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보 연 교수
장 보 연 교수

“내게 말하는 천사에게 물어 가로되 내 주여 이것들이 무엇이니이까/내게 말하는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네가 이것들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느냐 내가 대답하되 내 주여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그가 내게 일러 가로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그가 머릿돌을 내어 놓을 때에 무리가 외치기를 은총, 은총이 그에게 있을찌어다 하리라 하셨고/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스룹바벨의 손이 이 전의 지대를 놓았은즉 그 손이 또한 그것을 마치리라 하셨나니 만군의 여호와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줄을 네가 알리라 하셨느니라”(스가랴 4장 4-9절)
하나님은 스가랴 4장 4-9절에서 스룹바벨의 강제성전 재건에 대해서 경고한다. 하나님은 미래를 내다보지 못하는 성전을 아무리 건축해도, 소용없다고 말한다. 인간의 손으로는 흩어진 백성을 하나로 뭉치게 할 수 없다는 애기다. 하나님만이 흩어진 백성을 하나로 모을 수 있다는 것을 성경는 교육한다. 

요즘 정치지도자들 중 자신을 내세우다가 땅에 떨어지는 것을 본다. 그것은 인간의 마음에 야망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야망을 버리지 않고서는 정의롭고 평화로운 하나님의 생명공동체에 참여 할 수 없다. 미래로 나갈 수도 없다. 새 날을 열 수도 없다.   

예수님은 겨자씨만한 믿음을 제자들에게 교육했다. 예수님은 모래로 비유 할 수 있는데도, 구태여 겨자씨를 내세웠다. 그것은 모래는 생명을 품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모래는 비만 오면 쓸려 내려간다. 그러나 겨자씨는 생명을 품고 있다. 사랑을 품고 있다. 인간은 겨자씨가 발아하는 생명의 땅에 방부제, 제초제를 뿌려, 죽음의 땅으로 만들고 있다는데 안타깝다. 

그리스도인 모두는 개달아야 한다. 예수님은 오늘도 생명의 땅, 사랑의 땅에서 발아돼 큰 역사를 일으키며, 하나님의 참사랑, 복음을 실현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헤롯은 솔로몬보다도 더 큰 교회당을 건축했다. 하지만 헤롯의 교회당에는 인간의 욕망만 가득했다. 생명이 없다. 사랑도 없다. 스룹바벨이 큰 성전을 건축하려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사도바울은 고린도전서 12장 4-11절에서 사회적 평등을 말한다.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직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또 역사는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같으니/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어떤이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이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다른이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이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어떤이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이에게는 예언함을, 어떤이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이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이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느니라” 

성령의 은사는 성령에 의해서 이루어진다고 교육한다. 헌데 오늘 한국교회는 큰 은사를 추구한다. 은사를 행사하면서, 성령은 감추어졌다. 목회자들은 자신만을 드러낸다. 큰 교회당은 많은데 은혜가 없다. 생명과 사랑을 상실한 결과이다. 하나님은 쓰레기 때문에 불편하지 않도록 작아지라고 하신다. 

이웃에게 불편함을 주지 않도록 하는 것이 가장 큰 봉사이다. 하나님이 나를 쓸 때 불편함이 없도록 작아져야 한다. 인간은 항상 겸손해야 한다. 특히 그리스도인들은 작은 종이라는 것을 고백해야 한다. 그리고 항상 이웃을 위해, 교회를 위해, 나라를 위해, 하나님나라를 위해 봉사해야 한다. 여기에는 항상 사랑, 생명, 기쁨이 넘힌다. 겨자씨만한 믿음은 예수님께서 교육하는 큰 믿음이다.   

굿-패밀리 대표•개신대 상담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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