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창 주 교수
김 창 주 교수

시편 8은 경이로운 창조 세계를 노래하는 신앙고백적인 찬양이다. 본문을 조용히 읽기만 해도 은혜롭지만 시의 내용과 논리를 분석하면 역동적인 찬양을 맛볼 수 있다. 시인은 생각에 잠기는 듯한 분위기로 창조주의 영광, 피조물의 아름다움, 그리고 사람의 영예를 노래한다. 양식상 찬양으로 분류되나 내용은 심오하며 철학적이다. 문제는 앞뒤가 서로 모순된 채 감탄을 쏟아낸다는 점이다. 시편 8에서 세 가지 모순적 주제가 발견된다. 첫째, 하나님의 존재론적 모순이고, 둘째는 하나님과 피조물의 역설이며, 마지막으로 개인이자 공동체로 묘사되는 시인의 불일치다. 

① 하나님은 초월적이며 동시에 내재적이시다. 사람의 인식적인 한계 너머에 계신 분이지만(시 14:2; 80:14; 115:3; 왕상 8:27; 애 3:41), 또한 시인과 피조물의 삶 속에 내주하시기도 한다(시 107:19; 118:5; 출 3:7; 삼상 1:11). 시인은 하나님의 본성을 역설적인 방식이나 표현이 아니고는 창조주의 위엄과 통치를 노래할 방법이 없다고 여긴 것이다. 바울은 동일한 수사법으로 인간의 엇갈리는 두 본성을 갈파한다.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롬 7:25). 시인은 삼라만상을 보면서 하나님의 이원적, 또는 모순적 존재 방식을 가감없이 드러내며 사람의 논리와 지성으로는 일원화시킬 수 없는 창조주의 위엄과 그가 지으신 세상을 찬양한다.

② 시편 8에서 하나님과 세상만물은 창조자와 피조물의 관계로 극명하게 대조된다. 즉 창조주 하나님과 온 세상의 피조물이 대립 항을 형성한다. 하나님과 인간의 질적 차이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둘 사이의 모순적 이원성을 인정하면서도 통합하려는 시도를 ‘역설적 변증법,’ 또는 ‘변증법적 신학’이라고 한다. 피조물의 하나로서 시인이 창조주 하나님에게 다가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피조 세계에 편만한 하나님의 영광을 인식하고(1,3절), 찬양하고(1,9절), 시인에게 맡긴 책임을 수행하는 것이다(4-6절). 

여기에 ‘피조물과 사람’이라는 작은 역설이 놓여있다. 사람은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피조물과 다를 바 없지만 하나님은 그에게 ‘천사’보다 약간 못하게 영화와 존귀의 관을 씌워 피조물을 다스리게 하셨다. 작은 역설에는 섬세한 분석이 필요하다. 사람은 비록 다른 피조물보다 보잘 것 없고 내세울 것 없지만(4절) 하나님은 ‘사람,’ 곧 ‘인자’를 생각하고 돌보시며 자연과 만물을 다스릴 힘을 주셨다(6절). 창조주는 피조물인 사람에게 영광스런 지위와 능력을 허락하시어 하나님께 다가서게 하신다. 시편 8은 창세기 1장과 달리 만물에 대한 소유권이 아니라 청지기직의 원리를 가르친다(창 1:27-29).

③ 우리(we) vs 나(I) vs 그(he). 시인을 가리키는 인칭 대명사의 활용은 한층 더 복잡하다. 곧 ‘우리’(1,9절), ‘나’(3절), ‘그’(4-6절) 등으로 언급되지만 모두 피조물이며 노래하는 자신이다. 먼저 ‘여호와 우리 주’로 호칭되는 ‘주’를 살펴야 한다. 고대 근동에서 왕을 지칭하는 대표적이며 흔한 표현이다. 아도네누(ונינדא)는 1인칭 복수형로서 시인이 속한 공동체를 포함한다. 시편 147에서 ‘우리 주’는 ‘위대하시며 능력이 많으시며 그의 지혜가 무궁하시고’(5절), 느헤미야에서는 ‘율법과 계명과 규례와 율례의 원천’이다(느 10:29). 이렇듯 빈번한 ‘주’의 관용적 의미를 새겨야 한다. 누군가를 ‘주’로 칭하면 “나는 당신의 말씀을 따르겠습니다, 혹은 나는 당신의 종입니다”는 뜻한다. 따라서 시인이 ‘우리 주여’라며 찬양을 여는 이유는 창조주요 지혜와 섭리로 우주를 다스리는 하나님을 순종하며 찬양하겠다는 자발적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그렇다면 시인은 왜 자신을 1인칭 복수, 단수, 심지어 3인칭 단수 등으로 지칭할까? 시인 스스로 ‘우리’와 ‘나’로 언급한 것은 당연히 그가 속한 공동체가 함께 노래하면서도 찬양의 주체로서 개별적 지위를 인정한 것이다. 따라서 둘 사이의 긴장감은 앞의 역설보다 날카롭지 않다. 한편 3인칭 단수 ‘그’는 창조주와 피조물의 모순적, 갈등적 상황에 맞춰 있다. 

피조물이지만 시인에게 허락된 것은 하나님이 ‘생각하고 돌보신’ 그리하여 피조물 중에서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신 힘과 능력을 돋보이게 한다. 따라서 ‘우리’와 ‘나’와 ‘그’는 시인의 분신이며 그가 속한 공동체의 일원으로 찬양할 자격을 갖춘다.
시인은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는 구절로 시작하며 또한 마감한다. 이렇듯 반복되는 히브리어 일곱 낱말은 시편 8의 핵심과 본질을 대칭적으로 묶어주는 동시에 모순된 사실을 통합하고 있다. 시편 8은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를 역설적인 방식과 모순적 표현으로 노래하지만 결코 불협화음처럼 들리지 않는다. 시편 8의 모순적 선율은 하나님 경외와 찬양을 역동적으로 일으키며 깊은 감동과 울림을 준다.    
 
한신대 구약학     

저작권자 © 기독교한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