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보 연 교수
장 보 연 교수

우리는 살아가면서, 신앙생활을 하면서, 과거의 삶이 미래로 나가는 길에 발목을 잡는다는 것을 삶속에서 경험한다. 야곱은 12명의 자녀를 두었다. 야곱의 고향길은 평탄하지 않았다. 그것은 형 에서가 아브라함에게 두려운 존재였기 때문이다. 잔머리의 대가인 여곱은 형 에서에게 지은 죄가 너무 많아 압복강을 건널 자신이 없었다. 

어느날 야곱에게 천사가 내려왔다. 야곱은 천사에게 “나를 축복하지 않으면, 못 보낸다”고 생떼를 쓴다. 이 때 천사는 아브라함에게 “네 정체가 무엇이냐”고 묻는다. 야곱은 “나의 이름은 야곱이다”고 대답한다. 다시 천사는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1)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라고 한다.(창세기 32장 22-32절) 

야곱은 내면의 죄악과 싸워 이겼다. 야곱에게 있어 내면의 죄악을 부정한다는 것이 그리 싑지만은 않았다. 잔머리를 굴리고 산 야곱은 한나라를 세우는 품새를 지닌 사람이었다. 아브라함과 이삭은 한 부족의 족장이었다면, 야곱은 한나라를 세우는 밑그림을 그렸다. 야곱은 자기죄악에 직면해서, 자신의 내면을 보았다. 그리고 이웃부족, 모든 사람을 품는 마음을 갖게 된다. 

창세기 32장 31-32에는 야곱이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돋았고 그의 허벅다리로 말미암아 절었더라/그 사람이 야곱의 허벅지 관절에 있는 둔부의 힘줄을 쳤으므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지금까지 허벅지 관절에 있는 둔부의 힘줄을 먹지 아니하더라”고 기록되어 있다. 

야곱은 성공을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어둠의 세계에서 살았다. 부도덕한 인간이었다.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서 편리한대로 살았다. 야곱은 압복강에서 환도뼈가 부러질 정도로 몸부림을 쳤다. 그리고 형 에서에 대한 잘못을 인정하고, 모든 것을 내려 놓았다. 형 에서와 함께하겠다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모든 것을 내려놓자 야곱에게 평화가 찾아왔다. 분열된 인간의 마음이 치유됐다. 사도바울도 분열된 인간이 하나 되기를 기도했다. 바울은 내가 살기 위해 너를 죽여야 하는 세상에서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를 보낸 뜻을 깨달았다.(에베소서 3장 14-19절)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서 양다리를 걸치고 살아왔고, 살고 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가장 큰 분열이다.

오늘도 그리스도인은 이렇게 살고 있다. 이런 상태로는 분열된 교회, 분열된 세상, 분열된 세계를 치유 할 수 없다. 환도뼈가 부러지는 몸부림이 없으면, 분단된 한반도의 치유는 없다. 평화적인 민족통일도 없다. 남북한 민족의 화해도 없다. 한반도의 평화와 한민족의 화해, 분열된 교회가 하나되기 위해서는 환도뼈가 부러지는 몸부림이 있어야 한다. 무릎이 나가도록 기도해야 한다. 

한마디로 그리스도인들은 치열하게 살아야 한다. 하나님의 참사랑 실현과 너와 내가 함께 평화공동체를 위해 치열하게 살아야 한다. 부도덕한 사람도 평법을 써서성공한다. 가진 것이 많아 마음의 평화와 안정도 갖는다. 그러나 부덕한 인간은 가정과 사회, 나라를 갈등에 휩 쌓이게 한다. 이들은 가정과 학교에서 편법으로 스팩 쌓기를 한다. 돈으로 장관상을 비롯한 논문 공동저자로 이름 올리는데 거래한다.

지식인의 가족은 미국서 이를 전문으로 한다. 국민들은 안타깝게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다. 네가 불행해야 내가 행복하고 성공하는 사회이다. 남이 불행해야 내가 성공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을 보면 안타깝다. 한 번의 고시합격으로 한평생 대접받고 사는 이들을 본다. 법은 미래를 말하지 않는다. 과거를 들추어내는 데만 익숙하다. 

미래의 행복은 철학과 인간학에서 나온다. 얼굴을 자주 고치는 사람은 내 얼굴로 살아갈 수 없다. 야곱은 환도뼈가 부러질정도로 몸부림치면서, 자신의 모습을 되찾았다. 그렇다 그리스도인은 인간의 지식을 초월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살아야 한다.        
굿-패밀리 대표•개신대 상담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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