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수 강 목사
오 수 강 목사

지도자들이 교회의 강단에서의 외침 내용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학사 겸 선지자 에스라는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 성전을 재건하면서 백성들에게 강단에서 율법을 강론하였으며, 사도행전에 베드로와 바울은 모인 무리에게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십자가의 복음을 증언하는 모습을 기록으로 보게 한다. 이들이 전한 내용은 모두 율법과 복음의 순수한 하나님의 계시를 전하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오늘 교회 강단에서 외치는 지도자들의 전하는 내용이 궁금하다. 순수한 복음인지 아니면 철학과 윤리와 세상의 학문을 섞은 내용인지? 혹시 강단에서의 외침을 재미있게 하기 위해 유머와 예화에 치중해 복음을 훼손하지는 않았는지 심사숙고해야 한다.

강단의 가르침이 복음적이며 순수한 진리를 선포한다면 듣는 신자들이 사회에 파송 받아 생활 속에서 복음을 실천하는 순전한 신자의 소명을 감당할 줄로 본다. 그런데 크게 보면 지금 기독교의 복음 전도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왜냐하면 교회를 이룬 신자들이 사회에 나와서 신자와 세상 사람과의 구별된 언행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는 교회 강단에서 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지도자들의 가르침 내용이 부실한(?) 결과가 사회 나간 신자들의 행위에서 나타나지는 않는지도 의문이다.

강단에서 말씀을 선포하는 지도자들은 자신들이 전하는 말씀의 내용에 대해 먼저 전하는 자 자신이 지켜나가는 모범이 필요하다. 성령의 인도로 내가 전한 복음을 전해 들은 자들이 들은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어진 다음 육신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수행하기 어렵겠지만 그대로 지켜나가기로 다짐한다면 그 말씀은 생명력이 있어 결실을 가져올 것이다. 그러나 내가 전한 복음이 전하는 자가 믿음이 없이 그냥 의식적으로 전한다면 그 열매는 맺기가 어렵다. 복음에는 언제나 하나님의 의가 나타난다고 하였다. 하나님 말씀의 위력은 전하고 듣는 자 모두에게 전이 현상으로 이루어진다. 전이 현상은 오병이어의 이적 현장에 나타난 하나님의 능력이다. 물고기 두 마리와 떡 다섯 덩이가 장정만 오천 명을 먹이고도 남은 기적이다. 어린아이의 손에 들렸던 떡과 물고기가 예수님의 손에 들린 후 축사 기도를 통해 제자들의 손에 들려졌을 때 예수님의 기적 현상이 제자들의 손으로 이어졌으며, 제자들의 손에서 백성들의 손에 전해졌을 때 먹는 자들의 손과 입에서 기적이 전이된 현상을 말한다. 그리고 남은 것을 거두니 열두바구니에 가득 찼다고 했다. 예수님, 제자, 백성들은 모두 이적을 체험한 자들이다. 그들 사이에는 믿음이 있었다. 이적을 일으킬 만한 믿음이다. 

지도자들이 강단에서 선포는 신자들에게 하늘의 신비한 이적의 역사가 있게 한다. 말씀의 이적을 체험한 신자들이 사회에 나가 복음을 외칠 때 신비한 이적처럼 나타나게 해야 한다. 그런데 사람이 의식으로 이적이 되게 한다고 해서 이적이 되는 현상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오병이어 이적 현장에 이적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무리가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예수님의 입에서 하늘을 향해 축사한 후에 사도들이나 군중들의 손에 이적이 전이 되었다. 이와 같이 오늘의 교회 강단에서 선포된 말씀이 신자들 속에 역사하여 사회에 파송 나간 신자들에게서 자연스럽게 말씀의 이적이 신자들의 말과 행동에서 드러나게 되는 것을 말한다. 신자들은 평소 자신의 성격과 행동이 물러가고 자신도 모르게 신앙인의 진면목을 드러내는 행위를 통해 주변 사람들에게 특히 자신을 잘 알고 있는 분들에게 그리스도인의 품성을 나타나게 하고 있음을 뒤늦게라도 인지하게 된다. 자신의 말과 행동에 스스로 놀라는 현상을 말하기도 한다.       

이러한 이적의 현상은 먼저 강단의 가르침이 거듭난 지도자들에 의해 선포되어야 하는 책임이 있다. 이는 세속적인 기복이나 무병장수와 같은 귀를 즐겁게 하는 소리가 아니다. 듣는 신자들의 귀에 복음이 전달 될 때 성령의 감동이 일어날 수 있는 영적인 감응을 말한다. 한국교회가 뒷걸음질 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복음 선교 초기 순수한 신앙의 열정은 사라지고 성장과 부흥에 눈이 어두워 신심을 잃어버린 결과 교회가 외형적으로는 크게 되었을지라도 속은 그렇지 못한 실정을 이제 알아야 한다. 교회가 기업적으로는 이윤추구가 부흥의 바로 미터가 되었을지라도 진실로 성경에 계시 된 교회는 외형만 존재하고 속은 세속화 종교기업화로 둔갑한 모양 지울 수 없다. 과연 주님이 재림하실 때 지금의 교회에 강림하실지가 매우 궁금하다. 지금의 교회는 성경에 계시 된 교회와 얼마 큰 차이가 있는지 말이다. 강단에서 선포되는 말씀이 거듭난 자의 심령 속에서 전파되기를 기도하자. 강단이 살아나도록 말이다.   

필운그리스도의교회/ 본지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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