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수 강 목사
오 수 강 목사

성경의 이해를 돕기 위해 먼저 교회가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부터 알아야 한다. 교회는 보이지 않으나 분명히 존재하는 영혼 구원을 위한 이해다. 교회는 세상의 죄인을 필요로 한다. 죄 없는 사람은 교회와 상관이 없으므로 그에게는 교회가 무용하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가 세상에서 추구해야 할 목적은 바로 죄로 죽은 자의 영혼을 구원 하는데 있다. 왜 죄인에게는 구원이 필요한가? 성경은 예수님을 믿지 않아 죄를 용서받지 못하면 지옥에 간다고 하였으며, 반대로 죄인이 예수님을 믿게 되면 죄를 용서받아 하나님의 나라인 낙원에 들어간다고 했다. 

교회가 세상에서 하는 일은 보이지 않지만 분명하게 존재하는 죄로 죽은 자의 영혼 구원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사람은 보이는 형상을 가졌지만, 영혼은 보이지 않는다. 교회가 세상에 필요한 것은 보이는 육신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영혼(생명) 구원이다. 그런데 오늘의 교회를 보면 보이지 않는 영혼 구원보다는 보이는 물질에 더 관심을 가지며 추구하는 모습인 것 같다. 

우선 구교나 개신교 범기독교 세력 모두 보이는 세상에서의 존재 이유와 중요성을 찾기에 힘쓰는 모습들이다. 본래 성경의 계시는 보이는 물질세계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를 중하게 여긴다. 사람이 태어나 일평생 살아가는 육신의 세계는 순례객이 아무리 좋은 곳이라도 스쳐 지나가듯 인생의 삶은 주어진 삶 속에서 스치는 삶임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모습은 초대 교회 신자들의 삶과 같이 삶 속에 녹아 있는 현실 삶의 중요성보다는 내세에서의 영원한 삶에 무게를 두기를 원한다.

초대 교회를 구성한 신자들의 삶은 내세에 목표를 두었기에 보이는 세상에서의 삶은 임시거처로 생각했다. 그래서 사도행전 기록을 보면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한 신자들은 육신 세계서 귀중하게 여기는 재물(동산, 부동산)을 사도들의 발 앞에 헌납하면서 교회가 해야 할 일인 당시의 고아와 과부들과 가난한 자들 그리고 재난이나 전쟁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자를 구제의 용도로 사용하게 했다. 사도들은 일곱 집사를 세워 이를 관리 집행하도록 했다. 초대 교회의 특징 중 하나는 바로 네것 내것이 없는 유무상통 한데서 찾아볼 수 있다.    

교회는 이와 같은 초대 교회를 이룬 신자들의 신앙과 행위에서 현대 교회의 모델을 삼아야 할 책임성이 있다. 왜냐하면 현대 교회는 너무 세속적으로 보이는 것에 치중하는 면이 초대 교회의 순수한 교회의 모델과 다른 점이기 때문이다. 현대 교회는 신약의 근거를 떠나 다시 구약 세계로 돌아가는 모습을 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부흥과 성장은 우선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복음 전도의 승부는 잠시 뒤로 하고 시각적인 웅장한 건물, 구름과 같이 모이는 신자, 차고 넘치는 재물에 두어 마치 그러한 중 대형 교회의 건물을 소유하므로 기독교계에서 성공 대열에 명함을 낼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종교는 그 재단의 재력이 세상 사람들의 눈  높이에 맞추기 위해 사력을 다한다. 기독교도 마찬가지다. 무리해서라도 교회가 소유한 모든 재력을 총동원해 현대식 최첨단 건물을 짓기에 혈안이다. 이는 본래 교회가 세상에 존재하는 목적에서 빗나갔음을 세상 사람들이 아니라 스스로 증명함이다. 종교개혁 전에 마르틴 루터는 95개 조항을 브텐베르그 성당 문에 게시하여 세속화로 더러워진 교회의 거룩함과 신성함을 회복하려 했다. 그 이후 개혁된 기독교가 5백여 년의 세월이 흐르자 종교개혁 이전 상태로 회귀하여 다시 제2의 종교개혁이 단행되어야 한다는 우려 깊은 소리가 흘러나온다.       

먼저 교회를 지도하는 지도자들의 신앙 의식이 중요하다. 지도자가 세상 종교 군처럼 보이는 예배당, 모이는 신자들 수, 재정의 확충에 관심만 있고 신자들의 영혼 구원과 거듭남에 대한 관심이 없다면 교회는 세속적인 물량 중심이 성장과 부흥으로 둔갑해 버린다. 결국 교회는 건축물의 크고 작음과 신자들의 많고 적음과 연간 예산의 많고 적음에 따라 신분이 상승과 추락된다는 사고로 인해 교회의 이미지가 세속적으로 치부된다. 한국교회의 현재 모습은 바로 세계가 부러워하고 있지만 한국교회가 하는 일이 성경에 비춰 볼 때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의 신령함을 유지하며 교회가 세상에 존재하는 목적에 맞는 역할을 하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벌써 세상은 영적으로 추수기에 접어들었다고 하는 여론이 비등하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중 두 나라에 기독교적인 공통분모는 러시아 정교회다. 그 중 러시아 정교회 대주교는 침략전쟁을 지지했다고 한다. 목적이 잘못되지 않았나 생각해 보자.

필운그리스도의교회/ 본지논설위원 

저작권자 © 기독교한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