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종 문 목사
원 종 문 목사

하나님은 애급 바로의 압제 밑에서 해방된 이스라엘민족에게 “엿새 동안 일하고, 이렛날은 야훼를 섬기는 거룩한 날이니 철저하게 쉬어야 한다. 안식일에 일하는 자는 반드시 사형에 처하여야 한다/엿새 동안은 일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렛날은 안식일, 주님을 위한 거룩한 안식의 날이니, 이 안식일에 일을 하는 자는 누구나 사형을 받아야 한다/이스라엘 백성은 안식일을 대대로 지킬 영원한 계약으로 삼아야 한다/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들은 대대로 안식일을 영원한 계약으로 삼아, 이 안식일을 지켜 나가야 한다/야훼가 엿새 동안에 하늘과 땅을 만들고 이렛날은 쉬며 숨을 돌렸으니, 안식일은 나와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 세워진 영원한 표가 된다/이것은 나와 이스라엘 자손들 사이에 세워진 영원한 표징이다. 주님이 엿새 동안 하늘과 땅을 만들고, 이렛날에는 쉬면서 숨을 돌렸기 때문이다"(공동번역성경 출애굽기 13장 15-17절)는 네 번째 계명을 주었다. 

구약의 안식은 하나님의 날이기 때문에 거룩하게 지키라고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안식일을 신앙의 표징으로 삼았다. 따라서 하나님의 자녀들은 안식을 거룩하게 지켜야 한다. 위 성경귀절에는 두가지의 뜻이 담겨 있다. 하나는 노동으로부터의 부자유한 사람들의 쉼의 권리를 말한다. 특히 노예들의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을 율법으로 강제한다. 둘째는 노동을 창조행위로 말한다. 

노동은 창조를 통해서 기쁨을 누린다. 안식이 없는 노동, 휴식이 없는 노동은 고욕이다. 노동에 얽매인 땅에 구속시킨다. 노동은 하나님의 창조행위이다. 여기에는 안식이 필요하다. 하나님은 6일동안 천지를 창조하시고, 7일째 쉬셨다. 한마디로 노동은 창조와 관련되어 있다. 인간의 최종목적은 안식한다. 하나님의 품에 열원히 안식한다. 성경은 안식년이 돌아오면 가난한 사람들의 모든 채무를 탕감해 주라고 했다.

헌데 오늘 세상은 율법주의에 만연되어 있다. 권력과 자본이 노동을 규율하려고 한다. 권력과 자본이 노동을 옭아맨다. 그래서 노동자들이 아욱성친다. 그리고 투쟁한다. 투쟁을 통해 권력을 찾는다. 권력과 자본은 권모술수가 심해 노동자들을 층층이 갈라 놓는다. 우리는 쌍용자동차 노동조합과 대우조선 하청업체 노동자들의 아우성에서 권력과 자본의 권모술수를 똑똑히 보았다. 그렇다보니 하청노동자들은 하늘을 향해 아우성 칠 수밖에 없고, 아우성쳤다. 

정부와 자본, 그리고 권력에게 이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오죽했으면 하나님은 안식일에 위어야 한다고 율접으로 강제했겠는가. 한국교회 역시 노동자들을 쉬지 못하게 했다. “천상의 삶을 위해서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고 하며, 노동자들이 쉬는 날에도 교회출석을 강제했다. 항상 고난의 형장서 고통당하는 사람은 가난한 노동자이다. 수해 후 쓰레시를 치우는 사람도 청소노동자이다. 

여기에 대해 교회는 관심없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할 일을 잃어버렸다. 국회의원이라는 작자들은 수해현장의 고통당하는 사람들의 아픔을 몰각하고 논담 따먹기나 한다. 오늘날 곳곳에서 일어나는 사태를 보면, 국회와 정부가 이들의 수해현장의 수재민과 노동자들을 딸아 뭉갠다.  하나님은 바로의 압제 밑에서 신음하는 이스라엘 민족, 노예, 떠돌이들의 아우성 소리를 듣고, 이들을 해방시켜 주셨다.    

예장 통합피어선 증경총회장

저작권자 © 기독교한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