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희 목사.
이재희 목사.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고 오순절 성령을 받은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은 담대히 나가 복음을 외쳤다. 이때 복음을 받아들이는 자들도 있었지만 여전히 예루사살렘에는 복음을 불신하는 율법주의자들이 있었다. 사울은 하나님을 믿는 열심있는 유대인으로서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자들을 죽이는 증인으로 서고 핍박하는 자였다. 당시 복음주의자에게는 두려움을 주는 사람이었다. 그런 사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나 변화된다. 홀연히 하늘로부터 밝은 빛이 비춰 그를 둘러싸자 말에서 떨어져 땅에 엎드렸다. 두려움에 떠는 그에게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주님이 물으시자 사울는 주여 누구시니이까라고 묻는다.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사울은 눈까지 어두워져 사람의 손에 이끌려 다메섹에 들어가게 된다. 사울은 3일간 공포와 두려움에 말을 잇지 못하고 음식을 먹지도 않고, 물을 마시지도 않았다. 그리고 하나님은 다메섹에 살고있는 제자 아나니아를 사울에게 보내 안수 기도하게 하신다. 평생 모세의 율법을 지키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며 살아온 사울은 자신의 세계관과 신앙 체계가 예수님과의 만남으로 인해 무너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는 복음의 증인으로 변화되었다. 사울이 변화되어 복음주의자들은 핍박한 일은 과거가 되었다. 회심을 경험한 후 사울이 다메섹의 회당을 찾아 유대인들의 회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전파하였다. 그러나 예루살렘교회 성도들의 입장에서 사울을 받아들이기는 결코 쉽지 않았다. 이때, 사울의 변화를 보증했던 이는 교회에서 존경받던 바나바였다. 바나바가 앞장서서 바울을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그를 변호하여 제자들의 모임에 동참시켰다.

우리는 사울의 변화를 통해 하나님의 생각과 인간의 생각이 얼마나 다른지 알 수 있다. 사람은 저 사람은 과거에 이랬고, 이런 실수를 했어라며 최악을 본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사람의 최선을 보신다. 주님은 세리였던 마태도 제자로 삼아 변화시키셨다. 베드로 또한 주님이 잡혀가실 때 부인하고 저주까지하며 배신했지만, 오순절 성령을 받게함으로 변화시키신다. 교회는 사울이 바울로 변화된 것처럼 성도들을 변화시키는 곳이다. 그 과정을 바라보며 세상에서는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불신의 눈으로 바라본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조차 서로 판단하며 헐뜯는다.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바나바처럼 우리 안의 불신을 없애고 서로 사랑하고 신뢰하길 원하신다. 성령의 사람은 상대방의 잘못된 모습을 보고 헐뜯고 배제시키지 않는다. 오히려 불쌍히 여기며 저 사람이 변화되어 주님의 증인 되기를 원합니다라고 중보한다. 우리는 회개해야 한다. “저 교회는 왜 저래? 저 목사님은 왜 저래?” 판단하지 않았는가? 영적으로 성숙하고 철이 들면 주님의 마음을 더 헤아리게 된다. 우리 안에 불심을 갖고 있으면 스스로에게 절대 유익이 없다. 그리고 이것은 예수의 영이 아니다. 또한 목회자에 대한 불신과 의심은 영혼을 망가뜨린다.

불신과 의심이 넘치는 이 시대에 우리 한국교회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 나라가 각자의 이념으로 갈라지고 분열하는 때에 평화가 넘치고 용서하고 사랑과 화합이 넘치는 길은 무엇인가. 한국교회가 행함으로 다시 바꿔야 할 것이다. 믿는자들이 서로 헐뜯는 것을 회개하고 서로를 위한 중보자. 변호자가 되어야 한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그렇게 해주시기 때문이다. 바나바와 같은 역할을 하는 자들이 교회에서 많이 일어나 세상으로 나가야 한다. 사울이 변화되어 바울이 되어 증인의 삶을 산 것처럼 사울과 같은 모습의 사람의 최선을 보고 믿음으로 이끌어 주어야 한다. 그리할 때 이 불신의 세계가 신용의 세계로, 십자가만 봐도 이방인들이 교회를 신뢰하고 믿을 수 있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분당횃불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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