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종 문 목사
원 종 문 목사

미가는 남왕국 시대에 활동한 예언자이다. 당시 앗시리아는 중동일대를 지배했다. 남왕국은 백성들 간에 분열과 갈등이 만연되어 있었다. 분열과 갈등은 백성들을 곤궁하게 만들었다. 백성들은 곤궁한 삶속에서도 하나님을 신실하게 믿었다. 미가 선지자는 하나님의 언약을 잊지 않게 하기 위해서 세상을 향해 서로 사랑하고, 신실하라고 외쳤다. 

예수님 역시 기득권자들에 의해서 핍박을 받았고, 십자가에 달리셨다. 예수님은 버림받은 자들에 대해서 도덕성을 말하지 않았다. 사악하고, 기득권을 가진 이스라엘 백성을 책망했다. 바리새인과 제사장은 예수님를 잡도록 고발했다. 이들은 율법을 모르는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을 비도덕적인 사람으로 매도하며 업신여겼다. 바리새인과 대제사장들은 예수님을 옳아 맬 궁리만 한다.

예수님은 불의한 자, 불의한 사회를 책망하며, 이들의 죄를 낱낱이 폭로한다. 공군부대에서 성폭력 사건이 일어났다. 문제는 부대가 문제를 일으킨 가해자에 대해서 문제를 삼지 않는다. 오히려 피해자인 여자를 문제를 삼았다. 성서도 부덕한 여인에 대해서 도덕적 잣대를 들이댄다. 여인을 도덕성을 가지고 바라보았다, 타락한 종교는 종교에만 충실 한다. 오늘날 교회도 교회에만 충실 한다. 

그렇다보니 교회의 평등공동체가 깨지고, 교회마다 교회이기주의에 매몰되고 있다. 목회자와 교인들은 하나님나라선교를 위해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을 방매하며, 자신이 섬기는 교회만을 위해서 일한다. 이로 인해 오늘 한국교회는 선을 가장한 무능만을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뭇잎만 무성하다. 

교회이기주의가 뿌리를 내리면서, 교회는 힘없는 백성이 억울함을 당해도, 말 한마디를 못한다. 여군이 성폭력을 당해도, 가해자에 대해서 문제를 삼지 못해도 교회는 상관없다. 내 교회만 거대해지만 된다. 억울한 백성은 더이상 교회를 향해 억울하다고 호소하지 않는다. 도와달라고 하지도 않는다. 소리를 질어야 허공을 향해 소리 지르는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군대문화, 성폭력을 당한 여군에 대한 인권의 문제를 제기하지 못하는 세상 속에서 힘없는 백성만 당하고 또 당한다. 이런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이런 상황서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을 받았다”고 떠들어 댄다. 그리스도인들은 시험에 빠진 이들을 보기 전에, 나를 돌보아야 한다는 성경의 진리를 모두 망각했다. 성령을 받은 사람은 남을 비판하기 전에, 나를 돌보아야 한다. 

분명한 것은 개인이기주의에 빠진 인간들은 이웃이 무슨 고통을 당하고 있는지 알아보려고 하지도 않는다는데 문제가 있다. 함께 슬퍼하지도 않는다. 매사를 긍정적으로 보지를 않는다.  그렇다보니 세상은 삭막해졌다. 백성들은 기쁨도, 눈물도 잃어버렸다. 모두가 사회와 교회의 경계선에서 적당히 살아간다. 

그리스도인들은 진실하게 살아야 한다고 성경은 가르친다. 교회는 이웃의 고통을 이해하고,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백성들이 안고 있는 고통으로부터 해방시켜주신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선포해야 한다. 오늘 우리사회는 과거로 돌아가려는 세력과 변화를 요구하는 세력이 나누어져 서로 물고 뜯는다. 

시대가 어렵더라도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고 정직해야 한다. 목숨을 걸고 진실을 밝히는 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럴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용기를 갖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억울한 일을 당하고 탄식하는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세상은 불의한 자들이 판을 친다.

예장 통합피어선 증경총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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