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집권 여당인 자민당이 지난 10일 치러진 참의원 선거에서 압승을 거둔 후 지난 76년간 유지해 온 평화 헌법을 버리고 전쟁이 가능한 국가로 개헌하려는 움직임을 본격화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 정부와 집권당의 이 같은 우경화 질주가 한국과 중국 등 주변국과의 평화를 해치게 될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 또한 점점 커지고 있다.

기시다 일본 총리는 집권 자민당의 참의원 선거에서 압승한 후 헌법 개정안을 가능한 한 빨리 발의해 국민투표로 연결하겠다고 했다. 이는 아베 전 총리의 피습 사망 사건이 결과적으로 보수진영의 표 결집으로 나타난 것에 고무된 듯한 발언이지만 아베 전 총리가 염원했던 개헌에 대한 의지를 공식화한 것이다.

현행 일본 헌법은 일명 평화 헌법이라 불린다. 그 이유는 2차 대전 패전 직후인 1946년 승전국인 미국의 맥아더 사령부가 만든 일본 헌법 9조에 전쟁을 영구히 포기한다는 내용과 함께 전력 보유와 교전권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조항이 명시돼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평화 헌법은 지난 76년간 단 한 차례도 개정되지 않았다. 아니 개정하지 못했다는 게 더 적절한 표현일 것이다. 과거 자민당은 이 조항을 폐기하거나 수정하는 개헌을 수차례 시도했으나 그때마다 3분의 2 의석수 확보 실패와 일본 내 부정적인 여론에 발목이 잡혔다.

자민당은 이번 참의원 선거에 현행 헌법 9조를 유지하되 자위대의 존재를 규정하는 헌법 9조의 2항 신설과 함께 개헌을 조기에 실현한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중국의 군사력 확대, 북한의 핵 보유 등으로 일본 내 안보 불안이 어느 때보다 커진 틈을 파고든 것이다.

결과적으로 일본의 집권 여당은 이번 선거에서 전체 의석의 3분의 2를 확보하게 됐다. 이는 언제든 개헌안 발의가 가능해졌다는 걸 뜻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북한의 핵무장이 일본 국민의 개헌에 대한 지지 여론을 끌어올린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현 평화 헌법 제정을 주도했던 미국이 중국과 북한을 견제하기 위해 일본의 방위력 강화에 찬성하는 분위기도 일본 정부로서는 호재다.

그러나 일본이 높은 경제력에도 불구하고 전면 재무장으로 가지 않은 건 전쟁보다는 평화를 염원하는 국민이 평화 헌법이 훼손되는 걸 바라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국주의 침략의 가해자인 일본이 패전국에서 오늘과 같은 경제적 번영을 이루게 된 것 역시 평화 헌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총칼을 놓고 비무장 평화를 받아들이는 대신 경제 회복과 부흥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피해 당사자인 한국과 중국은 일본의 재무장 움직임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그렇게 되면 동북아 역내의 군사적 긴장도 불가피해진다. 일본이 과거 주변국에 저지른 죄에 대해 제대로 된 반성과 사과도 없이 또다시 군사 대국으로 부상하는 것에 대해 주변국이 우려하는 것은 당연하다.

일본은 패전 이후 피해 당사자에게 한번도 제대로 된 사과나 반성을 한 적이 없다. 이는 같은 전범 국가로서 끊임없는 사죄와 올바른 역사 교육을 해온 독일과 비교된다. 물론 부끄러운 과거사는 형식적 사과나 정치적, 법적 배상으로 종결될 수 없다. 피해자가 있는 한 반성의 기한도 없다. 그런데도 일본은 반성은커녕 역사를 부인하고 왜곡해 왔다.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한국과 일본이 여전히 과거사에 발목이 잡혀 있는 것은 양국 모두의 불행이다. 그 짐은 고스란히 두 나라 다음 세대가 떠안을 수밖에 없다. 헌법을 고치는 문제는 전적으로 일본의 선택에 달렸다. 문제는 그것이 다시 과거로 돌아갈 것인지 미래를 향해 나아갈 것인지 좌우하고, 평화냐 전쟁이냐를 결정하게 될 것이란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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