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수 강 목사
오 수 강 목사

성경에는 여러 가지 직분들이 있다. 지도자 격인 선지자 예언자 선견자 대제사장 제사장 사도 신자의 반열에 장로 집사 등등의 직분 자들이다. 성경에는 교회를 기독교 교주인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라고 표현했다. 그리고 교회는 영혼이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 몸을 이루고 몸의 머리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고 했다. 머리인 예수 그리스도와 몸인 그리스도인이 합하여 몸 된 교회라고 한다. 교회 하면 예수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인이 하나의 유기체임을 성경은 증언한다.

그런데 지금까지 교회 하면 구약시대에 보이는 성막, 성전을 지칭하는 중이다. 그러다 보니 신약시대에 와서도 교회 하면 신자들이 모여서 예배드리는 곳으로 인식한다. 지도자들은 신앙의 열매를 나타내기 위해 보이는 교회 즉 신자들이 예배드리는 곳을 성전이라 칭하여 예배 처소를 잘 짓고 거룩하게 구별되기를 바랐다. 그래서 교회 부흥의 목표를 많은 신자가 모여 예배드릴 수 있는 처소를 성전이라고 하여 구약의 예루살렘 성전처럼 크고 웅장하며 화려하고 거룩한 모습을 갖추기 위해 신자들의 재력을 헌금이라는 구실을 통해 헌납받아 성전 건축에 집중하는 것이 가장 보람된 신앙인의 소명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오늘날 많은 교회 건물이 세상의 어느 기업집단의 건물과 비교해도 결코 손색이 없는 정도로 크고 화려하게 지어졌다. 

사실 신약성서에 계시 된 교회는 무기체가 아니라 유기체의 성질을 가졌다. 왜냐하면 교회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했으며 그 몸은 바로 영혼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로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교회의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요 몸은 그리스도인이다. 머리와 몸이 모두 살아 있는 유기체를 의미한다. 그런데 교회를 움직이는 지도자들이나 신자들은 교회하면 무기체인 예배드리는 처소를 성전이라는 개념으로 거룩하게 구별하여 마치 구약의 성전이 하나님이 계신 하나님의 집 개념으로 세상 어느 곳보다도 아름답고 화려하게 건설되기를 희망한다. 그래서 신약시대임에도 불구하고 교회의 이미지를 구약시대의 성전을 이미지화하려 애쓰는 것 같다.    

교회의 이미지가 유기체임에도 불구하고 무기체인 건물 즉 예배드리는 신자보다는 무기체인 예배드리는 처소에 더 관심을 두어 영혼이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보다는 예배당 즉 성전 건축에 더 관심을 가지게 한다. 이는 그렇게 고집하는 배경이 성경이 요구하는 믿음 신앙과는 거리가 멀다. 우선 이렇게 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신자들을 지도하는 목회자 즉 기독교 지도자들의 생각이 중요하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불만이 가득할지 모르지만 다는 아닐지라도 개중에는 사람의 인성이 작용하여 명예와 권위와 교회의 부를 자랑하려는 세속적인 생각 때문인지도 모른다. 남보다 타 교회 교단보다 내 교회 내 교단이 더 크고 화려하고 최첨단 에이아이 빌딩을 소유하여 교회의 부와 세력을 자랑하기 위해 더 크고 더 화려하게 교회의 건물을 지어 올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하다. 지도자들의 성향은 곧 그를 따르는 신자들에게까지 이어져 지도자의 생각을 따라 성전 건축이라는 신앙심으로 온 정성을 다해 교회 건물 건축에 몰입하는 신자들도 존재한다.  
    
이제 세상 돌아가는 시사(時事)와 자연환경 변화, 나라와 나라 사이에 갈등으로 인해 전쟁을 불사하는 국제정세를 볼 때 기독교가 나아가는 방향에 대해 수정을 가해야 할 때가 아닌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신약시대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구약시대의 사고로 지도하는 지도자들과 그들을 따르는 신자들의 생각이 성서로 환원되어,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 위에서 이루어 놓으신 구속의 은총과 그 은혜를 나누어주어야 하는, 몸 된 교회를 이룬 그리스도인의 신앙이 성서로 돌아가야 한다. 지금까지 신약 사랑의 계명을 놔두고 구약의 율법을 고집하는 기독교 지도자의 생각이 바뀌어야 하고, 기독교회를 이루고 있는 신자들의 신앙관이 본래 성경이 계시하는 신앙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래야 교회가 본래 이 세상에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분명하게 나타내며, 교회가 해야 할 사명을 성경이 계시한 대로 감당할 수 있게  한다. 예수님의 몸 된 교회는 교회의 머리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즉 계시에 따라 이 세상에 존재해야 하는 본래의 소명을 감당해야 한다. 교회는 너무 많은 것을 소유했다. 이제는 예수님이 자신의 몸을 나누어 주신 것처럼 교회도 가진 것을 나누어 주는 것이 교회 일이 아닌지? 영생을 위해 예수님을 찾은 부자 청년에게 네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라고 하자 재물이 심히 많은 청년은 근심하며 돌아갔다 하는 말이 부자 한국교회가 아니기를 희망해 본다.    

필운그리스도의교회/ 본지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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