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가 일어난 지 10일 지났다. 10일 동안 국민들은 희생자에 대해 애도하며, 이들의 아픔에 함께했다. 교회도 희생자를 위한 기도회를 드리는 등 이들의 아픔에 동참했다. 헌데 일부 목사들은 마귀들의 장난이라며, 이와 관련된 글을 SNS를 통해 퍼 나르기 바쁜 10일이었다.

심지어 어느 목사의 입에서는 북한공산당이 개입한 참사라는 말까지 나왔다. 이태원 참사에 국가도, 공권력은 없었다. 국민의 안위를 책임져야 할 공권력은 이태원 참사 현장에 있었던 국민의 절규를 외면했다. 책임자들은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 골든타임을 보냈다. 국민들은 희생자들의 아우성 소리를 왜 듣지 못 했느냐고 질책한다.

이태원 참사는 후진국에서 일어날법한 참사이다. 선진국의 반열에 올라선지 수개월 만에 대한민국은 후진국으로 추락하는 결과를 가져다가 주었다. 이태원 희생자들은 모두 하나님의 관점에서 이들을 평가하지 않는 결과가 빚어냈다. 인간의 생명을 하찮게 생각한 경과이다. 예수님도 사람의 편견으로 무시당하고,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했다. 예수님이 선택된 인물이라는 전혀 것을 몰랐다.

이태원 참사 현장서 죽임을 당한 희생자들도 하나님이 선택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피조물이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이들을 바라보지 않았다. 그렇다보니 목회자의 손과 입에서, ‘마귀의 장난등등의 막말과 막글이 쏟아져 나온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다는 것은 인간의 생명이 그만큼 소중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이태원 참사로 죽임당한 젊은이들이 안타까운 것이다. 국정을 책임진 사람들 역시 이태원 희생자들을 하나님의 관점에서 바라보지 않았다. 사람의 관점에서 이들을 평가하고, 바라본 결과, 이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오늘 대한민국을 무정부 상태라고 말한다. 이태원 참사가 일어난 몇 시간동안 국가도, 공권력도, 국민도 없었다.

이들의 아우성이 하늘에 사무치고 있다. 오늘 국민들 사이에서는 국가의 새로운 나라, 새 내일,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고 말한다. 오늘 대한민국은 과거에 머물러 있다는 말로 들린다. 그렇다보니 국민들은 나라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다 강원지사의 “‘레고랜드채권을 갚지 않겠다는 말 한마디에 경제 전반이 흔들리고, 국가기반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이런 상황서 정치인들은 저녁이 오기를 기다렸다가 술을 퍼 마신다. 이들의 말 한마디가 나라의 질서를 무너트리고, 국민을 혼란으로 몰아넣고 있다. 그럼에도 이들 주변에 이들을 향해 질책하는 인간은 하나도 없다는데 안타깝다. 사무엘은 이새의 아들들을 불러놓고, 이스라엘 민족을 위해 쓰임 받을 왕을 세우는데, 막내 다윗을 끝까지 기다렸다.

다윗의 아버지와 형들은 다윗에 대해서 관심이 없었다. 어린애 취급을 했다. 하지만 사무엘은 끝까지 다윗을 불러오라고 했다. 다윗이 올 때까지 식사자리를 거부했다. 한마디로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를 실천하는데 합당한 인물을 선출할 때까지 식사를 거부했다. 사무엘은 하나님의 관점에서 사람을 찾았고, 그를 이스라엘 왕으로 삼았다.

이로 인해 이스라엘은 태평성대를 이룰 수 있었다. 헌데 오늘 대한민국의 지도자들은 과연 국민을 위해서 존재하는가(?)에 대해 의문을 갖게 한다. 권력의 기회를 잡은 이들은 과거정부를 들춰내는 일만 하면서, 시간을 허비했다는 지적을 받는다. 핼러윈데이서 156명이 죽임을 당했다. 197명이 부상을 당했다.

그러나 누구에게서도 책임을 지는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하나님의 시각으로 이들을 보고, 미리 참사에 대비했더라면, 이와 같은 일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국민 모두의 마음은 먹먹하다. 그렇다 인간 모두는 하나님의 관점에서 너와 그를 평가하고, 서로 존중해야 한다. 그리고 서로 아껴야 한다. 이럴 때 내면의 모자라는 신앙을 채울 수 있고, 정화된 마음을 경험 할 수 있다. 그리고 미래로 나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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