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종 문 목사
원 종 문 목사

우리는 대림절 마지막 주를 보내고 성탄절을 기다린다. 혹 다시 오시는 아기 예수의 길을 우리 믿는 자들이 가로막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심히 걱정스럽다. 분명한 것은 닫힌 마음의 문을 열어야 다시 오시는 아기 예수를 맞이할 수 있다. 성경 이사야 62장10절에서 12절에 “성문으로 나아가라 나아가라 백성이 올 길을 닦으라 큰 길을 수축하고 수축하라 돌을 제하라 만민을 위하여 기치를 들라/여호와께서 땅 끝까지 선포하시되 너희는 딸 시온에게 이르라 보라 네 구원이 이르렀느니라 보라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 앞에 있느니라 하셨느니라/사람들이 너를 일컬어 거룩한 백성이라 여호와께서 구속하신 자라 하겠고 또 3)너를 일컬어 찾은 바 된 자요 버림받지 아니한 성읍이라 하리라”고 기록되어 있다.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는데 않은 힘이 들었다. 하나님은 힘겹게 사는 이들을 위해서 길를 내라고 하신다. 성경은 예루살렘 성전으로 나가 만민을 위해서 길을 넓히라고 한다. 공동체를 위해서 헌신하라고 한다. 이사야는 자기들만을 위한 꿈을 깨고, 만민을 위해서 일하라고 한다. 세례 요한도 광야로 나가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을 결박하는 제도를 향해 소리쳤다.(히부리서 11장 32-12장2절)

요한은 하늘에서 보내는 메시지를 인지했다. 요한이 외친 소리는 가난한 이들의 탄식이며, 억울한 이들의 신음소리였다. 믿음이 왜곡되고, 변질된 시대에 “믿음의 주, 온전케 하시는 주, 예수님을 바라보자”고 외친다. 오늘날처럼 믿음을 강조하고, 믿음이 넘치는 시대도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믿음의 주는 사람이고, 믿음의 욕구들만 난무하다. 

그분의 실상, 고난의 삶은 없고, 그분이 베푸시는 표적의 화려함만이 난무하다. 교회도 불교와 마찬가지로 썩어가고 있다. 거대한 예수상을 만든다고 떠들어댄다. 모두가 교권주의와 교리주의자가 됐다. 낮은 자리에 오신 예수님의 정신은 죽어가고, 모두가 명예와 권력을 탐한다. 모두가 외형적인 것에만 심혈을 기울인다. 이것은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교리를 믿는 것이다. 모두가 교리에 갇혀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다. 입으로 믿음을 말하면서, 눈에는 권력과 명예와 외형만 보인다.

오늘 우리사회는 빈부격차가 그 어느 때보다도 심각하다. 60-70년대 젊은 사람들은 내일은 잘 살 수 있다는 꿈을 가지고 열심히 일했다. 그러나 이런 꿈은 사라졌다. 노동자들은 분노에 차 거리로 나온다. 힘 있는 자가 약한 자를 괴롭힌다. 이제 우리사회는 승자만이 있다. 강한자만이 보인다. 모두 가던길을 멈추고 돌아서지 않으면, 다시 오실 아기 예수의 길을 막고 말 것이다. 대림절, 우리는 광에서 외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 

불의가 날뛰는데도 구경꾼이 되어 뒤공론만을 하는 것도 복음의 확산을 가로막는 요인이 된다는 사실. 마음을 비우면 보이지 않던 것도 보인다. 메시야의 강림을 기다리는 우리는 약한자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것이 오늘 한국교회가 해야 할 일이다. 어떤 사람은 100살 넘게 살아도 국민의 어려움에 대해서 말 한마디 않는다. 오래사는 것이 복이 아니라, 사람답게 사는 것이 복이다. 모두 무기력과 무관심에서 깨어나자.          

예장 통합피어선 증경총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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