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 인 찬 목사
황 인 찬 목사

저 지난 해에 분주하게 살다가 고구마 순을 심는 때를 놓이고 끝자락에 놓였었다. 어떻게 해서 일정을 조정하고는 200여 평 남짓 되는 고구마 심을 밭을 찾았다. 

첫날 밭에 굼벵이와 땅을 보호하는 소독제를 뿌리고, 고구마 전용 복합비료 용과린과 염화과리를 밭에 미리 뿌린 후에 동네 이장님에게 부탁해서 밭을 갈고, 이랑을 만들고 그 후 부터는 내 일이다. 

이랑을 쇠스랑이로 다듬어 검은 비닐을 씌우고, 순을 심는 일을 새벽기도 후부터 그 긴 6월해가 지는 시간까지, 무려 15시간도 더 되는 동안, 저녁녘에는 발을 끌며 일을 했다. 어제부터 노동으로 하루를 보내니 사는 맛과 멋을 느낀다. 진작 이렇게 살고 싶었다. 노동에 대한 경외심을 갖는다. 셋째 날은 아침부터 낫과 톱을 들고 풀베기, 나무 베기, 그리고 밭에서 골라낸 돌들을 치우는 일 등에 열중하니 몸도 마음도 평화롭기 그지없다. 넷째 날은 고구마 밭 주변과 밭의 빈자리, 둔덕에 동네 아주머니가 주시는 서리 태 콩을 심었다. 처음에는 씨앗 콩으로 한 되가량이나 주셔서 이것을 다 심을 수 있을까 싶었는데 돌아가며 심기에 충분했다. 

온종일을 땀 흘리며 일하니 마치 신선 노름인 듯이 마음이 평화롭고 여유롭다. 노동으로 하루를 보내며 얻어지는 것이 참 많다.

노동은 건강에 미치는 유익이 있다.

인류는 원래 긴 세월 산과 들에서 노동을 하며 살아왔다. 그래서 우리들의 DNA 속에는 적절한 노동을 할 때 몸과 마음에 균형이 잡히고, 행복감을 느낀다. 이 시대처럼 노동을 하지 않고 의자에 앉아 머리만 쓰게 되니 온갖 성인병에 시달리게 된다. 우울증 같은 정신질환은 십년마다 두 배로 늘어나고 있다고 전한다. 그러나 웬만한 마음의 병과 육신의 병은 육 개월 정도 열심히 노동을 하게 되면 씻은 듯이 사라진다.

노동은 잡념이 사라지고 근심에서 벗어나는 유익이 있다.

삽으로 밭의 둔덕을 쌓고, 낫을 들고 주변의 풀베기를 열심히 하노라면 마음이 단순해지고 염려 근심에서 해방을 받는다. 숲의 새소리, 물소리를 들으며 노동에 집중하노라면 영혼도 마음도 순수해지는 것을 실감한다.

노동은 생각을 깊게 할 수 있는 유익이 있다.

대체로 우리네 노동은 단순노동이다. 단순노동은 생각에 몰두할 수 있게 해 준다. 노동시간에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은 채로 생각에 생각을 이어갈 수 있다. 이 시대는 사람들로 생각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빼앗아 갔다. 자신의 하는 일을 깊은 생각 없이 되풀이 하다 보면 나중에는 자신이 어디에 와 있는지, 왜 여기에 있는지 조차 모르게 된다. 그래서 생각을 깊게 할 수 있게 하는 노동하는 시간이 행복하다.

노동은 노동 중에, 그리고 그 후에 먹는 식사의 밥맛을 꿀맛이 되고 한다. 그리고 깊은 단잠을 자게 해 준다. 그래서 노동은 행복을 선물한다. 사람들은 소화불량을 말하고 불면증을 말하는 것은 흙에서 멀어지고 노동에서 멀어진 탓이다. 흙을 밟고 서서 노동하는 사람들에게 소화불량이나 불면증은 딴 나라의 이야기다.

노동은 맑고 깊은 영성의 세계로 이끌어 주는 유익이 있다. 그러기에 동서양의 영성가들은 노동을 영성수련의 필수과목으로 삼았다. 침묵 가운데 노동에 몰입하는 중에 마음 깊은 곳으로 임하는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느끼고 누리게 된다. 그래서 마음에 넘치는 기쁨과 행복감을 체험케 하여 오늘 행복을 누리는 하루를 보냈다. 노동으로 하루를 보낸 덕분이다.

가족들은 나의 노동을 이해하지 못한다. 고구마도, 콩도 사먹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라며 농사짓는 일을 말린다. 작은 경제적 상황만으로는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노동의 신성성을 알지 못할 때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이다. 

몸이 허락하는 한가한 틈을 타서 노동에 열중한다. 적당히 땀을 흘리며 노동에 열중하고 나면 몸도 마음도 가뿐하기 그지없다. 그래서 노동은 우리들에게 행복감을 준다.

작년은 가족들과 성도들의 제제로 농사를 짓지 못했다. 하지만 내년은 이 노동의 보람됨과 즐거움을 빼앗기지 않으리라.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요 5:17)  
                                       
의왕중앙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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