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재 덕 교수
김 재 덕 교수

이제 연말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니, 아이들의 마음이 기대와 즐거움으로 가득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으로, 우리는 죄 사함을 받아 진정한 평화를 누리고 하늘에는 영광이 되셨습니다. 그 평화는 이웃사랑을 통해 온전하게 이루어진다는 것을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웃은 나를 제외한, 나의 주변에서 나와 함께 살아가는 가족, 친구, 이웃, 교회 형제자매들, 우리 사회, 민족 등이 될 수 있습니다. 이웃을 사랑하지 않았던 사람들은 하나님의 분노를 샀습니다. 한 나라가 위태로운 것은 단순히 경제가 어려워서가 아니라, 이 세상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이라는 것도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합니다. 

예수님은 (마22:39) “네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웃 사랑하기를 나의 몸을 아끼듯 하라는 것입니다. 이웃사랑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사랑의 사도인 요한은 (요일4:7~21) “서로 사랑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가 아니며,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형제를 미워하는 사람은 거짓말쟁이며,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는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요즈음처럼 이기심이 팽배하고,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는 이웃을 나 자신처럼 사랑한다는 것은 때로 손해, 핍박, 상처 등의 고난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믿음의 가족은 세상에 희망을 두지 말고, 하나님의 명령을 바라봐야만, 하나님께서 이웃을 사랑할 수 있는 마음과 지혜를 주십니다. 믿음의 부모는 사랑하는 자녀들을 구원시켜 천국으로 안내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눅6:35) “원수를 사랑하고 선하게 대하며,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빌려주면, 하나님께서 상을 주시고 하나님의 아들이 되며, 그리고 하나님은 은혜를 모르는 악한 자들에게도 인자한 분”이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웃을 사랑하지 못하게 방해하는 것은 사탄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후 11:3) “뱀이 그 간계로 하와를 미혹게 한 것 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렵다.”라고 했습니다. 이웃이 나를 괴롭힌다고 같이 싸우거나 미워하면 일시적으로는 마음이 후련할지 모르나, 결국 나에게 상처가 되고 사탄에게 길을 터주는 꼴이 됩니다. 이웃사랑은 내 힘만으로 하려면 안 됩니다. 구원자 되시는 예수님을 부르거나, 나의 아픔보다 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를 지고 가신 예수님을 바라보면, 이웃을 사랑하는 지혜가 생깁니다. 이것은 한 번에 성공하기 어렵습니다. 넘어지고 또 넘어져야 가능합니다. 즉, 훈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은 원수를 직접 복수하지 말고, 하나님께 맡기라고 말씀하십니다(롬12:19).

헬퍼스 하이(Helper’s High)라는 정신의학적 용어가 있습니다. 이 말은 남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은 기분이 좋아지는 현상을 뜻합니다. 미국의 내과 의사인 앨런 룩스는 ‘선행의 치유력(2001)’이라는 책에서 헬퍼스 하이라는 말을 사용했습니다. 실험해보니, 남을 돕는 사람 대부분은 남을 돕고 있을 때나 돕고 나서, 신체적으로 정서적인 포만감을 느낀다고 합니다. 선행이 인간의 신체에 몇 주간은 긍정적인 변화를 준다는 것입니다. 즉, 선행하면, 스트레스가 감소하거나 면역력이 향상되어 즐거운 마음이 된다는 것입니다. 결국 남을 사랑하는 것, 남을 돕는 것은 남에게 도움이 되지만, 나에게도 큰 도움이 된다는 것입니다. 사랑(선행)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서로 사랑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천국에는 사랑으로 모든 일을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픈 사람도, 병든 사람도, 늙는 사람도 없다고 합니다. 우리도 흔히 사랑이 묘약이라고 말하지 않습니까? 이웃에 어려운 사람들을 꼭 물질이나 행동으로 돕지 않아도 마음으로, 친절로, 존중함으로, 기도로 도울 수 있습니다. 사랑은 용서와 헌신의 따뜻한 마음이라는 것을 자녀들에게 가르쳐야 합니다.    
고려대 교육문제연구소 교수•안수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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