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보 연 교수
장 보 연 교수

인간 모두는 욕망에 사로잡혀 있다. 인간의 욕망은 하나님의 질서를 파괴하고, 인간의 질서를 파괴한다. 교회의 질서도, 가정의 질서도 무너트린다. 그래서 사람에게는 절제가 필요하다. 절제는 신앙생활의 덕목이다. 인간에게는 항상 행위를 어떻게 다스리냐(?)에 의문을 갖는다. 인간의 행위를 다스리기 위한 지혜가 필요하다는 애기다. 

특히 그리스도인은 자신을 하나님에게 맡긴다. 하나님에게 나를 맡긴다는 것은, 나를 길들이기 위한 것이다. 인간이 길들여진다는 것은 관계를 맺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세상 속에서 서로 다른 사람을 사귀고 싶으면, 서로의 처지를 헤아려 길들여야 한다. 사람과 사람이 새로운 관계를 맺는 것처럼 힘든 일은 없다. 그리스도인들은 은혜를 받았다고 말하면서, 옛사람의 틀에서 벗어나지를 못한다. 

오늘 대한민국의 고민은 여야 정치인 모두가 국민을 위해서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지를 못한다는 것이다. 여전히 간난하고 소외된 사람, 낮은 자리에 있는 사람, 버림받은 사람을 위한 정책은 거의 보이지를 않는다. 정치인들은 고집을 꺽지 못한다. 대통령과 정치인들은 국민을 위한다고 말하는데 국민들은 그렇게 느끼지를 못한다는데 문제가 있다. 

전혀 변화되는 모습을 보여주지를 못하고 있다. 그리스도인들도 예수님을 위해서 산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대부분 예수님의 삶의 현장과는 거리가 멀다. 성경의 교훈대로 살기 위한 모습을 전혀 보여주지를 못하고 있다는 애기다. 모두가 절제된 삶에 길들여지지 않고 있다. 잠언 16장 1-9절은 삶의 지혜를 말하고 있다.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부터 나오느니라/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깨끗하여도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네가 경영하는 것이 이루어지리라/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1)그 쓰임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느니라/무릇 마음이 교만한 자를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니 2)피차 손을 잡을지라도 벌을 면하지 못하리라/인자와 진리로 인하여 죄악이 속하게 되고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말미암아 악에서 떠나게 되느니라/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와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적은 소득이 공의를 겸하면 많은 소득이 불의를 겸한 것보다 나으니라/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인간은 위로 거슬러 올라가다가 보면, 하나님을 만난다고 본다. 그래서 인간은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야 한다. 지혜의 반대는 무지가 아니다. 교만이다. 교만한 자는 자기 고집대로 산다. 우리는 잘난 정치인과 지도자들이 고집대로 살다가 분열과 갈등을 종종 일으키는 것을 본다. 오늘 대한민국의 잘난 정치인, 잘난 교회지도자의 뒷모습은 분열과 갈등만이 보인다. 

오늘 한국교회가 하나 되지 못하고 분열과 갈등의 보습을 보이는 것은 내안의 욕망을 절제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절제가 길들여져 있지를 않아 나의 마음을 열어 너를 받아드리지 못한다. 욕망의 주체는 이간이지만, 절제의 주체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잊었다. 모두가 내안에 갇혀 자신이 하나님이 되려고 한다. 

그렇다보니 목회자는 교인들을 생각하지 않고, 교회 안에서 파벌을 조성한다. 모두가 성령을 몰각했다. 성령 안에서만 나를 개방해 너를 받아드릴 수 있다는 진리를 망각했다. 하나님의 은총으로 살아간다는 것도 잊었다. 모두가 욕망이 가득해 싸움닭으로 변했다. 모두가 분열과 갈등을 일삼다가 사회법정에서 소송을 진행한다. 

이런저런 이유로 하나님의 헌금이 소송비용으로 빠져나가고 있다. 이 소송비용으로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 낮은 자리에서 신음하는 이웃, 버림받은 사람을 위해서 사용하면, 얼마나 은헤로울가(?) 모두가 가던 길을 멈추고, 자신의 돌아보아야 한다. 그리고 절제하는 생활습관을 가져야 한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진리이다. 

굿-패밀리 대표•개신대 상담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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