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수리공은 시간을 보지 않는다

그는 시간의 습성을 찾는 중이다
어둠의 부속을 핀셋으로 집어낸다
바늘만 보일 뿐
대못에 꽂혀 있는 전표 같은 시간

멈춰 버린 시계 위
찌푸린 불빛을 내려다 보고 있는 부엉이 한 마리

불빛 아래 해체되고 있는 상속된
시간의 유전자
식은 지 오래된 바람은 왜 한 곳으로만 숨어드는지
이상한 꿈은 왜 물속에서 젖지 않는지
가장 환한 곳에 숨겨진 너를 데려간
시간을 열어본다

제비꽃이 지는 동안
순서를 무시한 채 휘갈긴 신의 낙서
인사도 없이 뛰어내린 별과의 약속을
모래 위에 옮겨 적고 있었지

차가운 불꽃이 부딪치는 별
듀얼 타임의 톱니가 자전을 시작한다
푸드덕, 그의 심장 뛰는 소리
그는 시계가 없다

어둠의 재가 숫자판 위로 떨어질 때
부엉이 날개 바스락거리는 소리
눈꺼풀 닫히는 소리

어제 밀린 시간은 지금부터 흐르기 시작하고
너의 시차를 들여다본다
수척한 바람 냄새 오고 있었던가

-시집 『시계수리공은 시간을 보지 않는다』에서

*위성진 시인: 《시문학》 등단.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한국현대시인협회 부이사장. 국제펜 한국본부 기획위원장 시문학회 회장
시집 『햇살로 실뜨기』 『그믐달 마돈나』 『시계수리공은 시간을 보지 않는다』 등 
푸른시학상. 시문학상  

정 재 영 장로
정 재 영 장로

소통의 도구는 무수히 많다. 그림이나 노래뿐 아니라 몸짓이나 얼굴 표정 등 다양한 방식이 있다. 심지어 침묵의 눈빛으로 전달하는 심리적 소통인 텔레파시도 그 하나다. 위 시인이 미술을 전공하였다는 사실로 미루어 그의 소통도구는 그림일 것이다. 여기서 위 시인의 소통은 색을 칠한 그림 아닌, 언어로 그린 그림이다. 특별히 작품 속 이미지 작업을 위해 수사법은 상징주의 기법이 두드러져 보인다. 상징주의 화가 귀스타브 모로는 ‘사진과 같은 사실적 이미지는 기록에 불과하고, 하나의 정보일 뿐이다. 나는 보이지 않는 것과 느끼는 것만 믿는다.’라고 하였다. 

 상징은 은유의 넓은 범주에 속한다. 말라르메를 위시하여 19세기 후반, 형상화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세계, 내면(內面)이나 관념 등을 이미지를 통해 전달하려 하였다. 

 그럼 위성진 시인의 언어그림(語畵)의 표현양식(형식)은 무얼까. 쉽게 말하면 상징을 위해 추상과 구상의 조합형식이다. 이것은 소통이라는 언어기능을 해체하며 동시에 회복하고자 하는 시도로 볼 수 있다. 전통으로부터 해체(데리다)나 탈영역화(라캉의 탈경계)의 추구와 동시에 융합기능으로 상상력을 확장시키려 함이다.

 예시는 시계수리공의 이미지를 통해 시간을 다루는 절대자의 모습을 보여줌으로 생과 죽음의 시간들, 즉 카이로스(Kairos) 와 크로노스(Chronos)라는 두 특성 속에 있는 존재에 대한 본질적 담론을 포괄적으로 암시하고 있다. 이것은 하이데거가 말한 존재와 시간(Sein Und Zeit)에서 말한 현존재(Da Sein)에 대한 깊고 넓은 사유(思惟)를 담고 있다. 이처럼 위 시인은 문학과 미술, 철학과 종교를 융합한 예술언어로 존재탐구의 무한한 영역을 보여주고 있다.      
                                   
전 한국기독교시인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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