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적인 민족통일을 노래하자

한국교회는 평화의 공동체로서 평화를 선포하고 실천할 사명을 부여받았다. 그럼에도 오늘 한국교회는 서로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생각이 다른 목회자를 향해 좌파’, ‘빨갱이’, ‘용공분자로 낙인찍는다. 그것은 남북한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남북한이 적대적인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예언자 전통을 따르는 목회자와 신학자들은 화해의 사도로 부름 받은 한국교회는 민족분단이라는 남북의 막힌 담을 헐고 통일의 길을 다져갈 책임이 있다고 말한다.

한마디로 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한 한반도의 봄날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부 목회자와 교인들은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분단의 현장에 교회를 세우고, 한반도의 평화와 한민족의 화해, 그리고 평화적인 민족통일을 위해서 봉사하라고 조언한다. 광복 77주년을 맞은 한국교회는 평화적인 민족통일을 통해 절반의 광복을 완성 할 의무가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았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대한민국은 광복 77년을 맞았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여전히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로 남아 있다. 분단은 오늘 대한민국을 이념 간의 갈등, 노사 간의 갈등, 세대 간의 갈등, 정치적 분열, 사회적 갈등, 보혁의 갈등 등 사회전반에 걸쳐 분열을 야기 시키고 있다. 이것은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보수적인 교회와 목회자들의 이념적 갈등까지 그대로 드러나고 있는 상황이다.

자유복음통일을 외치는 목사의 입에서는 여전히 자신을 따르지 않는 목회자를 향해 빨갱이’, ‘용공으로 매도한다. 분명한 것은 영미교회의 영향을 받은 한국교회는 용공’, ‘빨갱이가 있을 수 없다. 해방이후 6.25전쟁을 전쟁해서 한국교회의 목회자와 교인들은 공산주의자에 의해 핍박을 받았고, 공산주의자들의 악을 보았다. 이것은 한국교회가 북한공산당과 함께 살아야 할 이웃으로 보지 않는 이유이다.

이렇게 분단의 아픔과 상처는 사회 전반에서 영향을 끼치고 있다. 분단은 77년 동안 정치권에서 악용돼 왔고, 악용되고 있다, 교회도 분단을 철저하게 악용돼 왔다. 보수적인 교회 안에서 색깔은 다르더라도, 모두가 반통일적인 모습을 보여 온 것은 다르지 않다. 사실 분단으로 인해 많은 사람이 희생을 당했고, 감옥에 갔다. 이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국민적 갈등도 봉합 할 수 없다. 교회 역시 한 성령, 하나의 성경, 같은 찬송가를 부르고, 같은 신앙고백을 하면서, 분열과 갈등으로 점철되고 있다. 교회의 이념적 갈등은 치유할 수 없을 정도로 극에 달했다. 모두가 예수님의 샬롬을 외치면서, 그 속에 로마팍스가 드리워져 있다. 오늘 한국교회 안에서는 예수님의 평화(샬롬)을 찾아 볼 수 없다. 모두가 힘에 의한 평화에 박수를 보낸다.

한마디로 모두가 관념에 사로잡혀 로마팍스를 부르짖는다. 예배 때마다 부르짖는 평화적인 민족통일을 위한 기도는 공허하기만 하다. 한마디로 말과 행동이 다르다는 얘기다. 대한민국의 광복은 반쪽짜리 광복으로 기쁘지도 않다. 이제 교회는 극우집단이 되어 북한은 무조건 싫다. 관념에 사로잡혀 있다. 하나님의 뜻은 도대체 무엇인가(?) 교인들은 고민에 빠진다. 빠질 수밖에 없다.

관념과 이념에 사로잡혀 있는 한 한반도의 봄날은 없다
한민족의 화해와 한반도의 평화 우리 스스로 정착시키자

광복의 완성 위해 평화(샬롬)을 노래하자

그리스도인 모두는 이스라엘민족이 찾았던 하나님을 우리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한다. 이스라엘 민족의 하나님은 남한민족의 하나님이다. 남한민족의 하나님은 북한민족의 하나님이며, 세계민족의 하나님이다. 한마디로 하나님,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모두가 한 형제이며, 자매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혼자 가는 곳이 아니다. 이스라엘 민족과 남한 민족만 가는 곳이 아니다. 북한민족과 세계민족도 함께 가야하는 곳이다. 한국교회가 북한선교와 세계선교에 적극적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광복 76주년을 맞아 미래목회포럼 오정호 목사가 지난해 8.15 광복절 제76주년 메시지에서 밝혔듯이, 분명 반쪽자리 광복이다. 그렇다 한국교회는 반쪽자리 광복을 완성시킬 의무가 있다는 이 시대의 사도로 부름 받았다는 것을 분명하게 깨달아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이 이념과 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한, 로마팍스를 외치는 한, 북한을 적대적으로 생각하는 한, 분단된 조국, 한반도의 완전한 광복을 기대 할 수 없다.

