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서(戀書)

마지막 식사일 줄 모른다는 생각으로 생오이 고추장 찍어 꾸역꾸역 밥 말아 먹었습니다 마지막 하룻밤일 줄 모른다는 생각으로 보리차에 스틸녹스 씹으며 아득한 잠 청하였습니다 운 좋게 깨어난 아침이면 마지막 강의일 줄 모른다는 생각으로 목청껏 푸른 보드마커 잡았습니다 마지막 봉급일 줄 모른다는 생각으로 우두커니 자동입출금기 앞에 서곤 하였습니다 마지막 눈물일 줄 모른다는 생각으로 남몰래 실컷 울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시(詩)일 줄 모른다는 생각으로는 한 줄의 시행(詩行)조차 쓸 수 없었습니다 

문 현 미 시인
문 현 미 시인

마이너스통장에 올무 걸렸던 때가 있었다. 언제쯤 어둠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막막했다. 오늘이 누추의 마지막 날이 되기를 바라는 순간마다 기도에 매달리곤 했다. 마지막이라는 이 비장한 단어를 대하면 자동적으로 움츠러든다. 좀처럼 쓰기 쉽지 않다. 살면서 이런 절체절명의 찰나에 맞닥뜨릴 때가 얼마나 자주 있겠는가. 아주 간혹 그런 사건이나 상황에 직면하면 마지막을 떠 올릴 수 있다. 

“마지막”이라는 시어가 음악처럼 되풀이되는 시에서 시인이 선택한 제목은“연서”다. 역발상의 상상력 앞에서 잠시 긴장과 흥미가 교차된다. 시의 전반을 지배하는 수식어 “마지막”의 무게가 묵직하다. 식사를 하면서 마지막을, 잠자리에 들면서 마지막을 생각하는 처절한 시간이 폐부를 찌른다. 한해의 마지막 달인 12월을 보내며 시를 읽는 마음에 잔잔한 파문이 인다. 의미 깊은 시 한 편으로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고 멈춤으로써 깨닫게 되는 생의 비밀 한 가닥을 붙잡을 수도 있다.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중심축을 이루는 시에서 왜 제목이 연서일까. 궁금증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지금 혹은 여기가 마지막이라면 지나간 것에 대한 연민과 애착이 생기게 된다. 또한 그 순간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다짐 혹은 아름답게 엔딩을 맺고 싶은 마음이 솟구친다. 그러기에 주어진 모든 것에 대하여 진정으로 연서를 쓰게 될 것이다. 생에 대한 유한 의식과 숭고한 의지가 절묘한 균형을 이루면서 미학적 성취를 얻어내는 시편이다.  

누구는 앞만 보며 질주하고, 누구는 멈추어 서서 돌아다보는 생이다. 어떤 형태로든 살아내야만 하기에 견뎌야 하고 이겨내야 한다. 한 번 뿐인 생을 허투루 살 수는 없다. 마지막 시일 거라는 생각 속에서“한 줄의 시행(詩行)조차 쓸 수 없었습니다”라는 고백이 겸허한 태도로 이끈다. 시에 대한 이런 자세는 뜨거운 열정을 지닌 겸손의 마음에서 비롯된다. 그렇게 충일한 지극 정성으로 시를 쓰고 그대를 그리며 새해를 맞고 싶다. 

백석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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