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으로 갈급한 그리스도인

오늘 대한민국은 보수와 진보의 이념적 갈등이 심각하다. 그것은 한국교회도 마찬가지이다. 이제 치유 할 수 없을 정도에 이르렀다. 그것은 국민 모두가 하나님의 은총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것을 망각했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자기 안에 갇혀, 인간 안에 내제된 탐욕과 욕망만을 표출하고 있다. 그렇다보니 서로의 다름과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모두 혼자 살겠다고 아우성친다. 하나님의 참사랑을 잊고, 나의 마음을 열어 너를 받아드릴 줄도 모른다. 너를 죽여야만 내가 사는 세상이 됐다.

인간과 인간 사이에 높은 담이 가로막혀, 성령이 흐르지 않는다. 모두가 성령을 망각했다. 세상은 고인 물과 같이 썩어가고 있고, 교회는 교회 안에 머물러 버림받은 사람을 찾아 나서지 않는다. 그것은 보수적인 교회나, 진보적인 교회나, 모두 마찬가지이다. 나를 열어 너를 받아드릴 줄 모르는 인간은, 생명의 소중함도 모른다. 모두가 생명을 실어 나르는 결혼도 기피한다. 대신 동물을 사랑하며, 동물과 함께 생활한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서 양다리를 걸치고 살아간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큰 죄이다.

이는 교회의 성장을 멈추게 했다. 교회 안에서 복음, 하나님의 참사랑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다. 마이너스 성장은 당연하다. 전도의 경쟁력도 상실했다. 해마다 1만교회가 문을 닫고 있다는 통계도 있다. 그럼에도 교회들은 위기의식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교단과 교단, 단체와 단체 사이에 전투 아닌 전쟁을 벌이고 있다. 분열의 깊이는 더해가고, 교인들은 교회를 떠나 가나안 교인으로 변해가고 있다.

전국 방방곡곡에 세워진 교회들은 유럽교회를 닮아가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국교회는 교인의 수가 줄어들면서, 헌금의 액수도 크게 줄어들었다. 부동산을 팔아 모자라는 재정을 충당하는 교회들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기이한 것은 유럽의 경우는 진보적인 교회들이 이 같은 모습을 보였다. 헌데 한국교회는 보수적인 교회나, 진보적인 교회나 할 것 없이 교회의 부동산을 팔고 있다는데 안타깝다.

심지어 사무장 교회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목사는 설교하는 직원에 불과하다. 이 같은 현상은 교회가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결과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 대해서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오늘날 오순절 계통의 교회들만 나름대로 성장하고 있다는 말은, 오늘 한국교회가 성령을 몰각하고 있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준다. 진보적인 유럽교회가 텅텅 비어가고 있다는 것은 이를 대변한다.

인간, 세상과 하나님 사이서 양다리 걸치고 살지 말라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나라와·교회 분열의 늪서 헤어날 수 없다

보수와 진보의 벽을 무너트려라

반면 미국의 경우 복음주의적인 교회들은 나름 현상유지를 하고 있지만, 진보적인 교회들은 교회운영이 힘든 상황에 처했다. 한국교회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1만여 작은 교회가 문을 닫았거나, 이웃교회와 통폐합됐다. 이것은 교회의 경쟁력이 그만큼 약화되었다는 것을 반증한다. 오늘 교회들이 변화되는 세상을 치유하지 못하고, 과거에 머물러 있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서 양다리를 걸치고, 적당히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인간의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것은 모두가 미래를 보지 못하고, 사법고시에 합격해 그 물에서 사는 법조인들과 같이 과거를 들춰내는데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변화되는 세계, 다양한 세계서, 그리스도인들이 다양성을 인정 할 때, 국민 모두가 평안함을 누릴 수 있다. 주님의 세계에서 넉넉하게 살 수 있다. 과거에 머물러 있는 한, 한국교회는 미래를 나갈 수 없다.

팬데믹에서 엔데믹으로 전환되면서, 보수적인 교회와 단체들이 주최하는 집회에 목회자와 목회자 부인, 그리고 교인들이 구름떼 같이 몰려드는 이유도, 성령·영혼이 갈급하기 때문이다. 지난 21일부터 24일까지 홍천 소노벨 비발디파크에서 열린 전광훈 목사의 성령의 나타남집회에 수천명이 몰려, 기도와 찬양으로 신앙성숙을 도모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열린 청년사업단 워크숍에도 1천여명의 청년들이 몰렸다.

