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 인 찬 목사
황 인 찬 목사

춘원 이광수 선생이 도산안창호 선생의 전기를 쓰면서 부제를 붙이기를 “겨레를 깨우친 영원한 선각자”라고 했다. 도산선생에 대한 가장 적절한 표현이라고 여긴다. 우리 근세사에 도산 선생 같은 선각자가 있었다는 사실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도산 안창호(島山 安昌浩) 선생은 1878년 평안남도 강서(江西)의 대동강 연안 어느 마을에서 태어났다.

한학을 배우다가 서당 선배로부터 신식학문에 눈을 뜨고, 조국의 앞날을 염려하던 그가 17세 되던 해에 청일전쟁(淸日戰爭)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음을 보고 깨달은 바 있어 1895년 상경, 구세학당(救世學堂)에 들어가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내 땅에서 청국과 일본이 싸우는데 조선 백성들이 속절없이 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소년 안창호는 왜 청국, 일본의 외국 군대가 우리 땅에서 전쟁을 할까를 생각한 끝에 얻은 결론은 “타국이 마음대로 우리 강토에 들어와서 설레는 것은 우리나라에 힘이 없는 까닭이다”

이 생각이 도산의 생애를 결정지었다. 그는 1938년 57세에 일본경찰에게 당한 고문 후유증으로 순국하실 때까지 한 결 같은 생각이 어떻게 하면 겨레의 힘을 기를 까였다. 도산이 다른 선각자들과 달랐던 점은 겨레의 힘을 기르는 방략(方略. strategy)에서 달랐다.

같은 시대의 독립운동가들 중에서도 조국의 독립을 쟁취하려는 방략에서 여러 가지로 차이가 있었다. 김구선생은 무력항쟁에서 길을 찾았고, 이승만박사는 외교로 조선독립을 이루려 하였으며, 이승훈선생, 조만식선생 같은 분은 산업을 진흥시켜 겨레의 부력(富力)을 높여 자주독립의 길을 찾으려 하였고 김교신 선생은 바른 신앙을 길러 민족자주독립의 길을 찾으려 하였으나 도산 선생은 일관되게 ‘인격의 힘’을 주창하였다. 

조선이 진정한 자주 독립국가가 되려면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바른 인격을 길러 인격의 힘으로 진정한 독립 국가를 이룰 수 있다고 주창하였다. 도산 선생은 자신이 먼저 건전한 인격자가 되는 데에 전심을 다하였다. 도산선생의 생전에 가까이서 모셨던 분들의 말에 의하면 선생은 인격적으로 거의 흠이 없는 어른이었다고 전한다.

그리고 도산선생은 인격의 힘을 기르기 위해 수양동우회(修養同友會)를 결성하였고, 흥사단(興士團)을 일으켰다. 요즘 들어 너 나 할 것 없이 도덕성이 흔들리고 인격의 힘을 잃은 때에 도산선생 같으신 큰 어른이 더욱 간절하다.

도산(島山)선생이 미국유학을 떠난 것은 1903년 그의 나이 25세 때였다. 그때는 조선을 삼키려는 일본제국주의의 야욕을 감추지 않고 드러내던 때였다. 선생은 생각하기를 "겨레의 힘을 길러야 한다. 겨레의 힘을 기르려면 국민교육을 하여 깨우쳐야 한다. 바른 교육을 통해 바른 정신을 지닌 국민으로 길러내는 것이 겨레의 힘을 기르는 기본이다."

이런 생각을 가진 선생은 선진교육을 배워 오기 위해 미국으로 떠났다. 

미국 센프란시스코 항에 도착하여 여장을 푼 선생이 시내를 돌아보는데 조선인 두 사람이 길 한복판에서 상투를 틀어잡고 싸우고, 백인들이 싸움구경을 하며 즐기는 모습을 보고, 민족적인 수치심을 느낀 청년 도산이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어 싸움을 말리며 말했다.

"동포님들, 나라는 왜적에게 먹힌 때에 이 멀고 먼 이국땅까지 와서 어찌 싸움을 벌이시오?" 알고 보니 인삼행상을 하는 그들이 구역을 침범했다는 이유로 싸운 사유를 알 수 있었다. 도산은 국민정신이 정직하고, 부지런하고, 동포를 사랑하는 의식으로 바꾸기 전에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음을 알게 된 도산은 다음 날부터 조선 동포 한 사람 한 사람, 한 집 한 집을 찾아다니며 대화를 나누고, 그들의 민족적 자존심을 깨우치는 일에 헌신하였다.

당시 조선인들은 몇 푼 벌면 술을 마시고, 밤중에도 고성방가(高聲放歌)를 하며 마당에 잔디도 깍지를 않아 풀이 무성하여 조신인 들의 집은 마치 흉가(兇家)와 같았다. 이에 도산 선생은 조선인들의 가정 가정을 방문하여 잔디를 깎아주고, 페인트칠을 하고 커튼도 달아주며 대화를 통해 민족정기를 일깨워주어 일등시민(一等市民)이 되는 의식을 일깨우기에 힘썼다.

처음에는 반발도 있고, 오해도 심하였으나 끝내는 선생의 진심을 알고 조선인 사회가 변하기 시작하였다. 예나 지금이나 민심(民心)은 마찬가지이다. 누군가 한 사람이 앞장서서 희생하고 본을 보이면 처음에는 빈정거리기도 하고, 반대도 하다가 진정성(眞情性)이 통하면 결국은 인정하고 따르기 마련이다. 이 시대 한국교회에 도산 선생 같은 인격적 선각자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때이다.                                                  
의왕중앙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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