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욱 목사.
이경욱 목사.

오늘 우리는 정이 없는 사회를 살고 있다. 인정이 메말라 당최 감사를 찾아보기 힘들다. 오죽하면 캠페인으로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를 외치고 있다. 작은 것 하나라도 이웃과 나눌 줄 알며, 이웃의 아픔에 함께 동감하고 함께 울어주던 민족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어졌다. 세계 경제 10대국가를 내달리는 오늘, 감사와 배려는 반비례하고 있다. 1등만을 강요하다가 보니 나머지 것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더 이상 감사와 배려가 넘치는 따뜻한 사회를 볼 수 없다는 점에 억장이 무너진다.

솔직히 오늘 감사는 물질에만 국한되어 버렸다. 얼마나 많은 재물이 오가는지에만 감사의 척도가 정해져 버렸다. 말 그대로 눈에 보이는 감사에만 집중되어 있다. 그러다보니 일상에 감사가 자연스럽게 사라져버렸고, 작은 것에 대한 만족역시 없어졌다. 감사가 인색하다는 말조차도 무색하리만큼, 감사 자체가 없어져 버렸다. 그렇게 사회는 벽을 드높인 각박한 세상으로 변해가고 있다. 이제는 감사는 먼 나라의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추수감사절을 맞은 오늘 한국교회도 제대로 된 감사를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이다. 감사가 차고 넘칠 것 같은 교회 역시 감사와는 담을 쌓고 있는 모습이다. 매일을 허락하시는 주님께 감사를 드리는 모습은 사라지고, 어떠한 결과나 열매에만 감사한 마음을 담는다. 혹자는 추수감사절에만 감사의 의미를 부여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감사는 1365일 매일 계속되어야 한다. 매일 아침에 눈을 뜨고, 식사를 하고, 일을 하고, 거닐고, 잠을 자는 등 일상의 모든 것들이 다 감사다. 어느 특정한 날이나, 특정한 행동, 특정한 결과에만 감사를 할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범사에 감사를 해야 한다. 우리의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진심으로 우러나는 감사의 기도를 드려야 한다. 그것이 감사의 진정한 의미다.

아울러 현재 자신의 위치에 만족하며 감사한 삶을 살아야 한다. 일부는 자신이 처한 현실에 만족하지 않고, 끝없이 욕망을 앞세우고 있다. 이미 많은 것을 가졌음에도 더 많은 것을 갖기 위해 남을 밟고 올라선다. 비단 일반 사람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누구보다 겸손하고 낮아져야할 오늘 한국교회, 목회자, 혹은 성도들의 이야기다. 오늘 한국교회를 보고 기업과도 같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한국교회는 이미 물질적으로 크게 성장했다. 그렇지만 여기에 멈추지 않고 더 높은 곳, 더 많은 것을 가지려고 애쓴다. 마치 대기업이나 마찬가지로 헌금의 액수로 목회의 성공을 가늠하기까지 한다. 그러다보니 온갖 문제들이 발생한다. 일각에서는 사회보다 더 심한 것이 교회라고 지적하기까지 한다. 문제는 그 끝이 어디인지 모를 정도라는 것이다. 휘황찬란한 예배당과 하늘 높이 치솟은 십자가탑의 모습은 이를 잘 대변해 준다. 이것이 바벨탑과 무엇이 다른가. 이 모두가 만족하지 못한 삶에 있다.

이제 모든 것을 내려놓고 만족하며 감사한 삶을 살아야 한다. 그리고 그 선봉에 한국교회가 서야 한다. 한국교회가 감사한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보여줘야 한다. 그것이 바로 존폐 위기까지 내몰린 한국교회를 살리는 방법이기도 하다. 그 방법은 간단하다. 한국교회가 감사의 척도를 물질에 두지 말고,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에 둔다면 모든 문제는 해결된다. 그리고 욕망과 타락의 물결에 힘없이 휘날리고 있는 우리 사회를 온전하게 회복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비단 추수감사절이나 특별한 절기에만 국한하지 말고, 언제 어디서나 감사가 삶의 중심이 되는 사회가 되도록 이끌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한달 남은 2022년 마지막 달을 한국교회가 감사한 마음을 담아 세상에 환원하는 시기로 삼았으면 한다. 비록 어느 때보다 힘들고 어려운 한 해였지만, 이 땅에 더 어렵고 힘든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한다면, 그것이 곧 감사의 도미노가 되어 이 사회에 감사의 물결을 일렁이게 만들 것이다.

예장백석 총회설립45주년한국교회연합운동본부장·백석 전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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