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승 자 목사
김 승 자 목사

“<안경>을 쓰는 이유가 ‘잘 안보여서’ 가 아니라, ‘더 잘 보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인간은, 상황에 맞는 <안경>을 끼고 세상을 본다면 더 행복해질 수 있다.”-앤디 그로브

앤디 그로브의 말대로 안경은 더 잘보려고 쓴다. 요즘 사람들은 학습에 열중하다보니 많은 사람이 안경없이는 살지를 못한다. 그것은 안경이 잘 보여서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글씨, 보이지 않는 세상을 더 보려고 안경을 쓴다. 혹자는 안경을 씀으로써 자신을 돋보이게 하는 경우도 있다. 분명한 것은 안경보다도 인간은 눈의 피로를 말끔히 씻을 수 있는 맑은 눈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만 하나님의 창조세계 저 푸른 들판을 볼 수 있다.   

성경은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마 7:5)고 했다. 한 부부가, 모처럼 주말에 교외로, 드라이브를 나가게 되었다. 남편은, 즐거운 마음으로 출발하려고 하는데, 차의 앞 유리가 더럽고, 뿌옇게 보여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차창 와이퍼를 몇 번 움직여 봤지만, 여전히 앞 유리는 더러웠다. 이런 상태로 고속도로를 달리면 위험하겠다 싶어서, 겸사 주유소에 들러 기름을 넣고 세차를 했다. 주유와 세차를 마치자, 세차장 직원이 앞 유리의 물기를 마른걸레로 닦아주었다.

“다 끝났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일을 마친 직원은 공손히 인사했다. 하지만, 남편은 자동차 앞 유리가 아직 더럽다며, 한 번 더 닦아달라고 직원에게, 부탁했다. 그러자 직원은 얼른 알겠다고 대답하고, 혹시 자신이 좀 전에 보지 못한 얼룩이 묻어있는지 꼼꼼히 살피며 열심히 닦았다.

“손님 다 닦았습니다.”

이번에도, 남편은 마음에 안 드는지 다시 말했다.

“죄송한데 아직도 더럽네요.”

그때였다. 아내가 갑자기 손을, 내밀어 남편의 <안경>을 벗기더니, 부드러운 천으로 렌즈를 닦아, 다시 남편에게 씌어 주었다. 유리창은 원래 깨끗했다. 더러운 것은 자동차의 유리창이 아니라, 남편의 <안경>이었던 것이다.

그렇다. <안경>은 더러운지 금방 확인하고 닦을 수 있지만, 마음에 낀 <안경>은 쉽게 보이지도 않지만 닦아서 지우기도 쉽지 않는다. 그것은 내 안에 죄악이 가득차 있기 때문이다. 내 안의 죄는 걸레로 씻어낼 수 없다. 내 망음의 정화가 필요하다. 정화된 사람은 경손하다. 정의롭다. 이웃을 맑은 마음으로 쳐다볼 수 있다.   

그래서 성경은 저 푸른들판을 볼 수 있는 마음을 가지라고 교육한다. 세상을 똑    바로 쳐다볼 수 있는 맑은 눈을 가져야 한다. 그것은 안경으로 대처 할 수 없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세상을 바로 보지 못하고, 거꾸러 보이는 것은 마음의 정화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보니 세상은 어두워 보이고, 하나님의 창조세계 저 푸른들판을 제대로 보지를 못하고 있다.  

그리스도인들도 세상을 흐릿하게만 바라보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어쩌면 내 마음에 낀 <안경>이 더럽혀지지는 않았는지 잠시 살펴보아야 한다. 그리고 회개의 기도로 깨끗하게 마음을 닦아야 한다. 충직한 종으로 하나님 앞에 바로 서야 한다. 

햇빛중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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