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용화 목사.
임용화 목사.

연일 무더위가 지속되면서 불쾌지수가 최고조에 다다르며, 이른바 가 넘치는 시기다. 뉴스에 보도되는 각종 사건사고를 봐도 그 정도를 알 수 있다. 그러나 단순 온도가 높다고 일어나는 일은 아니라고 본다. 거기에는 우리 사회 속에 존중과 배려가 사라졌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서로 조금씩만 양보하고 이해하려는 노력만 했어도 해결됐을 문제들인데, 존중과 배려의 실종은 우리 사회를 더욱 어둡게 만들고 있다.

작금의 우리 사회는 “‘만 아니면 돼, ‘우리만 아니면 돼가 만연되어 있다. 개인이기주의가 극도로 팽배해 서로 돕고 사는 시대가 아니다. 오히려 상대의 것을 빼앗으면서까지 자신의 부와 명예를 드높이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 1등을 향한 무한경쟁, 부를 향한 편법, 권력을 향한 부정 등 정의와 진리가 아닌 것들로 가득하다. 추호도 남을 위해 양보를 하려 들지 않는다. 설령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남이 손해를 보거나 상처를 입어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이는 곧 우리 사회를 분열과 갈등의 굴레 속으로 던져 버렸다.

우리는 최근 대통령 선거와 지방자치 선거만 봐도 우리나라가 얼마나 심각하게 분열되어 있는지 알 수 있다. 겉으로는 모두가 하나를 외치고 있으면서도, 속은 언제나 나만 잘되면 돼라는 인식이 짙게 깔려 있다. 가뜩이나 외부로부터의 공격이 심각한데 내부조차 하나 되지 못한 채 서로를 공격하고 있다. 우리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때 우크라이나 국민들이 보여준 나라사랑 정신을 알 수 있었다. 힘 대 힘으로 싸우면 분명 지는 경기임에도, 그들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전장에 나섰다. 자신의 유익만을 생각했다면 진작 국경을 탈출했어야 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해외에 있던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속속 귀국해 총을 들고 러시아의 공격에 맞서 싸웠다. 모두가 자신의 안위, 가족의 안위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닌, 모두의 안위를 위해 싸우고 있는 것이다. 그들에게 이웃을 향한 존중과 배려가 없었다면 그렇게까지 나섰을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마찬가지로 지금 대한민국은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져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의 장기화로 인해 경제는 바닥으로 곤두박질했고, 국민들의 삶의 질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추락했다. 세계적 경기침체와 맞물려 연일 치솟는 고물가를 잡아보겠다고 한국은행은 빅스텝까지 단행했다. 여기에 남과 북의 대치상황은 여전하며, 일자리 문제와 저출산 문제 등 각종 산재되어 있는 문제까지 겹쳐 사면초가에 빠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야는 서로 존중과 배려는커녕, 상대의 약점잡기에 바쁘고, 이제 막 시작한 윤석열 정부를 향한 비판의 목소리만 높이는데 혈안이 되어 있다. 지금은 누가 옳고 그름을 따질 때가 아니다. 대한민국 전체가 자초될 위기를 맞았는데, 여전히 그 책임공방에만 시간을 낭비하면 안 된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힘을 합해 높은 파도에 휩쓸려 가는 대한민국을 살리는 일에만 집중해야 한다.

그 첫걸음이 바로 서로를 향한 존중과 배려다. 존중과 배려는 큰 것이 아니다. 작은 것부터 실천하면 도미노처럼 전국으로 확산되어 존중과 배려의 문화가 자리 잡을 수 있다. 우리는 공익광고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지하철에서 마스크 줄이 끊겨 곤란에 처한 이웃에게 마스크를 나눠주고, 그 마스크를 건네받은 사람은 또 유모차를 끌고 가다가 계단을 만난 이웃을 도와주고, 또 그 이웃은 지역의 작은 가게를 찾아서 상생의 경제를 펼치고, 그 가게 주인은 또 다른 이웃과 소통하고 나눈다. 이것이 바로 존중과 배려의 정신이다. 이렇게 작은 것부터 존중과 배려의 정신이 깃들면, 분열과 갈등으로 얼룩진 대한민국도 곧 화합과 일치, 화해와 상생의 나라로 변할 수 있다. 그러면 위기에 처한 작금의 상황도 금방 극복할 수 있다. 지금은 잔칫집에 초대받아 상석에 먼저 앉으려하지 말고, 남을 먼저 존중하고 배려해 가장 끝자리에 가서 앉을 때이다.

나사렛 증경감독·본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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