한반도의 평화와 한민족의 화해도 기대할 수 없다. 오늘 윤석열 대통령이 북한을 향해 반목의 말을 쏟아내자, 북한은 핵으로 남한을 위협한다. 이런 상황서 한국교회는 화해자의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남북한민족이 성령 안에서 하나 되는 꿈을 꾸며, 기도하고, 평화적인 민족통일을 위해서 봉사해야 한다는 사명에 충실해야 한다. 서독과 동독이 하나 되는데 그 중심에 독일교회가 있었다는 사실을 한국교회는 교훈삼아야 한다.

한국교회가 이념과 관념을 뛰어 넘어 광복 77, 분단 77년 동안 한반도의 평화와 한민족의 화해를 위해 봉사했다면, 한반도의 상황은 크게 달라졌을 것이라는 것을 생각도 해 보지 않을 수 없다. 마음이 설레지 않는가. 헌데 한국교회는 정치인들의 충견으로 예언자의 사명에 충실하지 못했던 잘못을 회개해야 한다.

해방이후 정치인들은 남북분단을 자신들의 정권유지를 위해 철저하게 악용해 왔다. 그것은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진 북한정권도 마찬가지이다. 체제 유지를 위해 핵무기를 개발해 남한을 위협한다. 한국교회 역시 관념과 이념의 틀에 갇혀 반통일적이며, 로마평화적이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헤롯과 바리새인과 무엇이 다른가. 예수님은 이 땅에 평화를 주러 왔다. 말로만 평화(샬롬)을 외쳐서는 절대 한반도의 평화는 없다. 행동해야 한다.

77년의 적대적 관계를 청산하자

과거처럼 전쟁은 누가 이기고, 지는 것이 아니다. 이제 전쟁이 일어나면 남북한 민족 모두가 공멸한다. 때문에 남북한 민족 모두는 전쟁을 거부한다. 그래서 생각 있는 국민들은 한반도의 비핵화와 한민족의 화해,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서 노력하자고 목소리를 높인다. 기독교계의 각 단체들도 이 같은 내용의 성명서를 해마다 광복절을 맞아 발표한다. 그러나 한반도의 비핵화와 평화로 가는 길은 멀고도 험하다.

남북한 민족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것은 한반도를 둘러싸고 있는 강대국과, 특히 북미 정상들이 결정해야 할 문제이다. 우리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평화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다시 한 번 깨닫는다. 한반도의 평화는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들이 가져다가 주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들 나라는 한반도의 평화를 절대로 원하지 않는다.

남북한 민족은 분단 이전부터 우리의 문제를 가지고, 우리 땅에서 우리 스스로 결정한 일이 한 번도 없다는 사실. 주변 강대국들에 의해서 남북한이 분열되었고, 정권을 탐하는 자들에 의해서 분단이 고착화되었다. 한반도를 둘러싸고 있는 주변강대국은 자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적대적인 발언을 계속하며, 한반도의 긴장을 고조시켜 왔다. 그것은 대한민국을 36년 동안 신민통치 아래 두었던 일본의 태도를 보면 극명해진다.

일본은 대한민국이 잘되는 꼴을 보지 못한다. 일본은 일제 36년에 대한 반성도 사과도 없었다. 그래서 평화적인 민족통일을 바라는 국민은 남북한의 문제는 우리 민족끼리 해결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대한민국에 감사해야 할 일본의 태도는 용서 할 수도 없고, 용서해서도 안 된다. 용서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 할 때 비로소 용서를 받을 수 있다.

일본은 그렇지 않다. 오늘 일본은 오히려 대한민국을 밟고 일어서려고 한다. 경제보복도 단행했다. 대한민국 국민은 일본의 경제보복에 맞서 일본상품 불매운동을 벌였다. 국민들은 일본의 경제보복에 맞서 싸우는데, 일부 정치인과 학자, 기독교인의 입에서 천박한 목소리만 토해낸다. 그러면서 자신들만이 애국자라고 말한다.

