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숙 목사.
조명숙 목사.

2022년도 1개월 남짓 남았다. 코로나19의 장기화와 더불어 대통령 선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까지 올해는 정말 다사다난한 한해였다. 여기에 월드컵 16강 진출이라는 기쁨의 순간도 있었는가 하면, 이태원 참사와 같은 슬픔의 조각도 남아 있다. 누군가에게는 희망으로, 또 누군가에는 절망과 슬픔으로, 짧다면 짧고 길면 긴 2022년도 이렇게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다만 누구보다 더 혹독한 겨울나기를 앞둔 소외된 이웃들에게는 이 겨울이 잔혹하리만큼 싫다. 거리에 불 밝힌 휘황찬란한 네온사인과 경쾌한 캐럴도 이들에게는 달갑지 않다. 마치 먼 나라 이야기나 다름없다. 이들에게는 하루하루가 고통이며, 유독 겨울은 그 고통이 배로 다가온다. 그럼에도 도움의 손길은 점점 더 줄어들고 있다. 코로나19 여파로 모두가 힘들어 지면서 소외된 이웃을 향한 나눔과 섬김마저 감소했기 때문이다. 이럴 때일수록 나눔이 활화산처럼 타올라야 하는데, 오히려 차갑게 식어버렸다.

제아무리 힘들다고 해도 어려운 이웃을 위한 나눔의 손길을 놓아버려서는 안 된다. ‘콩 한쪽도 나눠 먹어라고 했다. 하물며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크리스천들이 나눔에 인색해서는 안 된다. 누구보다 나서서 교회 안과 밖, 세상의 가난하고 굶주린 사람들, 고아, 과부, 장애인, 한부모, 소년소녀가장 등 이 땅의 소외된 이웃들을 위한 구제 사역에 적극 나서야 한다.

오늘 한국교회는 가장 어렵고 힘든 시기에 처해 있다고 한다. 누구보다 코로나19의 타격을 입은 것도 사실이다. 전쟁 중에도 멈추지 않았던 예배 중단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겪었고, 여기에 코로나 온상이라는 오명까지 뒤집어쓰면서 전도의 길마저 막혀 버렸다. 급기야 수많은 교회들이 문을 닫기에 이르렀고, 역대 최고의 위기에 처했다. 그래도 소외된 이웃을 향한 도움의 손길을 놓아 버려서는 안 된다. 교회가 어려울수록 더 어려움에 처한 이웃을 도와야 한다.

흔히 일반 사람들은 우뚝 솟은 십자가탑과 위용을 자랑하는 예배당의 크기에 부자교회라고 손가락질 한다. 그러고선 왜 가난하고 궁핍한 사람들을 돕지 않느냐고 아우성친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누구보다 소외된 이웃을 향한 도움의 손길을 건네는 것도 교회다. 연이어 뉴스를 통해 보도되는 나눔의 소식들도 다 교회의 손길들이다. 그럼에도 이들이 왜 교회는 도움의 손길을 건네지 않느냐고 반문하는 것은, 그만큼 교회의 이미지가 실추됐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여기서 주저앉아 있을 수 없다. 세상이 교회를 인정하지 않으면 더 열심히 노력해서 인정을 받으면 된다. 더 낮은 자세로, 더 겸손한 자세로 섬김의 본을 보이면 된다. 가장 높은 권좌에 앉아 세상을 군림하려들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가장 낮은 자로 오셨듯이 그 길을 이제 한국교회가 걸어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분열과 갈등으로 얼룩진 역사를 끊어내고, 화합과 일치의 모습으로 변해야 한다. 개인이나 단체의 권력과 유익익만을 위해 목매지 말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하나가 되어야 한다. 그 어떠한 이유나 변명은 필요 없다. 딱 하나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일을 해야 한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은 갈라지고 깨어진 오늘 한국교회의 모습을 달가워하지 않으실 것이다.

아울러 한국교회는 본질을 되찾아야 한다. 오늘 한국교회는 너무 세속적, 물량주의에 빠져 있다. 세상의 것을 너무 탐한 나머지 끝없는 바벨탑을 쌓고 있다. 목회자 개인의 역량도 중요하다. 솔직히 오늘 한국교회가 손가락질 당하는 주요 원인은 목회자들의 일탈에 있다고 본다. 각종 뉴스의 사건사고 소식에 연일 이름을 오르내리며 한국교회 전체 이미지에 심각한 타격을 주고 있다. 그리고 그 이미지가 점점 고착화되어 한국교회 위상에 먹칠을 하고 있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이대로 가다가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교회붕괴를 맞닥트릴 수 있다. 이제 고작 1개월도 남지 않은 2022년 마지막, 한국교회가 한 해의 마무리를 잘 짓길 소원한다. 그리고 유일한 길이 이 땅의 소외된 이웃의 든든한 힘이 되는 것임을 명심하길 바란다.

예장호헌 총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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