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 성 길 목사
권 성 길 목사

변화된 환경에 제대로 적응하려면 원시시대에 만들어진 본능에만 의존할 수 없다. 그러나 원시본능을 탈피한다는 것이 말처럼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의식적인 노력은 늘 많은 에너지의 소모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흔히 의식적인 노력은 이성으로 대표도기도 한다, 좀 단순하게 이야기하면 ‘본능을 넘어서 이성으로’ 나아가야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그토록 자부심을 가지는 이성과 사고라는 것도 실제로는 본능의 원격조정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데이비드 흄과 같은 경제철학자는 이성도 본능적 감정반응의 노예일 뿐이라고 했다. 끊임없이 자기 성찰을 하지 않는 한 이성도 크게 믿을 것이 못된다.

다른 본능들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두뇌도 자급자족적인 소규모 수렵 ‧ 채취 사회에 적응한 산물이기에 특별한 훈련을 거치지 않는 한 거대해진 현대사회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참으로 거대하다. 그런 거대한 사회는 시장이라는 끈으로 엮어져 있다. 수천 수억의 사람들이 서로 누군지 모르면서도 분업과 교역, 즉 시장을 통해서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시장은 상업주의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거대한 사회와 분업, 시장, 상업주의는 서도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그것에 의해서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와 물질적 풍요로움이 가능해졌다. 

또 우리의 정신을 풍요롭게 하는 예술도 그것 없이는 존재하기 어렵다. 그런데도 우리 인간은 상업주의를 어지간히도 싫어한다. 이것은 인간이 극복하기 어려운 본능적 반응일 것이다.

인간은 매우 오만하여 스스로를 이성적 존재라고 추켜세우며 살아간다. 그러나 과연 우리의 생각은 원시적인 사고의 틀에서 얼마나 벗어나 있을 것인가? 학자들은 생물학적인 두뇌구조가 우리의 사고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원래 시장경제를 좀처럼 이해할 수 없게 태어났기 때문에 시장경제를 선천적으로 싫어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앞으로 하나씩 밝히기로 한다.

그렇다고 해서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들의 본능이 시장경제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는 명백한 사실을 깨달을 수만 있다면, 본능의 한계를 어느 정도 뛰어넘을 수 있다. 

시장경제에 대해 퍼붓는 반감과 다양한 형태의 비판과 비난들의 뿌리가 원시본능에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만 있다면, 다음으로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건설적인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무지는 두렵고 위험한 존재이다. 그리고 더 무서운 것은 무지를 부인하는 오만과 자만이다. 앞으로의 글을 쓰는 것은 시장경제에 대한 까닭 없는 두려움이나 비난의 원인을 원시본능에 대한 우리들의 무지와 무지를 부인하는 오만함에서 찾고 있을 것이다. 무지에 대한 자각을 통해 시장경제를 대하는 시각의 허와 실을 정확히 짚어보자는 것이 이 글을 쓰게 된 가장 큰 동기가 될 것이다.

새세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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