이들은 일제치하에서 시궁창보다도 못한 대접을 받은 이 땅의 소녀들, 일본군에 끌려가 총알받이가 되었던 이 땅의 청년학생, 강제로 끌려간 노동자들의 아우성을 듣지 못하고 있다. 또한 이들은 천왕을 섬기는 일본은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는다는 성경의 진리를 잃어버렸다. 안타까운 것은 오늘 일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강대국을 우상으로 섬기는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는 사실.

한반도 평화의 걸림돌인 일본의 악

모두가 근본주의에 빠져 보수를 외치다가 보수주의에 빠져버렸다. 이런 사고로는 한반도의 평화와 한민족의 화해를 기대 할 수 없다. 한민족의 화해와 한반도의 평화는 성령 안에서만 해결 할 수 있다. 오늘 한국교회는 성령을 몰각했다. 성령을 말하면서 너를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성령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악용한다. 성령을 복 방망이로 악용하는 목회자나, 영성사역자는 한마디로 사이비와 다르지 않다.

지금까지 권력자들은 남북한의 화해와 통일, 그리고 한반도의 평화를 정치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민이 관여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보여 왔다. 이 같은 주장은 집권층, 또는 교회내부에서 거세게 일러 왔고, 지금도 일고 있다. 이는 정치적인 측면에서, 국제관계를 측정하고, 국내적으로 힘의 균형 등 역학관계를 측정하는 한편, 경제적으로 실리를 분석함으로서 비로소 내려지는 결론이다.

따라서 그러한 분석은 고도의 전문성을 요하기 때문에 교회와 국민이 관여할 수 없었다. 그래서 군사독재정권 아래서 한민족의 화해와,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은 정부주도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교회나, 민이 통일문제에 관여하면, ‘국론분열등을 운운하며,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운동을 철저하게 막았고, 교회 역시 관여하지 않았다. 통일에 관여하는 목사나, 국민은 국가보안법으로 옭아매 감옥으로 보내졌다.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말하는 예언자전통의 목회자와 교인, 그리고 교회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가 거셌다. 교회 역시 우리의 과제는 선교하는 것이기 때문에, 통일과 평화는 정치적, 경제적인 것이기 때문에, 이 문제는 교회의 일이 아니라는 입장이었다. 한마디로 한국교회는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 남북한 민족의 화해를 위해 허공을 치는 기도에 불과했다. 세상의 모든 것이 변하는데, 이것만은 지금도 변하지 않고 있다.

행동하는 모습을 전혀 보여주지를 못했다는 말이다. 교회는 자연스럽게 반통일적인 단체가 되어버렸다. 이는 고착화되어 통일의 당위성을 말하는 교회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한국교회는 북한선교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교인들로부터 북한선교헌금을 거두어 왔다. 이것은 제 힘으로 한반도의 평화와 한민족의 화해에 대한 의지를 전혀 보여주지를 못하는 것을 그대로 드러낸다.

어떤 과정으로든지 통일된 다음에 그곳에 상륙해, 영미선교사들이 남한에 이식시켜 놓은 교파주의를 그대로 북한에도 이식시키겠다는 것을 전재로 하고 있다는데 안타깝다. 오히려 통일문제에 깊숙이 관여하는 목회자와 교인을 빨갱이로 매도한다. 예배시간마다 부르짖는 한국교회의 통일을 위한 기도는 헛소리에 불과하다. 한반도의 평화무드가 조성되었던 전 정부를 향해 극우적 기독교인은 비판하며, 반통일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도 부인 할 수 없다.

한국의 문화와 역사를 몰각하고, 받아드린 영미의 신학은 한국교회를 자신의 게토에 감금해 버렸다. 부자가 된 한국교회는 가진 것이 너무 많아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에 대해서 별 관심이 없다. 한국교회는 이 민족사에서 떨어져 나가 자기 게토에 감금되어 예수님의 평화와는 거리 멀다. 보수적인 한국교회는 예수님의 샬롬을 외치기보다는, 힘에 의한 팍스를 외치며, 반공주의와 승공주의에 매몰되어 있다.

한마디로 북한을 굴복시켜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 결과 교회 안에서는 힘에 의한 평화(로마 팍스)를 외칠 수밖에 없었고, 지금도 계속 외치고 있다. 대부분의 교인들은 로마 팍스와 예수님의 평화를 구분하지 못한다. 수명을 다한 조선말, 을사보호조약 아래서 권력을 등에 업고 한국에 들어온 초기교회는 고난당하는 민족의 역사와 유리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 보니 오늘 한국교회는 통일과 평화, 민족화해의 문제는 정부가 할 일이고, 남북관계가 좋아지면 북한에 가서 많은 교회를 세우는 것이 한국교회가 할 일이라고 착각해 왔다.