지난 5일과 6일 양일간 광화문 이승만 광장에서 드린 성령강림절, ‘자유통일을 위한 철야기도회에도 수만명의 인파가 몰렸다. 지난 20일부터 24일까지 오산리금식기도원 대성전에서 그레이스실천사역전문연구원(원장=김록이 목사) 주최로 열린 영적대각성깊은 치유 집중공개세미나에도 4천여명의 목회자와 교인들이 몰려들었다. 이렇게 보수적인 단체들이 주최하는 성령집회, 영적대각성 세미나에 한국교회 목회자와 교인들이 주목하는 이유는, 그만큼 영적으로 갈급하다는 것을 드러낸다.

보수적인 교회들은 한국교회의 위기의식을 간파하고, 빠르게 대처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진보적인 교회들은 이러한 의기위식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현재에 안주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제 한국교회도 유럽교회의 전철을 밟고 있다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미 유럽교회의 전철을 밟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교회당은 텅텅 비기 시작했다. 나오던 교인들도 가나안 교인으로 전락했다.

성결교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교인 20%가 줄었다는 공식통계를 내 놓았다. 나머지 교단들은 많은 교인이 떠났다고 말만 할 뿐, 공식적인 통계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분명한 것은 대형 일부 소수교회를 제외하고 작은 교회들은 교회운영이 어렵다고 볼멘소리이다. 대형교회들도 교인수가 줄어든 것은 마찬가지이다. 진보적인 교회들은 더욱 심각하다. 그렇다고 교인들을 불러 모을 수 있는 뾰족한 대안도 없다.

성령 안에서 하나 되라

진보적인 교회는 세상에서 출발해 하나님께 향한다. 그렇다보니 내가 죄인이라는 자각이 없다. 영혼에 대한 갈망도 갈급하지 않다. 천상의 삶보다 천상의 삶 못지않게 지상의 삶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유럽교회 대부분이 진보적이다. 거대한 중세교회들은 텅텅 비었다. 박물관 또는 관광지로 변해 버렸다. 유럽교회들은 주점으로 변한 교회도 적지 않다. 이슬람에 교회를 넘긴다. 헌금이 들어오지 않아 건물을 팔아 성직자의 생활비로 충당한다.

한국의 진보적인 교회들도 이런 교회들이 속출 할 위기에 처했다는데 안타깝다. 보수적인 교회는 하나님으로 출발해서 인간을 향한다. 지상의 삶은 중요하지 않다. 천상의 삶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경제, 정치, 삶 모든 것이 종교에 예속된다. 피조세계를 외면한다. 복음주의적이다. 미국식이다. 물질적 진보를 추구한다. 이웃교단, 이웃종교, 이웃교회를 인정하지 않고, 매도한다. 이들은 자연 그대로를 인정하지 않는다. 생물학적 성소수자도 인정하지 않는다.

같은 민족도 인정하지 않는다. 북한동포는 타도대상이다. 때려 죽여야 한다. 북한에서 한 말을 서운하게만 생각한다. 긴장관계를 고조시킨다. 예수님의 샬롬(평화) 보다도, 아메리카팍스, 로마팍스, 차이나팍스, 일본천왕팍스, 소비에트팍스 등 힘에 의한 평화를 외친다. 이렇게 외치는 자만을 진정한 외국자로 생각한다. 같이 고통을 겪고 죽자고 한다. 보수적인 교회들은 정통, 진리를 찾다가 분열되고 분열된다. 연합기관과 보더라도 그렇다. 하나 되자고 말하면서, 작은 교단을 업신여긴다.

함께 하자고 하면서, 교회수자부터 물어본다. 교단가입 실사위원들은 어깨에 뽕이 들어가 있다. 이런 상태로는 보수연합기관이 하나 될 수 없다. 합일을 이룰 수 없다. 이것은 성령을 몰각한 결과이다. 한국교회 연합기관의 통합은 성령 안에서만 가능하다. 나의 마음을 열어 너를 받아드릴 때 성령은 흐른다. 나의 마음에서 너와 그의 마음으로 흘러, 성령이 충만하다. 이웃교단, 이웃교회, 이웃종교를 인정해야만 하나 될 수 있다.

