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창 주 교수
김 창 주 교수

“(복 있는 사람은) 오직 주의 교훈을 자신의 기쁨으로 삼아 주의 교훈을 밤낮으로 읊조린다.” 시 1편 2절의 사역이다. 잘 알려진 구절이라 새 번역의 설득은 좀처럼 어렵다. 히브리어 ‘하가’(הגה)는 ‘묵상하다’(개역개정), ‘되새기는 사람’(공동번역), ‘소리 내어 읽다’(새한글), KJV, GNB, NRSV 등은 ‘묵상하다’(medidate), Tanakh는 ‘연구하다’(study)로 옮겨서 어느 역본이 옳은지 가늠할 수 없다. 개정은 아쉽게도 가장 정확한 의미 ‘작은 소리로 읊조리다’를 아래 각주로 실었다. 먼저 사전적인 뜻을  살피면 동물과 사람의 경우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원형 ‘하가’가 동물에게 적용되면 ‘사자 같이 으르렁거리며’(사 31:4), ‘비둘기처럼 구슬피 우는’(사 38:14; 59:11) 등 신음 소리를 내는 의성어에 가깝다. 사람에게는 ‘중얼거리다,’ ‘속삭이다,’ ‘환호성을 지르다,’ ‘부르짖다,’ 종종 ‘명상하다’ 등으로 해석할 수 있다. 시편에서도 동물의 모습을 묘사하거나 비유하는 경우가 있지만(시 22:13; 55:6; 68:13) 시인들의 찬양과 탄식과 감사일 테니 후자의 예를 눈여겨보면 된다. 

‘하가’의 기본 뜻은 ‘중얼거리다’와 ‘속삭이다’에 있다. 유대교의 전통적인 학습 과정과 생활 방식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된다. 그들의 교육 중 두 가지 특징을 들 수 있다. 하나는 아이의 교육은 대략 5세부터 시작되는 토라의 암송이다. 처음에는 더듬거리며 한두 마디 읽지만 곧잘 암송하게 되며 점차 분량이 는다. 다른 하나는 ‘계명의 아들’ 성인식을 치루기 위해서 공개적으로 읽고 자신의 견해를 밝힌다. 성인은 모두 유대교 전통을 따를 의무가 있기에 시인은 토라를 ‘기쁨으로 삼아’ 아침과 저녁에 토라를 읽고 연구해야 한다고 가르친 것이다. 그러니 개정의 ‘묵상하다’는 어원적으로나 전통적으로 적절한 번역이랄 수 없다.

정작 ‘묵상하다’로 읽어야한다면 ‘하가’ 대신 쉬하(חישׂ)가 와야 한다.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바알이 묵상하는지(쉬하) 잠깐 나갔는지’라며 바알 선지자들을 조롱하는 장면이 나온다(왕상 18:27). 예언자는 아무런 소리나 반응이 없는 상황을 콕 집은 것이다. 특히 시 119편에 ‘쉬하’가 여덟 번 나오는데 개역개정은 모두 ‘하가’처럼 ‘작은 소리로 읊조리다’라고 번역해서 독자를 혼란스럽게 한다(시 119:15, 23, 27, 48, 78, 97, 99, 148). 한편 시 77편의 활용은 중요하다. 먼저 7절에서 ‘내가 마음으로 간구하기를’(쉬하) 언급하고, 12절에는 ‘하가’와 ‘쉬하’를 평행 관계로 서술하여 둘 사이의 유사점을 드러낸다(시 77:12).

(한글개역) 또 주의 모든 일을 묵상하며(하가) 주의 행사를 깊이 생각하리이다(쉬하).
(새한글) 나 중얼거리며 깊이 생각하겠습니다(하가). 주님의 온갖 활동을. 주님 이루신 일들을 골똘히 생각하겠습니다(쉬하).

개역의 ‘묵상하다’는 이미 지적한 바 있고 새한글은 둘의 미묘한 차이를 새기고 있으나 여전히 미흡하다. 즉 ‘하가’는 ‘작은 소리로 말하다,’ ‘쉬하’는 ‘깊이 생각하다’로 사전적인 의미로 구별한 것이다. 그렇다면 두 동사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물리적으로 들을 수 있는 가청(audible) 상태라고 보면 된다. 따라서 히브리 시인의 경우 어떤 상황이든지 고요한 정적이나 골방에서 수행되는 동양의 ‘명상, 참선, 묵상’ 등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 동물이 사람처럼 명상이나 묵상한다고 보기 어렵지만 자신의 의사를 표명하는 방식은 으르렁거리고, 구슬피우는 등 소리로 드러난다. 한국교회에 강력한 전통으로 자리 잡은 시 1편 2절의 ‘묵상하다’는 아침과 저녁에 ‘소리 내어 읽는’ 유대 전통을 생각하면 해결된다. 

유대교의 정경 목차는 개신교의 분류와 다르다. 성문서를 세 번째 묶음으로 편성하여 시편을 맨 앞에 두었다. 시편을 여는 구절에서 토라를 두 번 강조하여 오경, 예언서, 성문서가 토라를 중심으로 연결되었음을 보여준다. 특히 시편은 토라를 시인의 기쁨으로 삼고 매일 소리 내어 읽고 연구하는 사람에게 복이 있다고 선언한다. 이렇듯 ‘복 있는 사람’이야말로 결국에 소리 높여 ‘주’를 찬양할 것이라며 시편의 대단원이 마무리된다. 서두에서 두 차례 야웨의 율법(시 1:2)은 결어에서 두 차례 찬양으로 이어진다(시 150:6).   
 한신대 구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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