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승 자 목사
김 승 자 목사

42년 전에 해외입양아가 경찰의 도움으로 조만간 친부모와 쌍둥이 언니, 오빠를 만난다고 한다. 부모과 자식의 만남처럼 아름다운 일은 없다. 하지만 부모와 자식은 42년의 기나긴 시간을 뛰어넘어야 하는 아픔이 있다. 이야기 속에 42년의 헤어짐은 원망과 고통이 그대로 베어 있다. 딸의 생존 소식에 눈물을 쏟았던 부모는 “엄마 노릇을 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내가 엄마라고 선뜻 나서지 못했다. 

딸 역시 42년의 순탄치 않은 삶과 내가 네 엄마·아빠다고 말하지 못하는 부모에 대해 서운함을 그대로 드러낸다. 이 이야기는 42년 전 해외입양인 김미주 씨가 친부모를 찾은 아름다운 이야기이다. 한국일보 보도에 따르면, 미주씨는 학교를 다니고 청소년기를 거치면서 부모에 대한 그리움이 커졌다고 한다. 그리고 낳아준 부모님를 찾겠다는 결심을 하고, 5월 5일 입국해, 입양서류에 출생지로 기재된 서울 마포구 대흥동 일대에서 친부모를 찾는 전단을 돌렸다.

하지만 부모를 찾지 못하고 미국으로 돌아갔다. 지난달 17일 마포경찰서 실종수사팀장은 이름만 겨우 알아내고 다시 미국으로 발길을 돌렸던 해외입양인 줄리 비엘(한국명 김미주ㆍ43)씨의 친부모를 한 달 만에 찾았다는 소식을 전했다. 실종팀 문상태 경위는 그날 오전 미주씨 친어머니 A(69)씨에게 조심스럽게 전화를 걸었다. “혹시 1979년에 따님을 낳은 적 있나요?”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이윽고 “딸 쌍둥이를 마포구 이순니조산소에서 출산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따님이 부모님을 찾아 미국에서 왔었어요. DNA 채취가 필요한데 경찰서로 와주실 수 있겠습니까?” 부부는 한달음에 마포서로 달려왔다. 아버지 B(74)씨는 지팡이에 기대 딸이 자신들을 찾겠다며 만든 전단지을 하염없이 들여다가 보며, 눈시울 적셨다. 감격의 순간이다. 필자 역시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아름다운 이 기사내용에서 눈을 떨 수 없었다. 미주씨의 부모는 친딸 입양사실도 몰랐다고 한다. 

미주씨의 엄마는 “임신 기간 쌍둥이를 가진 것도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둘을 낳고 사흘 후 조산소를 나서는데, 시어머니가 ‘네가 첫째를 안고 가라’고 하더니, 둘째를 데리고 나오지 않았어요” “시어머니는 집안 사정도 어려운데 애기 셋(오빠 포함)을 어떻게 키우냐”며 “미주씨를 부잣집에 보냈다고 했다”는 말을 전했다. 

남편에게 결혼반지와 목걸이를 주고 둘째를 찾아오라고 새떼섰다. 하지만 입양 갔다던 그 집에 미주씨는 없었다. 아무리 둘째 딸의 행방을 물어도 시어머니는 몇 해 전 숨질 때까지 입을 열지 않았다고 한다. 부모의 자식에 대한 그리움이 어느 엄마와 똑 같았다. 미주씨는 5월 4일 친부모 찾아 달라며 서울 마포경찰서를 찾았다. 경찰이 두 사람을 찾을 수 있었던 건 ‘기적’이다. 경찰은 한국말도 할 줄 모르면서 무작정 마포서로 와 “도와 달라”고 했던 미주씨의 간절한 얼굴이 어른거렸다. 

그리고 단서를 찾아 퍼즐을 하나하나 맞추면서, 미주씨의 부모와 쌍둥이 언니, 오빠를 찾아 나섰다. 경찰의 이런 노력으로 미주씨는 부모를 찾았다. 미주씨의 부모는 꿈에서 그리던 딸을 찾았다. 40년의 기나긴 터널을 지난 미주씨의 부친은 병을 얻어 지팡이에 의지해서 움직여야 할 정도로 노쇠해 졌다. 42년의 긴터널은 이렇게 아름다운 이야기가 되어 삭막한 세상에 희망이 되었다.            

햇빛중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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