이것이 오늘 보수적인 한국교회가 가야 할 길이다. 한국교회가 서로 인정하지 않으면, 모두 죽는다. 분열과 갈등의 골만 더해진다. 이제라도 한국교회는 가던 길을 멈추고 돌아서야 한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죄 아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치명적인 약점을 스스로 되돌아보아야 한다. 보수나, 진보나 모두 한 하나님을 믿는다. 한 성령을 고백한다. 같은 성경을 보고, 같은 찬송가를 부른다. 같은 신앙고백도 한다.

예수님은 버린 사람을 찾아 나선다

마태복음 91-10절은 삭개오의 이야기가 나온다. 이 이야기는 진보와 보수에서 재해석 하고 있다. 예수님 앞에서 자신이 잘못 살아온 것에 대해 고백한다. 그리고 재산의 50%를 가난한 이웃에게 나누어 주겠다고 한다. 강탈한 것이 있으면, 4배로 갚아주겠다고 한다. 삭개오는 회개를 해서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니다. 예수님이 삭개오를 받아 주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 공동체에 참여하는 역사가 일어났다는 사실.

그렇다 그리스도인들은 서로를 받아주어야 한다. 그래야만 하나님의 종이 되어 함께 살아갈 수 있다. 그래야만 하나님의 은총을 받아드릴 수 있다. 하나님의 은총을 받아드리는 것이 구원의 시작이다. 예수님은 세상이 버린 사람을 찾아 나섰다. 그리고 이들을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선언하셨다. 한국교회는 적대시하던 공산주의 국가에서 선교활동을 벌이는데, 이웃교단, 이웃교회, 이웃종교를 받아드리지 못 할 이유가 전혀 없다.

종교개혁 이후 유럽에서 종파간의 갈등이 심각하게 일어났다. 자유로운 검정에 근거해서 자연적 종교를 모든 실증적 종교의 규범과 규율에 올려놓기 위해 이신론이 등장했다. 이신론은 합리적인 수단을 통해서 계시종교의 최고 정점에 도달하는 것이다. 이는 계시종교를 믿는 다양한 신앙 형식들로 인해 발생한 사회적 갈등을 비판적으로 해석하려고 했던 운동이다. 계시종교는 각 정파의 밑에서부터 올라가다가 보면, 정점에 하나님으로 귀결된다.

이신론운동을 통해 유럽의 교회는 교파간의 갈등을 극복 할 수 있었다. 이신론자들은 종교개혁 이후, 종교개혁이 남겨놓은 교리적인 대립에 반대하는 요소를 담고 있다. 이신론자들은 문화사적으로 종교개혁 자체를 수용했다. 이들은 오늘날 범신론자, 종교 다원주의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분명한 것은 오늘 한국교회는 일부 교회를 제외하고, 신의 존재, 도덕적 선악의 실제, 영혼 불멸성, 피안에서의 형벌과 보살핌을 확신한다.

한마디로 한 하나님, 같은 성경, 같은 신앙고백, 같은 찬송가를 부르면서, 서로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렇다보니 한국교회는 분열과 갈등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최근 3개로 분열된 보수연합기관의 통합 움직임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여기에는 새에덴교회 소강석 목사의 희생과 공로가 컸다. 그러나 단체 간의 이해관계사 얽혀 하나의 보수연합기관의 통합은 멀고도 험해 보인다.

한국기독교총연합(이하 한기총)은 한기총으로의 통합과 WCC 가입교단 제외, 한국교회연합(이하 한교연)은 직무대행의 연합기관과의 통합논의 불가와 WCC 가입교단 제외, 한국교회총연합(이하 한교총)은 손해 보면서 통합 할 수 없다는 각각 입장을 보이면서, 모처럼 조성된 통합논의는, 담보상태로 되돌아갔다. 그럼에도 하나의 보수연합기관 통합은 한 하나님을 믿고, 갈은 성경을 읽고, 같은 신앙고백, 같은 찬송가를 부르기 때문에 멈출 수 없다는 것에 대해서는 목회자 모두가 동의한다.