그것은 두만강에서 성경책을 비닐봉지에 넣어 북한을 향해 던지고는 북한 선교의 사명을 감당했다고 말하는데서 쉽게 알 수 있다. 남북한의 선교는 죽음의 직전에 있는 남북한 민족이 함께 사는 길이다. 선교는 예수님을 전하고 그리스도인의 일원이 되게 하는 것이 아니다. 선교는 예수 믿게 하고 천당에 들어가게 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나라 이 땅서 실현하자

죽음에 있는 이웃을 살리는 것이 선교이다. 지금까지 한국교회는 구원천당’, ‘복음’, ‘성령등 초기한국선교사들이 한민족의 역사와 문화와는 유리시키며, 전한 싸구려 복음을 그대로 외치고 있다. 선교는 관념과 집단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구조악들과 싸워 이기는 것이며, 소외된 자들의 인권회복이다. 하늘은 혼자 가질 수 없듯이, 하나님의 나라도 혼자갈 수 없다. 특히 남북한의 선교에 있어서, 북한만의 선교, 남한만의 선교가 되어서는 안 된다.

한민족의 선교는 남북한민족은 물론, 세계 200여개국에 흩어져 사는 한민족 전체의 선교가 되어야 한다. 그것은 남북한민족을 비롯한 한민족 모두가 함께 하나님나라운동에 참여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성서는 그리스도인들이 한민족 선교를 위해서 통일문제에 관여해야 하는 당위성을 분명하게 가르치고 있다. 이스라엘은 북이스라엘 전통과 남유대 전통 두 주류가 있다. 북이스라엘 전통은 출애굽 전통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것은 민에 바탕을 둔 이른바 계약전통이다. 또한 해방전통이다. 이스라엘 민족은 이집트에서 해방시킨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배신했다. 하나님의 주권에 도전했다.

이제라도 한국교회는 가던 길을 멈추고, 남북한 민족의 화해와 한반도의 평화를 저해하는 관념과 집단으로부터의 해방돼야 한다. 이러한 구조악과 싸워 이겨야 한다. 특히 한국교회는 예수님을 교리로 만들어 한국교회의 분열과 갈등을 조장하지 말아야 한다. 한국교회의 분열이, 곧 남북분단으로 이어졌다는 사실을 한국교회는 잊지 말아야 한다. 한민족의 분열은 민에 의해서 분열되지 않았다.

정권야욕을 가진 집권계층과 강대국에 의해서 분열되었다. 한반도의 분열은 국제정치 장난의 산물이라는 것을 한민족은 깨달아야 한다. 남북한 권력자들이 민을 생각하고, 민의 자세를 견지했더라면, 강대국들이 한반도의 분열에 관여하지 못했을 것이다. 광복 77, 민족해방 77, 분단 77년을 맞은 남북한 민족은 이러한 구조악을 극복하고, 한반도의 비핵화와 평화, 한민족의 화해를 위한 행진을 벌여야 한다.

이것이 남북한 민족이 가야 할 길이다. 77년 동안 분단된 한민족은 이념과 관념의 고통 속에서 살아오지 않았는가. 평화로 가는 길은 멀고 험하다.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은 군사력과 통치체제 강화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남북한은 지난 77년 동안 분단이라는 것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면서, 국민들을 억압해 왔다. 하나님의 주권을 침범했다. 특히 6.25 한국전쟁은 남북한민족 사이에 깊은 상처를 가져다가 주었다.

또한 이것은 남북한민족 상호간의 절대불신의 계기도 만들어냈다. 오늘 남북한민족이 평화의 길로 가려는데 너무나 힘들다. 곳곳에 많은 장애가 도사리고 있다. 한민족의 화해는 성서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을 절대화 한다는 것을 깨닫자. 한국교회는 하나님의 주권을 말하면서,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봉사하지 않는다. 오히려 반통일적이며, 반평화적이다.

한반도의 평화와 민족통일은 우리가 갈망해온 새로운 나라, 하나님나라, 새로운 세상 실현의 열쇠이다. 또한 이것은 하나님의 통치 아래 두는 하나님 나라를 실현하기 위해서라도 한국교회는 힘에 의한 팍스를 거부하고, 예수님께서 버림받은 자들과 함께 실현한 하나님나라, 우리가 갈망한 샬롬(평화)를 이 땅에서 실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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