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창 주 교수
김 창 주 교수

시편은 ‘복 있는(ירשׁא) 사람’으로 시작하여 ‘야웨를 찬양할지어다 할렐루야’로 끝난다. 오경이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시편은 반대로 ‘하나님을 향한’ 사람의 기도와 찬양이다. 따라서 연구자들은 시편의 첫 마디가 함축하는 신학적인 의미로 보건대 시편의 핵심(précis)으로 간주한다. 유대교 랍비들은 시편의 특징과 신학적 중요성을 인식하고 ‘하루에 세 차례 아슈레이를 낭송하는 사람은 누구나 다가올 세상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린다’고 가르친다(Berakhot 4b). 지금도 엄격한 유대인들은 아침 기도의 시작과 끝에서 각각 한 번, 그리고 점심에 또 한 번 모두 세 차례 ‘아슈레이’를 낭송한다.

아슈레이는 구약성서에 38 차례 나오는데 시편과 잠언 등 지혜문학에 중점적으로 등장한다. 시편에서 이 단어는 25 차례, 잠언에 7 차례(잠 3:13; 8:32; 14:21; 16:20; 28:14; 29:18), 그 외 욥기와 전도서에 한 번씩(욥5:7, 전10:17) 나온다. 시편 1에서 아슈레이가 ‘복 있는 (사람은) …’으로 한정형처럼 쓰이지만 그밖에는 모두 ‘… 복이 있도다’로 서술형으로 쓰였다.  

아슈레이는 ‘에셰르’(רשׁא)의 남성 복수 연계형이다. 동사형은 ‘아샤르’이며 세 가지 면에서 그 어원을 살펴볼 수 있다. 1) ‘아샤르’는 칼(Qal)형으로 우가릿, 아랍어 등에서 ‘똑바로 가다, 이끌다, 안내하다, 앞으로 가다’ 등을 의미한다. 그러나 구약성서에서 칼동사로는 드물게 사용된다는 점에서 아슈레이와 연결짓기는 불충분하다(잠 9:6). 그렇다면 ‘앞으로 가다’는 무슨 뜻일까? 이와 반대의 개념을 찾아보면 아샤르의 의미가 명확해진다. 대부분 죄와 관련된 단어, 하타흐(אטח), 아본(ןוע), 그리고 페샤(עשׁפ)는 차례로 ‘(과녁을) 놓치다,’ ‘방황하다,’ ‘반역하다’를 가리킨다. 그러니까 죄는 목표를 놓치거나, 그 방향을 놓쳐 똑바로 가지 못하거나, 그리고 그렇게 헤매다가 반역하는 일련의 모든 행위다. 그렇지만 아샤르는 목표를 놓치지 않고, 방황하지 않으며, 반역하지 않고 앞으로 곧장 나아가는 것이 곧 복이다. 다시 말해서 복은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않고’(수 1:7)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줄곧 앞으로 나아가는 것과 같다.

2) 피엘(Piel) 형 ‘이셰르’는 의미를 강조한다. 그리하여 ‘기쁘게 자신의 소유를 누군가에게 주다,’ ‘누군가를 행복하게 하다’를 뜻한다. 구약에서 대부분 피엘 형으로 쓰인다. 까젤레스(H. Cazelles)은 ‘이셰르’가 ‘자신의 소유를 즐거운 마음으로 남에게 준다’는 뜻이 되고 그럼으로써 결국 ‘누군가를 기쁘게 하다’를 가리킨다고 주장한다. 시편과 잠언 등의 지혜문학에 등장하는 아슈레이는 피엘형이며 푸알(Pual)도 한두 번 나온다(잠 3:18; 시 41:2). 명사형으로는 레아의 시녀 실바의 둘째 아들 이름에 ‘아셀’이 들어있다(창 30:13). 

3) 세 번째는 희박하지만 어원적으로는 야샤르(רשׁי)와 관련이 있어 보인다. 야샤르는 ‘옳다,’ ‘바르다’ 등으로 사용되는데 아카드어 ’ešēru (to be in order), 우가릿어 ’ṯr, ’šr (to be upright) 등과 유사하나 내용적인 연관성을 입증하기란 쉽지 않다. 한편 <시락> 25장 23절의 아샤르(to stride)와 민수기 24장 17절의 아슈르(to behold)가 그리스어 ‘makari,zw’로 번역되어 ‘성큼성큼 걷다’와 ‘바라보다’의 의미에 대한 논의가 제기된 적도 있다. 

<70인역>은 아슈레이를 ‘마카리오이’(maka,rioj)로 옮겼는데 신약성서에서 여러 차례 언급된다. 이른 바 산상수훈과 평지설교에 집중적으로 나타나고(마 5:3-11; 눅 6:20-26) 요한계시록에서 두 차례 나온다(계 1:3, 14:13; 참조. 눅 1:45; 11:28; 요 20:29; 벧전 3:14; 4:14). 아슈레이는 시편에서 시인의 소망을 종말론적으로 기원한 것이고 신약의 마카리오이는 복음이 전파되는 종말론적인 상황에서 선포되었다. 그렇다면 시편에서 산발적으로 나오던 것이 두 복음서에 집중적으로 언급되는 이유가 궁금하다. 신약의 마카리오이는 구약의 아슈레이에서 비롯된 것으로 중간에 묵시문학을 거치는 과정에서 종말론적인 임박성이 강조되었다. 
             
 한신대 구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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