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창 주 교수
김 창 주 교수

출애굽기 24장은 계약이 마무리 되고 식탁을 함께 나누는 장면에서 절정에 이른다. 대략 다음과 같이 일곱 단계로 진행되는 상황이다. 

① 모세와 아론, 나답, 아비후 그리고 70 장로가 멀리서 야웨를 경배한다.
② 모세가 말씀과 계명을 백성에게 전하자 그들은 준행하겠다고 응답한다.
③ 모세가 그 내용을 기록하고 제단을 쌓아 피를 뿌린다. 
④ 모세가 ‘언약의 책’을 백성에게 낭독하고 그들은 따르겠다고 말한다.
⑤ 모세가 ‘언약의 피’를 백성에게 뿌린다.
⑥ 모세와 아론, 나답, 아비후 그리고 70 장로가 산에 올라간다.
⑦ 그들이 하나님을 보고 먹고 마신다. 


모세는 친절하게 계약 내용을 파악하여 백성들에게 확인하여 동의를 얻자 기록으로 남긴다. 그 기록한 내용을 가지고 열두 기둥을 세워 제사 드리고 피를 뿌려 정결하게 한다. 백성들에게 두 번째로 낭독하자 준행하겠다고 다시 화답한다. 모세와 장로들이 하나님의 산에 올라 그분을 뵙고 먹고 마시는 장면으로 계약의식이 마감된다.  

위 내용에서 ‘하나님을 보았다’는 구절이 눈에 들어온다. 이스라엘의 신앙전통에 어긋난다. 야웨 대신 ‘아도나이’라고 부르는 맥락과 비슷하다. 언제부터 비롯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하나님을 보거나 가까이 있으면 그 사람은 죽임을 당할 수 있다고 여겼다(출 19:21-22; 33:20). 본문은 경신 사상을 부합시키려는 신학적 의도가 들어있다. 그리하여 그들이 본 하나님의 형체를 매우 추상적이며 극도로 일반화시켜 묘사한다. 하나님의 발 아래는 ‘청옥을 편 듯하고 하늘같이 청명하더라’(10절). 풀어보자면 ‘마치 사파이어 길 같고 하늘처럼 맑고 투명하였다’는 뜻이다. 사실상 참으로 아름답고 장엄하며 거룩하다. 모세와 장로들의 경외심을 반영한 표현으로 감히 하나님을 우러러 볼 수 없는 두렵고 떨리는 심경이 우러나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10절과 11절에 각각 나오는 ‘하나님을 보다’의 히브리어 동사는 ‘라아’(האר: to see)에서 ‘하자’(הזח: to behold)로 바뀐다. 전자는 모세와 장로들이 하나님을 뵌다는 두려움으로 힐끗 쳐다보거나 무심결에 눈을 들어 본다는 뜻이고, 후자의 유심히 살펴본다는 의미와 뉘앙스의 차이는 크다. 아람어로 ‘하자’는 ‘내면의 환상을 보고 알게 되다’는 뜻이다. 비슷하게 구약의 ‘하자’는 주로 선견자(先見者)로 번역되어 육안으로 볼 수 없는 영적 장면이나 환상을 본 경우에 활용되었다(암 7:12; 사 29:10). 여기서 ‘호제’(הזח), 곧 ‘환상을 보는 사람’이 비롯되었다(삼하 24:11; 왕하 17:13). 

모세와 이스라엘 장로들은 시내산에 올라 ‘하나님을 보는’ 초자연적인 현상에 초점이 있다. 하나님을 보는 것이야말로 지복(至福) 중의 하나다. 산상수훈에는 ‘마음이 청결한’(oi` kaqaroi. th/| kardi,a|) 사람이 누릴 수 있다고 설파한다(마 5:8). ‘먹고 마시다’는 이중적 뉘앙스를 함축한다. 하나는 하나님을 보고도 죽지 않았다는 은유이며, 다른 하나는 계약의 성사에 따른 기분 좋은 식사의 포만감이다(전 3:13; 사 22:13 참조). 하우트만은 ‘마셨다’(התשׁ) 대신에 1절처럼 ‘경배하였다’(התשׁי)로 읽어야한다는 제안하고 있다.<Exodus 3. 295; Exodus 1. 8> 

유대교에서 ‘먹는다’는 의미는 중의적이다. 유월절 만찬에서 ‘역사를 먹고,’ 계약의 최종 단계인 식탁에서 언약 음식을 ‘먹는다.’ 언약을 승인하는 절차다. 마치 계약 내용을 확인하며 조인식 서명에 해당하는 절차가 식사, 곧 ‘먹는 의식’이다. 보통 사람 사이의 계약에서도 양쪽 당사자들이 함께 식탁에 앉음으로써 서로 형제가 된 것을 확인하고 공동체의 일원이 된다(창 31:54). 따라서 계약식사는 상호 축하하는 자리이자 동시에 계약이 발효되는 시점이다. 하나님을 ‘보고 먹고 마신’ 사람들의 행복이다.  

한신대 구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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