농촌에서는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끊긴지 오래되었다. 곳곳에서는 이렇게 가다가는 경제활동인구가 모자라는 결과는 눈에 보이듯 뻔하다고 볼멘소리가 여기저기에서 터져 나온다. 모두가 하나님의 창조적 선물, 생명을 이어가는 기쁨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이를 위한 대책도 여러 방면에서 강구하고 있지만, 뾰족한 묘책이 보이지 않는다.

또한 정부도, 사회단체도, 교회도 출산을 위한 대책을 강구하고 있지만, 이것 또한 대책이라고 하기에는 석연치 않다. 인간이 변하지 않고서는 이를 해결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오늘 대한민국 국민은 인간을 사랑하지 못한다. 인간을 믿지 못한다. 나를 개방해 너를 받아드릴 수 있는 아량이 없다. 그래서 짐승을 키우고, 인간보다도 더 사랑한다. 모든 언론은 인간을 사랑하는 모습보다도, 강아지를 사랑하는 모습, 강아지와 함께 생활하는 모습만을 비춰준다.

강아지들을 위한 특별프로그램도 방영한다. 대통령 부부도 강아지를 사랑하는 모습을 텔레비전을 통해 비쳐진다. 이렇게 인간들은 사람보다도 강아지를 사랑한다. 이이를 낳지 않는다. 이를 두고 인간들은 인간은 배신하지만, 동물은 배신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사실 현대사회는 집에 돌아와 반겨주며, 공허한 마음을 달해주는 것은 사람이 아니다. 동물이 사람을 반겨주며, 공헌한 마음을 달래준다.

부모나, 형제나 남편은 개인 자신을 향해, 잔소리나 하는 사람이 됐다. 그래서 부모와 형제, 가족을 사랑하기보다 동물을 사랑한다. 하나님의 창조적 선물인 생명을 실어 나르는 결혼을 포기하는 젊은이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결혼은 해도 아이는 낳지 않는다. 충성된 개만 있으면 되는 세상이 됐다. 이렇게 세상은 변해가고 있다. 우주여행시대가 열리고 있다. 인공지능시대가 열리고 있다.

인간의 감각까지 대신하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이 전단계로 강아지를 구입해서 함께 살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감각을 인공지능이 대신한다고 생각하면, 아찔하다. 기계하나 사다가 놓고, 손으로 만지며, 대화하고, 자신의 감정을 느끼고 생활한다고 생각해 보라. 하나님의 창조질서가 빠르게 무너지는 결과를 불러 올 것이다. 오늘 한국교회가 반대하는 성소수자, 차별금지법 등이 문제가 아니다.

하나님은 많은 동물을 만드셨다. 아담은 이 동물들 중에서 짝을 찾으려고 했지만 찾지 못했다. 하나님은 아담의 짝을 만들어주기 위해서, 아담의 갈비뼈를 취해 이브를 만드셨다. 아담은 이브를 보자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창세기 218-25)고 기뻐했다. 기독교는 자아를 잃지 않고, 화해와 일치를 이루는 종교이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갈망이며, 욕망이다. 남녀의 합일은 인간의 갈망이다.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가 만나 생명을 이어가도록 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총이며, 창조적 선물이다. 인간은 하나님의 은총 없이 살 수 없다. 한마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는 말이다. 헌데 인간들은 스스로 하나님의 질서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모두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거부한다. 세상을 섬긴다. 모두가 자식, , 직장, 권력, 사상, 자기고집 등등에 메어 산다. 오늘 최고 권력자에게 메어 사는 정치인, 공직자 등의 군상들을 보면 참담하다.

모두가 하나님의 창조적 선물, 은총을 저버렸다. 바울은 너희는 누구의 종이 되어서 살 것인가?”를 묻고 있다. 그러면서 세상을 섬기는 사람은 세상의 종이 된다고 했다. 오늘 진보적인 교회들은 영혼구원을 갈급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진보적인 유럽교회는 교회당이 텅텅 비었다. 보수적인 교회는 피조세계를 외면하고, 천상의 삶만을 강조한다. 이웃교회, 이웃교단, 이웃종교를 무조건 외면한다.

이들은 자연을 그대로 인정하지 않는다. 같은 민족인 북한을 인정하지 않는다. 북한을 때려잡아야 한다. 그렇다보니 갈등의 골은 깊어만 간다. 평화의 길이 보이지 않는다. 그리스도인 모두 예수님의 평화(샬롬)를 몰각했다. 대신 힘에 의한 평화(로마팍스)를 외친다. 오늘 한국교회 보수와 진보는 치명적인 약점을 되돌아보아야 한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죄 아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성경은 미래가 보이지 않는 현실에서, 미래의 희망을 보여준다. 그래서 인간은 하나님의 은총을 깨닫고, 하나님의 은총을 받아 드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구원의 시작이다. 예수님은 세상이 버린 사람, 잃어버린 사람을 찾아 나섰다.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아 가시밭길, 벼랑 끝을 헤매셨다.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아 어깨에 메고 돌아와 기뻐하며, 동네 사람들을 불러 모아 잔치를 벌이셨다.

예수님은 세상이 버린 사람을 찾아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선언하셨다. 우리 모두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사람을 찾아 나설 때, 하나님의 은총이 우리에게 임한다는 것을 깨닫자.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길이며, 예수님의 길이다. 하나님의 창조질서이다.

저작권자 © 기독교한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