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희 목사.
이재희 목사.

사사시대에 베들레헴에 흉년이 들었다. 베들레헴은 떡이 마르지 않는 동네, 떡이 떨어지지 않는 축복의 동네다. 그런데 베들레헴에 흉년이 들자 엘리멜렉은 사랑하는 가족을 이끌고 이국땅 모압으로 이주하게 된다. 하지만 그곳에서 엘리멜렉과 두 아들이 죽게 되자 나오미와 며느리 룻은 베들레헴에 풍년이 들었다는 소식에 다시 베들레헴으로 향하게 된다. 고향을 벗어나 도망갔던 나오미를 보고 이웃들이 조롱할 수도 있지만, 나오미는 자기체면은 생각하지 않고 다시 고향 땅에 며느리와 함께 돌아왔다. 나오미가 베들레헴 떡집 내 고향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 여기서부터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 시작한다.

룻기서 1, 2, 3장에 따라 나오미의 성격, 나오미에 대한 상징적 모형이 계속해서 바뀐다. 본문에서 나오미는 성령을 모형한다. 나오미가 성령을 모형 했기 때문에 처음부터 룻은 나오미를 따라 베들레헴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룻은 굶지 않기 위해 이삭을 주우러 가겠다고 나오미에게 허락을 받고 나갔다. 룻은 성령의 인도를 따랐다. 오늘 본문의 말씀 제목처럼 나에게 베풀어 주는 이 은혜는 오늘 룻이 받았던 은혜이다. 룻은 처음부터 성령을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룻은 시어머니에게 묻고 이삭 줍는 데도 사모함이 있었다. 본문말씀 22절에 모압의 여인 룻이 나오미에게 나로 밭에 가게 하소서. 내가 뉘게 은혜를 입으면 그를 따라서 이삭을 줍겠나이다.” 룻의 마음은 나는 절대로 남의 밭에 가서 아직 베지도 건들지도 않은 밭에는 가지도 않을 것이며 이미 그 주인이, 일꾼이 밭을 베고 있을 때 절대로 앞에 나서지도 않고 바로 베는 자 뒤에 따라가서 내가 이삭을 줍겠다는 말이다. 사모함 속에 정직함이 있는 룻을 본문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고향으로 돌아온 나오미는 생계가 어려워 결국 며느리 룻이 이삭을 주울 수밖에 없다. 룻은 보아스에게 속한 밭에 들어가게 되었다. 정말 욕심 많고 사나운 주인의 밭을 만나면 룻이 고생할 수 있는 상황에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니 룻이 보아스의 밭에 들어가게 되었다. 보아스는 예수님을 모형하는 자다. 보아스는 예수님의 온유함, 백성의 굶주림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보아스에게 속한 진리의 밭에 가게 된 그 자체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다. 룻이 나오미 즉 성령의 도움을 받고 위로를 받고 인도를 받아서 갔기 때문에 은혜가 임한 것이다.

보아스의 밭은 진리에 속한 밭, 진리에 속한 교회를 모형한다. 생명이 있는 교회, 오직 예수가 있는 교회, 참 생명의 말씀이 있는 교회, 예수의 사상이 있는 교회, 참으로 참된 복음이 있는 교회를 말한다. 본문의 말씀을 따라 우리는 성령의 인도를 받고 성령의 허락을 받아 진리에 속한 교회에서 참 목자 뒤를 따라가야 한다. 이렇게 참 목자가 베면서 떨어뜨린 이삭을 우리는 한 개도 떨어뜨리지 않고 다 주어야 한다. 지금 이 시대는 많은 영혼을 전도해서 알곡을 거둬들여야 하는 귀한 시기다. 절대로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이 땅에 진리에 속한 교회에서 참 목자의 바로 뒤에서 이삭을 주우며 동역해야 한다. 만약 내가 속한 교회가 인본주의 교회라면 이삭을 주워 드려도 결국 인본주의 열매만 맺게 된다. 신본주의 교회에 드려졌을 때 그 이삭도 잘 선택된 것이고 아름다운 열매가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오늘 룻이 보아스의 밭에 가서 이삭을 줍는 그 자체가 룻도 축복이요, 보아스도 은혜요, 모든 것이 다 은혜가 되는 것이다.

코로나로 많은 자들이 교회를 떠나고 예수님을 떠났다. 기독교에 대한 좋지 않은 이미지로 전도하기 쉽지 않다고 말한다. 그러나 지금이야말로 주의 종의 곁에 바짝 붙어 땅에 떨어진 이삭들을 주어야 할 때가 아닐까? 부지런히 이삭을 주어 풍성한 알곡을 드리고 이 땅의 축복도 하나님께 감사로 올려 드리는 한국교회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원한다.

분당횃불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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