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수 강 목사
오 수 강 목사

보이는 세상 속에 있으나 세상과 다른 보이지 않는 세계를 살아야 하는 기독교가 하는 처세는 보이지 않는 영적인 세계는 뒤로하고 보이는 세계를 귀중히 여기는 것 같은 모양 세다. 그러다 보니 교회도 세속의 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은 모습에 안타까움이 더하다. 오늘의 기독교의 형태는 선교 초기 너무 가난하여 우선 먹고 사는 일이 중요하게 여기던 시기에 기독교는 예수님과 가난 퇴치와 연계시켜 세상의 기준으로 가난이 물러가고 생활이 윤택해지는 것에 대한 기대가 컸다. 이러한 신앙이 기초가 되어 부흥회의 주제는 예수님을 믿으면 축복을 받을 수 있음을 강조했다. 그 축복의 개념을 받아들인 신자들의 생각은 보이는 세상에서의 가난 퇴치와 생활의 향상 그리고 입신양명 출세를 생각하여 열심히 그렇게 되기를 기대하며 기도의 제목 삼았다.

그 결과 기독교는 세월이 지남에 따라 성장의 속도가 놀라울 만큼 성장하였고 신자들의 삶은 빠르게 윤택하기 시작했다. 따라서 신자들이 모이는 예배당의 모습도 세상의 선진 기업의 건물과 비교하여도 손색이 없는 건물을 건축하게 이르렀다. 이제는 한국교회가 세계 교회의 선망의  대상으로 자리 잡기도 했다. 그런데 이제는 교회가 성장의 잣대를 영적인 부흥보다도 눈으로 보이는 세속적인 물질에 두게 되다 보니 성장은 첨단 건물, 수많은 신자, 거액의 헌금 예치 등으로 공식화되어 이러한 조건을 바탕으로 지도자들의 위세가 높아지려는 경향으로 자리 잡았다. 어떤 크고 작은 모임이라도 이들이 주관자가 되고 이들의 성공의 발판은 모든 신진 세대들에게 교회의 성장에 대한 세속적인 동기부여는 할지  모른다. 그러나 순수한 영적인 성장에 대해서는 거리감 있게 하는 것 같은 생각을 바꾸기가 어려운 현실로 정착했다. 

이제 더 늦기 전에 기독교는 본래 기독교가 세상에 존재해야 하는 이유로 돌아가야 한다. 종교가 세속화되어 하나님이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으나 종교인들의 모략과 중상으로 십자가에 달리게 만든 모습을 잊지 말아야 한다. 종교가 있었으나 그 기능이 상실하였고, 성직자들이 있었으나 바리새인 모습으로 물질만 추구하고 영적인 영혼 구원은 뒤로 내 버렸으며, 성전은 거룩하게 건설되었으나 실제 성전에 계셔야 할 하나님은 계시지 않았던 시대가 바로 예수님이 이 세상에 메시야로 오신 때의 종교의 모습이다. 그런데 인간 세상에서의 기독교는 다시 예수님이 오신 때의 그 종교와 같은 모양을 하고 있으며, 종교개혁 이전 교회가 세상에 있었지만 그 기능이 표리부동한 모습과 같다. 개혁의 날카로운 칼날이 기독교에 내려졌으나, 새롭게 탄생한 개혁 교회는 또 유구한 세월이 흐르자 다시 예수가 초림 하시던 시기와 종교개혁 이전과 같이 교회는 존재하지만, 그 기능은 마비되고 교회는 사람들의 세속적인 비위 맞추기에 급급하다. 교회 지도자들의 권위는 하나님의 종으로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대리하는 권리로 둔갑하여 신자들을 지배하게 이르렀다.

지금도 교회 강단의 외침의 대부분은 신자들의 영적인 거듭남과 올바른 신앙생활이 지속가능 하게 하는 것보다는 이 세상에서 어떻게 하면 출세하고, 많은 재물을 모을 수 있으며, 출세 지향, 권력 지향의 설교를 전파하는 지도자들의 성향이 대부분이다. 이제 그만할 때가 되었지 않은가? 세속적인 설교보다는 영적으로 거듭난 신자의 바른 삶의 모습에 대해서 또는 초대 교회처럼 순복음을 전파할 수 있는 순수한 신앙인으로서의 회복에 힘써야 한다. 교회가 존재하는 목적의 변질 즉 교회 예배당 건축에 올인하던 헌금 사용에 대해 초대 교회가 실천했던 본래 모습으로 돌아가게 하는 내용으로 변화되었으면 하는 기대가 크다. 

성경에 계시된 교회의 본래 모습이 어떤 모습인지 그리고 초대 교회를 이룬 신자들의 본래 행적이 어떤 모습인지, 교회가 세상에 존재해야 하는 목적이 무엇인지, 인간의 경험과 지식을 토대로 하던 방식을 버리고 이제부터라도 성경에서 계시를 찾아야 한다. 이미 사도행전에는 구원의 방주인 신약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예배드리러 모인 구원 받은 신자들이며, 그 신자들이 드린 재물을 교회는 어떻게 관리하였는지에 대한 답이 있다. 교회를 이룬 지도자와 신자들은 세속적인 성장의 경쟁을 떠나 본래 교회가 추구해야 했던 생명과 영혼 구원의 길로 돌아서야 한다.

세상 돌아가는 징조를 볼 때 핵무기를 가진 불량 나라와 불량 지도자에 의해 언제 어느 때에 지구촌을 위협해 불바다로 만들려고 아마겟돈 전쟁을 일으킬지 모르는 위태한 시대다. 기독교 신앙으로 진단하면 심판 주님이 오실 때가 다 되어가는 징조들로 파악할 수 있다. 그런데 교회 지도자들의 생각은 아직도 신자들에게 물질적인 축복 받기를 목소리를 높이고 영혼 구원에는 관심 없는 것 같다. 늦기 전 시기를 놓치지 말자.

필운그리스도의교회/ 본지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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