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1일은 세계교회가 지키는 종교개혁기념일이다. 한국교회도 매년 10월 마지막 주일을 종교개혁기념주일로 지키며 그날의 의미를 되새긴다.

마르틴 루터는 15171031일 비텐베르크 대학 궁정교회 정문에 95개조의 반박문을 부쳤다. 그 반박문은 당시 교황 레오 10세가 성 베드로 성당 건축비 충당 목적으로 판매한 면죄부를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이것이 종교개혁의 시발점이 되었다.

루터는 인간의 노력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맺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일방적 은혜 안에서 인간을 살아가고, 그 은혜에 대한 약속을 붙잡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오직 그리스도에 의해 생긴 믿음이 해답이라는 것이다.

종교개혁기념일은 개신교가 탄생한 생일이나 마찬가지다. 그런 의미를 지녔음에도 한국교회의 관심과 호응도는 그다지 높지 않다. 올해도 한국웨슬리언교회지도자협의회, 한국칼빈학회 등 유관 단체들과 일부 교회가 조촐하게 기념행사를 마련했을 뿐 한국교회 전체가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그런데 문제는 한국교회가 이날을 기념하느냐 않느냐가 아니다. 한국교회가 종교개혁의 정신을 교회와 사회에 실천하고 있고 매일 매 순간 개혁하는 교회라면 기념식을 하고 안 하고가 무슨 대수겠는가.

그렇다면 지금 한국교회는 오직 성경’(Sola scriptura), ‘오직 은혜’(Sola Gratia), ‘오직 믿음’(Sola Fide), ‘오직 그리스도’(Solus Christus), ‘오직 하나님께 영광’(Soli Deo Gloria)의 정신으로 살아 역사하고 있는가. 아니면 종교개혁 이전의 구태와 폐습으로 되돌아갔는가.

한국교회는 최근 10여 년간 급격한 교세 감소 현상을 보여 왔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면서 더 이상 추스르기 어려운 지경이 되었다. 이건 잠시 잠깐의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다. 한국교회가 스스로 자정 노력을 포기하고 개혁의 과제를 방치한 결과물이다.

그 원인을 한두 가지로 정의하기 어렵지만, ‘세속화가 교회를 내리막길로 인도하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세속화된 교회는 세상에 대안이 될 수 없고, 사회에 희망이 되지 못하는 교회에 남아있을 젊은이도 없다. 한국교회에 제2의 종교개혁이 시급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기독교한국신문이 한국교회라는 큰 바다를 향해 창간의 출항을 한 지도 어느덧 10년이 되었다. 그 적지 않은 시간 속에서 때론 교계 언론이 나아갈 방향대로 직진하지 못하고 우회하거나 후퇴하는 일도 있었음을 솔직히 시인한다. 그 모든 걸 교계 언론이 처한 여건과 환경 탓으로 돌릴 순 없다.

다만 한국교회를 깨우는 파수꾼의 역할을 하기 위해 나름 최선의 노력을 다해왔다. 그건 세속에 물든 교회, 영적으로 잠든 교회를 깨우라는 주님이 모든 교계 언론에 주신 사명이기 때문이다.

지난 10년을 돌아볼 때 모든 게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부족한 신문을 애독해 주신 독자 여러분과 광고와 후원으로 격려해 주신 모든 분들께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 그 사랑의 빚을 한국교회가 제2의 종교개혁 정신으로 다시 일어나 빛을 발하기까지 언론의 사명을 충실히 감당하는 것으로 갚을 것을 약속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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