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종 문 목사
원 종 문 목사

기다리는 아기예수의 탄생은 하늘에는 영광이며, 땅의 모든 피조물에게는 평화이다. 아기 예수는 가장 미천한 마구간 말구유에서 태어났다. 자기 안에 갇힌 욕심 많은 사람과 권력자 모두가 자리를 차지했기 때문에 아기 예수는 짐승 곁에서 태어날 수밖에 없었다. 모든 사람들이 자기가정·지위·소유를 지키기에 급급한 나머지 아기 예수를 맞을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다. 오늘 재물 욕심에 가득한 그리스도인들에게 많은 것을 던져주는 말이다.

오늘 한국교회는 자기 안에 갇혀 코로나19의 여파로 시련을 겪는 이웃의 아픔을 전혀 모른다. 살기 위해 노동현장에 나간 노동자가 주검으로 돌아와도 아무런 느낌을 느끼지 못한다. 모두가 돌로 만든 떡을 먹고 마음이 굳어져 버렸다. 모두가 자기 분열과 갈등에 휩싸여 있다. 헤롯은 아기 예수가 태어났을 때, 가장 두려워하고 불안에 떨었다. 한마디로 아기 예수의 탄생은 헤롯의 권력과 지위를 위태롭게 했다.

헤롯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아기 예수를 죽이려고 했다. 아기 예수를 죽이기 위해 베들레헴 부근 두 살 아래의 아기 모두를 살해했다. 아기를 잃은 부모들의 한의 소리는 하늘에 사무쳤다. 이 이야기는 역사의 갈등과 비극의 깊이를 드러낸다. 예수님의 삶은 태어날 때부터 깊은 고통과 결부되어 있다. 당시 로마제국에 의한 평화는 창과 칼에 의한 평화(팍스)였다. 압제와 수탈을 강요하는 평화였다. 이런 평화는 참 평화가 아니다.

하나님의 참사랑을 잃어버린 평화, 팍스이다. 우리민족도 일제 치하와 군사독제정권 아래서 철저하게 경험했다. 남과 북으로 갈라진 한반도의 현실 속에서 ‘힘에 의한 평화’(팍스)의 소리만 곳곳에서 들여온다. 심지어 목회자와 교인들의 입에서 나오는 평화는 한마디로 예수님의 평화, 샬롬은 아니다. 한반도의 평화를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북한을 물리적으로 통합하는 로마평화(팍스)를 외친다. 모두가 하나님을 잘못 믿었다.

목회자와 교인들이 예수님의 평화를 외쳤다면, 역사 앞에, 하나님 앞에 죄인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자기 안에 갇힌 이들은 노동자가 죽어 나가는데도 돌로 만든 떡을 먹고 마음이 굳어져 버렸다. 아무 느낌도 받지 못한다. 성탄의 계절이 쓸쓸한 이유이다. 오늘도 부활하신 예수는 가진 자와 권력자, 강대국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있다. 이것은 거짓된 평화 때문이다. 하나님의 참사랑(복읔=기쁜소식)을 잃어버린 결과이다.

아기 예수의 탄생은 이런 거짓된 평화를 깨고 진정한 평화, 하나님의 정의와 사랑이 가득한 평화로 이르는 길을 열었다. 이처럼 아기 예수의 탄생은 인류 역사의 고통, 사무친 한과 결부되어 있다. 아기 예수의 탄생은 불의한 통치자에 대한 거부를 뜻한다. 억압과 불의에 대한 항거이다. 그런데 한국교회는 권력의 주변을 맴돌며, 피 묻은 손을 위해 기도해 주는 잘못을 범했다. 심지어 6.25전쟁 중 김일성을 위한 기도회도 열었다.

사실 한국교회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옷을 갈아입고, 불의한 정권의 충견노릇을 자처했다. 불의한 권력에 아부하며 고난당하는 이웃을 몰각했다. 그것은 일본제국주의 아래서도 마찬가지였다. 한국교회는 일제하에서 하나님을 배신하는 배교도 서슴지 않았다. 한마디로 천왕을 섬기는 일본이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 앞에 무릎을 꿇는다는 진리를 잊었다. 그 결과 한국교회는 하나님 앞과 역사 앞에 큰 죄인이 되었다.  

예장 통합피어선 증경총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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