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늬

해변에 밀려온 바지락 껍질 
물결 바람 번갈아 나명들명 
안았다 풀어놓은 물결무늬, 바람무늬 

허공을 빙글 돌아 떨어지는 낙엽 
햇빛과 바람 숨결 나명들명 
쓰다듬은 하늘무늬, 바람무늬

물끄러미 바라보는 물 속 내 얼굴 
밭고랑 논두렁 흘러가는 실개천 
긴 세월 되어 내 얼굴에 그려놓은 
웃음무늬, 눈물무늬, 쟁기질무늬 

-계간 《시와함께》 사화집 2권에서

* 임문혁 시인 : 1983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귀·눈·입·코』 『외딴 별에서』 『이 땅의 집 한 채』 등. 홍헌서실 동인.

정 재 영 장로
정 재 영 장로

이 시는 공간구조를 먼저 살필 필요가 있다. 첫 연은 수평성이고, 2연은 수직성이며, 마지막 연은 그 둘의 융합성이다. 

수평성이란 물결무늬 동원에서 찾는다. 바다와 물결은 수평선의 가로 이미지다. 수직성이란 하늘과 땅의 세로 이미지를 말한다. 융합성이란 수평과 수직이 만나는 입체성으로, 시인의 존재 위치를 설정해주는 공간을 말한다. 

1연 바지락은 곁으로 밀려온 횡적 사물이다. 2연 낙엽은 위에서 떨어진 종적 사물이다. 그러나 물결무늬도 바람무늬고, 하늘무늬도 바람무늬로, 분리가 아닌 종합적 사유의 구조다. 흔적은 모두 바람 무늬라는 것이다. 바람은 형태를 보여줄 수 없는 것인데 무늬로 시각화하고 있다. 바람은 수평이동이나 수직이동의 배후 손길임을 함축함으로 종교적 담론임을 암시한다.   마지막 연의 얼굴 무늬로 삶의 주제와 흔적을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는 점이다. 웃음무늬, 눈물무늬, 쟁기질무늬는 인생이란 웃음과 눈물의 혼합체로, 쟁기질이란 그 부단한 노력의 삶에 대한 그림이다. 

얼굴에 있는 주름살까지 하늘과 땅과 사람이 만든 무늬라는 것이다. 즉 인간 모습을 대표하는 얼굴 무늬는 천지인(天地人)의 융합적 작품이라는 것이다. 

이 작품의 구조는 어느 하나 의도하지 않은 부분이 없다. 창의성을 극명하게 드러내주고 있다. 이미지와 공간구조를 살필 때 종교적이며 철학적 담론을 형상화하고자 한 것으로, 엘리엇이 말한 의도적 기획임을 잘 보여준다. 우주적 이치 속에 사적 삶을 대입해서 볼 때 인간도 자연과 마찬가지이며 일부라는 포괄적 존재탐구요 담론이다. 겉으로 드러난 무늬로 우주와 인간 내면세계를 들어다 보고 있다.                                                 
전 한국기독교시인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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