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 대법원이 낙태 합법화를 골자로 한 이른바 로 대() 웨이드판결을 공식 폐기하면서 3년 전 헌법재판소가 낙태죄를 폐지한 후 후속 입법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의 현실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헌재는 지난 20194월에 형법상 낙태를 전면 금지한 현행 처벌 조항이 헌법에 위배된다며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그렇다고 낙태를 전면 허용한 것은 아니어서 국회에 2020년 말까지 관련 법 조항을 개정할 것을 요청했다. 이는 낙태를 처벌하는 게 헌법에 위배 된다는 것이지 곧 낙태가 합법이란 뜻은 아니다.

당시 정부와 여야는 입법 시한이던 2020년 말이 가까워져 오자 부랴부랴 관련 입법에 나섰다. 더불어민주당 권인숙 의원은 낙태죄를 완전히 폐지하는 안을, 박주민 의원은 임신 24주까지 낙태를 허용하는 안을 발의했다. 이에 반해 국민의힘 서정숙 의원은 낙태 허용 기간을 10주로 제안하는 안을 발의했다.

지금까지 국회에는 임신 초기인 14주까지 낙태를 허용하는 내용의 정부안 등을 포함해 6건의 형법·모자보건법 개정안이 보건복지위 등 유관 상임위에 계류돼 있다. 2020년에 국회 법사위가 국민의힘 의원들이 불참한 가운데 관련 공청회를 열기도 했으나 이후 흐지부지되면서 낙태법 입법 논의 자체가 제자리걸음 신세를 면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곧 3년 넘게 입법 공백 상태에 있다는 뜻이어서 그 부작용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국회에서 이 문제가 3년이나 공전을 거듭하고 있는 이유는 여야의 입장 차는 물론 종교계와 여성계, 의료계의 목소리가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국민 여론을 하나로 집약하기 어려운 현실에 발목이 잡혀 있는 것이다.

그 핵심은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 결정권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맞추느냐에 달려있다. 즉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자기 결정권 사이의 균형을 잡아줄 새로운 법적 기준점을 마련하지 못한 것이 입법 장기화의 가장 큰 원인이라 할 수 있다.

문제는 그 피해가 절박한 상황에 처한 여성과 태아에게 고스란히 전가되고 있다는 점이다. 일선 병원에서는 헌재의 결정이 낙태를 죄로 처벌할 수 없다고 했을 뿐 현행 모자보건법에 의하면 엄연히 불법이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 인터넷 등에서 불법 낙태약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는 현실은 낙태법 공백의 어두운 그림자라 아니할 수 없다.

이 모든 책임은 일차적으로 민감한 사안을 외면해 온 정치권에 있다. 지난해 4·7 재보선과 올해 대선, 6.1지방선거 등 연이은 선거 국면에 집중하느라 정작 중요한 입법 논의를 뒷전으로 미뤄뒀다는 비판에서 여야 모두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당장 더불어 민주당 여성의원 중에는 미국 연방대법원의 이번 판결이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부정한 역사 퇴행적 비극’”이라며 여성 인권을 후퇴시키려는 어떠한 시도에 대해서도 단호하게 맞서겠다며 당 차원에서 후속 입법을 서두르겠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표명하고 있다. 그러나 생명 문제를 여든 야든 정파적으로만 접근하는 건 곤란하다.

여성의 자기 결정권이 존중돼야 한다는데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자신의 뱃속에서 살아있는 태아의 생명을 해칠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다. 모든 생명은 내가 아닌 하나님이 주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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