한국교회의 분열, 대형교단이 조장

서로의 특수성을 인정하지 않고, 양보하지 않는 한 하나의 보수연합기관의 통합은 없다. 지난 24일 한국교회 100주년기념관에서 열린 장국장로교회 총회 설립 110주년 기념대회 준비위원회 출범식에서 한교총 대표회장 류영모 목사는 작은교단 배려와 존중으로 서로 하나가 되자고 설교했다. 분열과 갈등으로 얼룩진 한국장로교단에 울림을 준다. 오늘 한국장로교는 300여개로 분열되었다. 유 대표회장의 설교는 나를 열어 너를 받아드리고, 성령 안에서 하나되라는 말로 받아드려진다.

유 대표회장의 이 설교가 한국교회에 전파되기 전날, 한교총 실사위원회가 열렸다. 이날 실사하는 자리는 류 대표회장의 서로의 존중과 배려로 하나가 되자는 설교가 구호뿐이라는 것을 그대로 드러냈다. 한 실사위원의 실사를 받는 교단을 향한 질의는 한국교회의 갑질 문화가 사라지지 않고 있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줬다. 이 실사위원은 고압적으로 귀 교단은 정기총회가 언제인가 귀 교단은 총회에서 목사안수를 하나 한교연을 탈퇴하고 한교총을 가입하라고 주문했다.

장로교의 강도사 고시는 총회가 실시하지만, 목사안수는 총회가 하지 않고, 노회의 소관이다. 참다못한 가입신정을 낸 대한예수교장로회 해외합동총회의 총무 강명이 목사와 증경총회장 박요한 목사는 자리를 박차고 떠났다. 가입실사는 분명 건전한 교단인가, 교회 수가 몇 개인가를 실사하는 자리이다. 이렇게 연합단체의 갑질문화가 존재하는 한 하나의 보수연합기관 통합의 길은 멀다고 할 수밖에 없다.

한국장로교단의 분열과 연합기관의 분열은 주류인 대형교단에 의해 조장되었다는 사실. 한기총과 한교연의 분열의 중심에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을 비롯한 대형교단이 있었다. 또한 한교연과 한교총의 분열에도 이들 교단이 중심이 됐다. 하나의 보수교단통합이 수면 위로 떠오른 후에도, 통합측 총회의 한 임원은 특정인이 추진하는 하나의 보수연합기관 통합에 참여 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또한 이 임원은 특정인을 대표회장으로 내세우는 통합에 함께 할 수 없다는 입장도 밝혔다. 그렇다 오늘 대한민국의 분열은 자신을 내려놓지 못하고, 과거에 머물러 있는 기독교의 군상들에 의해서 자행됐고,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오늘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서 양다리를 걸치고 사는 것에 부인하지 않는다.

예수님 안에서 함께 사는 세상을 만들자

이것은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가장 큰 죄이다. 오늘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을 치유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서 양다리를 걸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고치지 않고서는 한국교회가 하나 될 수 없다. 교회도, 사회도 하나 될 수 없다. 한국교회가 하나 되기 위해서는, 남과 북이 하나 되기 위해서는 야곱과 같이 뼈를 깎는 몸부림이 있어야 한다. 황도뼈가 부러지도록 기도해야 한다. 이 때 야곱은 형 에서에 대한 잘못을 인정하고, 마음의 안정, 평안을 얻었다.

이 때 분열된 인간을 치유하고, 압복강을 건널 수 있었다. 야곱은 한 나라를 세우는 품새를 세웠다. 사도바울도, 분열된 세계, 분열된 인간이 하나 되기를 기도했다. 헌데 세계는 내가 살기 위해 너를 죽여야만 한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보내신 뜻을 깨달았다. 이제라도 한국교회는 분열된 민족을 구원하기 위해 무릎을 꿇어야 한다. 치열하게 살아야 한다. 하나님나라를 위해서 치열하게 기도해야 한다.

그래야만 부도덕한 사람도 하나님의 참사랑이 넘쳐날 수 있다. 또한 마음의 평화, 안정을 얻을 수 있다. 오늘 분열된 대한민국, 분열된 한국교회를 치유 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의 지식을 초월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살아야 한다. 그리스도인 모두는 하나님의 충만한 은혜로 살자. 그리고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 양다리를 걸치고 사는 군상들은 내 얼굴대로 살아가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분열된 한국교회는 오늘 이 상태로는 한반도의 평화와 한민족의 화해, 평화적인 민족통일, 자유복음통일을 외칠 자격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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