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승 자 목사
김 승 자 목사

성경 로마서 12장 4절에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기능을 가진 것이 아니니”라고 기록되어 있다. 레바논계 미국인으로, 예술가이며, 시인이고, 작가인 칼릴 지브란(Kahlil Gibran, 1883~ 1931)는 “당신이 당신 <가진 것>을, 줄 때 그것은 주는 것이 아니다. 참으로 주는 것은 당신이 당신 자신을 줄 때이다”고 했다. 그는 ‘산 골짜기의 요정’, ‘눈물과 미소’, ‘광인’ 등의 작품을 남겼다.   

어느 마을에 삼 형제가 살았다. 이들은 각각 진귀한 물건을 하나씩 가지고 있었다. 첫째는 먼 이웃 나라까지도 볼 수 있는 요술 망원경, 둘째는 하늘을 자유롭게 날 수 있는 양탄자, 셋째는 먹기만 하면, 어떤 병이라도 낫게 하는 신기한 사과가 있었다.

어느 날 첫째가 망원경을 통해 어느 나라의 왕이 게시한 담화문을 보았다. 그런데 불치병에 걸린 공주를 낫게 해주는 사람을 사위로 삼겠다는 내용이었다. 삼 형제는 둘째의 양탄자를 타고, 왕궁으로 향했고, 셋째가 공주에게 하나뿐인, 사과를 먹이자 공주의 병이 씻은 듯이 나았다.

왕은 삼 형제 중 공주와 결혼시킬 한 명을, 뽑기 위해 고심했고, 그 주인공은 셋째로 정하면서 말했다.

“첫째의 망원경과 둘째의 양탄자는 그대로 남아 있으나 셋째의 사과는 공주가 먹어버렸기 때문에 없지 않은가?  셋째는 자신이 <가진 것>을 아낌없이 주었기 때문에 셋째를 사위로 삼겠네”

그렇다. 우리는 자신이 <가진 것>을 남에게 준다는 것은, 이해관계를 항상 따져 보고, 행동하는 게 각박한 현실에서 당연한 이치이다. 자신이 <가진 것>을 조건없이 줄 때는 그것은 그냥 주는 것이 아니다. 우리 자신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심에서 모든 것을 주는 것이다. 결국 손해를 따지지 않고 행동으로 우리 자신의 <가진 것>을 주는 것은 희생이고 헌신이다.

오늘 코로나19와 물가상승, 금리인상으로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은 어려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가진 자들은 더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해진다.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 이것은 교회도 만찬가지이다. 부자교회는 더욱 부자되고, 가난한 교회는 문을 닫아야 처지에 놓였다. 

오늘 부자교회는 가난한 교회의 사정을 외면한다. 부자는 혼자만 살겠다고 한다. 그렇다보니 가난한 교회, 간난한 사람들을 하늘을 향해 호소한다. 그러나 교회와 사회는 냉정하다. 이들의 호소를 듣지 못한다. 초대교회는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모두가 가진 것을 가지고 나와 생활에 필요한 만큼 가져가는 진정한 생활공동체였다. 

그렇다 교회는 남아도는 재정을 교회재산 늘리는 사용하는 것보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위해 봉사는 것이 하나님의 참사랑을 실현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이것이 복음이다. 예수님은 가난하고 소외된 보잘 것 없는 사람들에게 복음(하나님의 참사랑)을 선포하고 이들과 함께 하나님나라운동을 벌였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우리가 사는 세상 속에서 내 가족과 주변의 소외된 이웃과 사회적 약자에게 우리가 <가진 것>을 내주면서, 이들과 함께 따뜻한 하나님의 나라를 만들어가는 거룩한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이것이 복음이다.                         

햇빛중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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