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5 광복 77주년을 맞아 한국교회 연합기관을 비롯해 교단 단체들이 각기 의미 있는 기념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광복절과 한국교회는 그 정도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교회가 이 땅에 존재하는 이유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 하기 위함이다. 주님은 이 땅에 오셔서 모든 압제받는 이들에 자유와 평화를 선포하셨다. 일제 강점기에 교회 지도자들이 저항의 중심에 섰던 것도 그 때문이다.

한국교회는 불과 백여 년 전만해도 신생아에 불과했다. 미국 선교사들이 가져온 복음을 그대로 학습하는 걸음마 단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19193.1만세운동 당시에도 기독교 인구가 전체에 1.3%밖에 되지 않았다.

그런데 그런 적은 수로 어떻게 그런 엄청난 존재감을 민족과 사회에 드러낼 수 있었을까. 그건 비록 적은 수였지만 그들의 가슴 속에 성령이 살아 역사했기 때문이다. 전 세계에 자유에 대한 불굴의 메아리로 울려 퍼진 3.1만세운동을 주도한 이들이 이 땅의 기독교인이었다는 점은 오늘 한국교회사가 자랑할 만한 증표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8.15 이후 한국교회는 순교자 배출 등 자랑스러운 역사만 선택적으로 기억하고 받아들이려 했다. 해방 후 좌우 대립으로 혼란한 시기에 교회가 저지른 역사적 과오와 죄책을 고백하고 확실히 털고 가야 했으나 그러지 못했다. 이것이 교단 분열로 이어지게 됐음은 안타까운 현실이다.

한국교회는 수년째 연합기관 통합에 매달리고 있다. 그런데 8.15 77주년과 같은 한국교회에 뜻 깊은 기념 예배조차 여전히 각자 따로따로 연다는 건 무슨 의미이겠나. 물론 이런 절기 행사를 함께 하는데 한국교회 통합의 당위성이 있는 건 아니다.

한동안 구체적인 행동으로 이어지며 가시화되는 듯하던 통합작업은 최근 들어 급격히 동력을 상실한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 원인 중에는 통합의 모양은 있는데 알맹이가 없다는 데 있다. 즉 이걸 앞장서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인사는 있는데 이를 적극적으로 받쳐줄 공감대가 현저히 부족한 점이 눈에 띈다.

한국교회 보수진영을 하나로 묶으려는 근본 의도는 일차적으로는 차별금지법등 한국교회가 대사회적으로 밀고 나가야 할 과제들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코로나19 확산 3년간 정부의 통제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책임을 한국교회가 하나 되지 못한 탓으로 돌리는 분위기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수가 많으면 모든 걸 다 할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문제다. 그런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통합과 연합은 그만큼 멀어질 수밖에 없다. 3.1만세운동을 주도한 기독교 지도자들은 교세를 믿고 앞장선 게 아니다. 당시 대교단과 중책을 맡은 지도자들은 되려 신사참배와 같은 역사적 과오를 저질러 한국교회에 깊은 상처를 줬다.

일제 강점기에 하나님의 손에 붙들린 지도자들은 하나같이 한 알의 밀알, 겨자씨와 같은 존재였다. 그들의 모양은 아주 작고 보잘 것 없어 보였으나 그 안에 부활하신 예수가 준 생명이 있었다. 한국교회가 8.15 77주년에 회복해야 할 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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