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 인 찬 목사
황 인 찬 목사

AD 270년 이집트의 한 시골 마을의 예배당에 스무 살 나이의 안토니우스란 이름의 청년이 들어왔다. 때마침 강단에선 마태복음의 한 말씀을 읽고 있었다.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마 19:21). 이는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무슨 선한 일을 해야 합니까?”라고 묻는 한 부자 청년에게 예수님께서 대답으로 하신 말씀이다. 

이 말씀을 듣고 부자 청년은 “슬퍼하며 떠나갔다”고 복음서는 전한다. 그런데 이 주의 말씀을 듣고 정말 전 재산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고, 깊은 사막으로 간 청년이 있었다. 그가 바로 안토니우스(251~356년)다.

마태복음 19:21절 말씀이 그의 영혼 깊이 덧 씌워졌고, 그는 결단의 기도를 드렸다.

"예수님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내게 들려주신 말씀 그대로 따라 살겠습니다!"

3세기 중엽, 부모에게 물려받은 많은 재산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고, 깊은 사막에 들어가 죽을 때까지 은수 생활을 한 안토니우스의 삶을 오늘의 시대에 조명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 

사막에서 오직 주님만을 묵상하며, 수도생활을 방해하는 온갖 유혹에 맞서 싸우며 굳건히 한길을 간 안토니우스의 삶은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유혹에 맞서고, 신앙을 지키며 살아가야 하는지, 때와 상황을 뛰어 넘어 그 모범을 제시한다. 

안토니우스는 동·서방 수도생활의 시조로 불린다. 그 이전에도 금욕생활을 하며 수도자의 삶을 사는 사람은 있었다. 하지만 속세에서 멀리 떠나 사막이라는 외적·내적 광야로 간 사람은 안토니우스가 처음이었고, 그의 삶을 따라 많은 사람이 사막으로 떠났으니 그로부터 수도자생활이 시작되었다고 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안토니우스의 모범적인 수도생활에 가장 크게 기여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악령’이 아닐까 한다. 악령이 하나님을 찾는 사람을 시험에 들지 않게 하고, 흔들리지 않도록 더욱 깨어 있게 했으니 말이다. 안토니우스와 그 옛날 교부들은 육체적, 정신적으로 수도생활을 방해하는 것을 악령, 악마, 원수라고 불렀다. 

현대인들은 악령이라는 단어에 ‘21세기에 웬 악령 타령’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이 단어를 유혹, 잡념, 욕망이라고 부른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안토니우스는 하나님을 찾는 삶을 방해하는 온갖 유혹에 굴복하지 않았다. 그 유혹은 하도 무시무시해서 실제로 얻어맞는 육체적 고통으로 오기도 하고, 뱀과 사자 같은 짐승의 모습으로 눈앞에 나타나기도 했다. 또 성경말씀을 인용하며 오기도 했다. 안토니우스에게 이 유혹은 너무 고통스러웠다. 

한번은 사람들이 쓰러져 있는 안토니우스를 발견하고, 모두 그가 죽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한밤중에 정신을 차린 안토니우스는 누구도 말릴 수 없는 은수처로 스스로 갔다. 그 후에도 악령은 참으로 다양한 형태와 방법으로 안토니우스를 끊임없이 괴롭혔다. 고통에 몸부림치면서도 안토니우스는 결코 자신의 은수처(隱修處)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결국 악령을 이긴 안토니우스는 하나님께 위로를 받는다.

위로의 하나님께 안토니우스가 여쭙는다.  “어디 계셨나요? 제 고통을 끝내기 위해 왜 처음부터 함께해 주시지 않으셨나요?” 안토니우스에게 한 소리가 들렸다. “안토니우스, 내가 너와 함께 여기 있지 않았느냐! 하지만 나는 네가 싸워 이기는 것을 보려고 기다렸단다. 네가 저항하고 굴복하지 않았기에 나는 항상 너의 도움이 될 것이고, 네 이름이 어디서든 기억되게 하겠다.”(『생애』 10,2-3).

하나님은 안토니우스와의 그 약속을 지키셨다. 모든 사람이 안토니우스를 영적투쟁의 모범으로 삼고, 현재까지 기독교회가 안토니우스를 수도자의 아버지, 그리스도인 삶의 모범으로 부르고 있다.

안토니우스가 죽고 난 후 그의 벗이자 제자 알렉산드리아 대주교 아타나시우스가 수도자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 알려 주기 위해 “안토니우스의 생애”를 저술했다. 이 책의 영향을 받은 수많은 사람들이 안토니우스를 따라 주님과 벗하여 살기 위해 이집트 사막으로 나아갔다.

지금 한국교회에 필요한 사람은 신학박사도 아니고, 유명한 목사도, 고대의 성 같은 어마어마한 매머드(a mammoth)교회도 아니다. 안토니우스와 같은 하나님의 사람이다.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자신을 버리고 말씀을 좇아 살며, 세상을 향해 말씀으로 포호하고,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 승리하는 하나님의 사람이다.                                                              
의왕중앙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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