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재 덕 교수
김 재 덕 교수

우리는 사회 공동체 안에서 살기 때문에 사회의 규범, 법, 도덕, 관습 등을 지키며 살아야 바르게 사는 것이라고 배웠고, 그것을 자녀들에게 가르칩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은 사회법을 지키지 않으면서 법원에서 자신이 잘못했다는 판결을 받은 후에 불법을 인정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또한, 어떤 사람들은 사회법의 허점을 최대한 이용하여 자기의 이익을 구하려고 안간힘을 쓰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사회법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야 하나님의 자녀로 사는 것임을 가정에서 자녀들에게 분명히 가르쳐야 합니다. 

사람의 인성에 대하여 성선설이나 성악설을 주장합니다. 성악설과 성선설을 둘 다 받아들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시51:5절에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죄인이었으며 어머니가 임신하는 순간부터 죄성을 지니고 있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근거는 창3:6절에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선악과를 따먹었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것이 불법이고, 그것은 악하다는 것을 분명히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죄의 범위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행위만 포함하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그것은 행동하는 것, 말하는 것, 생각하는 것, 듣는 것, 바라보는 것, 간교한 말에 속는 것, 이기심 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행동 하기 전에 우리의 모습을 살펴보면, 먼저 생각과 유사한 것들이 선행되고, 그다음에 말이나 행동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5:28에 ”정욕의 눈으로 여자를 바라보면 이미 마음으로 여자를 간음했다“라고 하셨습니다. 창3:1~6절에, 하와는 선악과를 따먹기 전에 간교한 뱀에 속아서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운 선악과라고 생각한 후에 선악과를 따먹는 죄를 범하게 됐습니다. 보고 생각한 것이 행동으로 이어졌습니다. 그의 마음이 하나님의 말씀을 선택하지 않고, 뱀의 말을 선택한 것입니다. 자신의 이기심 때문에 눈이 어두워 죽는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선악과를 따먹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 죄의 결과는 영생이 아닌 암담한 사망이었습니다. 

우리가 죄를 지면 영생할 수 있는 기회가 없는 것인가요? 죄의 대가는 반드시 죽어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그러나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죽게 하시고, 우리의 죄를 면제해주셔서 영생하도록 해주셨습니다(요3:16). 하나님께서 예수님 안에 있는 영생을 우리에게 거저 주셨습니다(롬6:23). 즉, 우리는 죄로 인하여 죽을 수밖에 없지만, 예수님을 믿으면 영생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죄를 지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져 사망의 길을 가지만, 우리와 하나님과 원수의 관계를 예수님께서 화해하도록 해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만이 구원의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를 짓게 되는 것은 아담과 하와처럼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고 나의 방식대로 살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살면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어렵지만 예수님을 의지하여 죄와 싸우며 살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녀로 삼으시고 하늘에서 그에 대한 상을 주십니다. 예수님에 대한 믿음만이 우리가 영생하는 길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유지하려면, 첫째, 우리의 구원이 하나님께 있음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자비를 간구해야 합니다. 열심히 기도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영생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둘째, 죄에 대해 날마다 진정으로 회개하여, 그 열매를 맺도록 해야 합니다. 셋째, 선과 악이 교차하는 순간에 예수님을 불러서 사탄을 물리치도록 해야 합니다. 사탄이 제일 무서워하는 것이 예수님의 이름입니다. 넷째, 사탄이 틈타지 않도록 기도, 말씀, 찬양 등으로 우리의 마음을 채워야 합니다. 다섯째, 선한 일을 먼저 해서 죄가 틈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죄를 반복해서 지어도 포기하지 말고 예수님을 의지하며 끝까지 싸워 이긴 자가 되어야 합니다(잠24:16). 부모는 자녀가 어릴 때부터 죄가 무엇이며, 왜 예수님을 믿어야 하는가를 분명히 가르쳐야 합니다.

 고려대 교육문제연구소 교수•안수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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