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창 주 교수
김 창 주 교수

예배를 위한 제단은 장소에 상관없이 토단이면 충분하였다(24절). 나중에 돌단으로 바뀐 것으로 보인다. 제단 규정은 “네가 내게 돌로 제단을 쌓거든 다듬은 돌로 쌓지 말라 네가 정으로 그것을 쪼면 부정하게 함이니라”(출 20:25)와 신명기 27장에 약간 다른 방식으로 언급된다. “곧 돌단을 쌓되 그것에 쇠 연장을 대지 말지니라 너는 다듬지 않은 돌로 네 하나님 야웨의 제단을 쌓고 그 위에 네 하나님 야웨께 번제를 드릴 것이며 …”(신 27:5-6). 여호수아가 에발산에 제단을 쌓을 때(수 8:31), 특히 솔로몬의 성전 건축 과정에도 충실히 따른다. “이 성전은 건축할 때에 돌을 뜨는 곳에서 다듬고 가져다가 건축하였으므로 건축하는 동안 성전 속에서는 방망이나 도끼나 모든 철 연장 소리가 들리지 아니하였다”(왕상 6:7).

이후 이스라엘 역사에서도 제단 규정은 상당히 엄격하게 준수되어왔다. 기원전 2세기 예루살렘 성전은 시리아의 안티오커스 4세에 의해 완전히 짓밟혔다. 건물은 파괴되지 않았으나 이교도 의식이 거행되고 성전으로서 기능을 잃고 더럽혀지고 말았다. 마카비 혁명으로 성전을 회복하자 유다는 이방인들로 인해 부정하게 된 제단을 헐어 한 쪽에 쌓아두었다. 

율법의 지시를 따라 “자연석을 가져다가 전의 제단과 같은 제단을 새로” 세웠던 것이다(마카비상 4:47). 한편 요세푸스는 헤롯 성전에 관한 보고를 남겼다. 헤롯이 제단 건립하는 동안 율법이 제시한대로 쇠 연장을 활용하지 않았다고 전한다.<유대전쟁사 5.5,7>

동사 가자(הזג)의 용례는 많지 않고 시편에서 ‘내 어미의 배에서 나를 갈라놓으셨다’(시 71:6)에 한 번 나온다. ‘자르다, 다듬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면 자연석을 활용하여 제단을 쌓으라는 뜻일까? 문제는 ‘다듬은 돌’로 번역된 명사 가지트(תיזג)에 대한 이해와 기준이다(왕상 7:9; 사 9:9; 겔 40:42; 암 5:11; 애 3:9). 보통 ‘다듬은 돌’이라고 말할 때 인위적인 도구를 통해 변형시킨 상태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는데 어떤 도구를 활용했는지가 관건이다. ‘다듬은 돌’은 쇠로 만든 연장, 예컨대 망치, 도끼, 또는 정 등으로 자연석을 가공한 것이다. 본문은 철제 금지가 아니라 ‘칼’ 또는 ‘돌을 뜨는 도구’로 해석되는 헤레브(ברה)를 사용하여 ‘부정하다’는 결과를 알려준다. 

그렇다면 제단을 쌓을 수 있는 돌은 자연석을 포함하여 채석장에서 떼어낸 바위일 가능성이 많다. 고대인들이 바위를 쪼개는 방식을 알면 이해가 쉽다. 그들은 바위를 갈라내기 위해 먼저 바위의 결을 따라 나무못을 일정한 간격으로 박고 물을 몇 차례 붓는다. 수분을 충분히 빨아들인 나무못이 팽창하면서 단단한 바위에 틈새가 생기면 저절로 떨어진다. 

약간의 인공적인 위력이 들어가지만 고대인들에게는 자연석에 가깝다. 그러므로 출애굽기 20장의 ‘다듬은 돌’이란 철제 연장을 통해 정교하게 작업한 상태라고 봐야 한다. 

‘다듬은 돌’과 열왕기상에 언급된 ‘채석장의 완벽한 돌’의 차이는 분명하다(왕상 6:7). 후자는 예배를 위한 제단 건립에 합당하고 전자는 부정하다. 이처럼 다듬지 않은 돌을 고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미슈나는 여기에 몇 가지 근거들을 제시한다. 첫째, 제단의 건립은 하나님 예배와 평화를 기원하는 것인데 공격용 무기에 쓰이는 철제 도구를 활용한다는 것은 그 목적과 정신에 위배된다. 둘째, 제단과 성전에서 사람의 안녕을 기원하지만 철제 도구는 전쟁을 목적으로 한다. 셋째, 돌을 다듬는다는 것은 우상을 새기는 일이기 때문에 어떤 형상이라도 섬기지 말라는 계명에 어긋난다. 넷째, 철로 만든 칼은 지상의 권력을 상징하며 영적인 삶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Mishnah Middot 3:4>

한신대 구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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