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승 자 목사
김 승 자 목사

영국은 백년전쟁을 일으켰다. 당시 영국은 도버와 프랑스의 해안도시 칼레와 가깝다는 이유에서, 다른 해안도시들과 마찬가지로 영국의 집중 공격을 받았다. 기근 등의 악조건 속에서도 칼레군은 1년여 간 영국군에게 대항했다. 결국 칼레군은 영국군에 항복을 선언했다. 영국의 왕 '에드워드 3세'는 1년 동안 자신들을 껄끄럽게 한 칼레의 모든 시민들을 죽이려 했다. 

그러나 칼레 측의 여러 번의 사절과 측근들의 조언으로 결국 그 말을 취소하게 된다. 대신 영국의 '에드워드 3세'는 칼레의 시민들에게 다른 조건을 내걸어 이렇게 말한다.//“모든 시민들의 안전을 보장하겠다. 그러나 시민들 중 6명을 뽑아 와라 그들을 칼레 시민 전체를 대신하여 처형하겠다” 

모든 칼레 시민들은 한편으론 기뻤으나 다른 한편으론 6명을 어떻게 골라야 하는지 고민하는 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그래서 시민들은 딱히 뽑기 힘드니 제비뽑기를 하자고 했다. 그때 항복 조건을 들은 칼레 시민의 상위 부유층의 한 사람이며 칼레시에서 가장 부자로 소문난, ‘위스타슈 드 생 피에르’가 본인부터 죽을 것이라고 자처하고 일어났다.

 "비극적인 사태를 막을 수 있는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는 마당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여기서 굶어 죽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 한 목숨을 바쳐 영국 왕께 용서와 자비를 구하겠다. 기꺼이 홑옷과 맨발에 맨머리로 목에 밧줄을 두르고 나가 왕의 뜻에 따르겠다." 

그러자 또 다른 부유하고 시민들에게 존경받는 ‘장 데르’가 일어서서 동참하고, 세번째는 ‘자크 드 비쌍’이라는 사업가도 동참했다. 그 역시 상속받은 재산 뿐 아니라 사업으로 벌어들인 재산이 상당한 자였다. 그 옆에 있던 사촌 ‘피에르 드 비쌍’도 선뜻 따라 나섰고 다른 두 사람 ‘장 드핀네’와 ‘앙드리외 당드르’도 용감하게 목숨을 내어 놓겠다고 나섰다. 모두 칼레시 유지들이었다.

그리고 또 한 사람도 나섰다. 여섯명이면 되는데 일곱명이 지원한 것이다. 어떻게 한명을 제외 시킬 것인가를 의논한 결과, 먼저 제비 뽑기로 의견을 내었으나, 제비 뽑기를 하게 되면 마음속으로 혹시 내가 제외되어 살게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 용기가 약해질까 봐 그렇게 하지 않고 내일 아침 제일 늦게 오는 한사람을 제외시키기로 결정했다. 

 다음날 아침 6명의 사람들이 먼저 약속한 장소에 나왔다. 마지막 한 사람이 아직 안 나왔다. 그는 맨 처음에 자원한 ‘생 피에르’ 였다. 6명의 사람들은 ‘생 피에르’에게 당신이 제외되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생피 에르’의 집을 방문했다. 그런데 ‘생 피에르’는 자기 집에서 이미 자살하였다. 그것은 자기의 마음이 약해지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6명에게 용기를 불어 넣기 위해서였다 

이것을 본 6명의 사람들은 목에 밧줄을 걸고 영국 왕에게 나갔다. 이들을 처형하려던 순간, 영국 왕비 '에노의 필 리파’은 왕 '에드워드 3세'에게 간청하여 그 용감한 시민 6명을 살려준다. 목숨을 건 용기가 적의 수장까지 감복시켰다. 1895년 칼레시는 이들 영웅들의 용기와 <희생>을 기리기 위해 프랑스의 조각가 '오귀스트 로댕'에게 의뢰했다. 이 작품이 '칼레의 시민'이다. 이 작품은 7명의 영웅들의 깊은 울림과 깨달음을 전하고 있다.
      
햇빛중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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