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보 연 교수
장 보 연 교수

오늘 학교교육 현장이 무너지고 있다. 선생님이 학생을 훈육했다는 이유로 학생은 선생님을 폭행하고, 훈육 받은 학생의 부모는 학교를 찾아와 선생님을 폭행하며, 갑질하는 세태가 되었다. 과거에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이렇게 교육현장이 무너지고 있는 것은, 학교교육이 인성교육에서 벗어난 결과이다. 또한 개인주의와 자녀의 과잉보호가 만연된 결과이기도 하다. 

분명 학교와 가정은 존경과 인성을 가르치는 교육현장이다. 헌데 오늘 학교교육은 성적순으로 아이들을 줄 세우고, 내가 너를 죽이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교육 현장이 되어버렸다. 그렇다보니 오늘 가정과 학교에서 배울 것이 없다고 흔히 말한다. 학생들은 학교에서 배울 교육 모두를 학교가 아닌 학원 등 사설교육기관에서 배운다. 

오늘날 성적순으로 줄을 세우는 학교교육이 왜 필요한지 모르겠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이다. 그렇다보니 학교에 가지 않아도 사설교육기관을 통해 성적만을 위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시대가 됐다. 그러면서도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의무적으로 정상교육을 받는 이유는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람이 되기 위한 인성교육 때문이다. 가정을 평생교육현장이고 말하는 이유이다. 학교는 가정교육의 보조기관이다. 

문제는 인성과 존경의 교육현장인 가정과 학교의 교육현장이 무너지고 있다는데 안타깝다. 이런 상황서 지인인 SNS를 통해 보내준 글은 오늘 교육현장에 대한 진한 감동을 준다. 어느 초등학생 소녀가 학교에 가자마자 담임선생님에게, 길에서 주워온 야생화를 내밀면서, 이 꽃의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선생님은 꽃을 한참 보시더니 말했다. 

"미안해서 어떡하지 선생님도 잘 모르겠는데 내일 알아보고 알려줄게"

선생님의 “잘 모르겠다”는 말에 소녀는 깜짝 놀랐다. 선생님은 세상에 모르는 게 없을 거라 믿었기 때문이다. 누구나 이 소녀처럼 초등학교시절 선생님은 모르는 것이 없는 영원한 스승으로 생각했다. 집으로 돌아온 소녀는 아빠에게 말했다.

"아빠. 오늘 학교 가는 길에 주운 꽃인데 이 꽃 이름이 뭐예요? 학교 담임선생님도 모른다고 해서 놀랐어요."

그런데 소녀는 오늘 두 번이나 깜짝 놀라고 말았다. 믿었던 아빠도 꽃의 이름을 모른다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소녀의 아빠는 식물학을 전공으로 대학에서 강의하는 교수였기 때문이다. 다음 날 담임선생님은 소녀를 불렀다. 그리고는 어제 질문한 꽃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소녀는 아빠도 모르는 것을 잊어버리지 않고 연구해서 알려준 선생님 역시 대단하다고 감탄했다.

그리고 소녀는 집으로 돌아와 아빠에게 “선생님이 대단하다”고 자랑했다. 아빠도 모르는 꽃에 대해서 선생님이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은 어젯밤 소녀의 아빠가 선생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그 꽃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었던 것이다. 아빠는 그 꽃이 무엇인지 당연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딸의 어린 마음에 선생님께 실망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어 모른다고 했던 것이다.

흔히 학교교육과 가정교육은 백 년의 약속이다고 말한다. 백 년의 미래를 위해 백 년의 시간을 준비하는 길고 긴 과정이 바로 교육이다. 가정 교육과 학교 교육이 잘 연계되고 조화를 이루어 가정에서는 스승을 존경하도록 가르치고 학교에서는 부모님을 공경하도록 가르치면 이상적인 인성교육을 할 수 있다. SNS를 통해 지인으로부터 받은 이 글은 오늘날 무너지는 학교교육과 가정교육의 현장에, 아이를 둔 부모들에게 진한 감동을 주고도 남는다.

굿-패밀리 대표•개신대 상담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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