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보 연 교수
장 보 연 교수

유대인은 하나님이 직접 통치하는 세상을 갈망했다. 이것이 메시아사상이며, 시온사상이다. 이스라엘민족은 시온사상, 메시아사상으로 위로를 받고, 고난을 헤쳐나갔다. 예수님은 정치, 경제, 사회 등 매우 어려운 시기에 태어났다. 예수님은 좋은 자리를 모두 기득권자들에게 내어주고, 짐승 곁, 말구유에서 태어났다. 그럼에도 예수님의 탄생은 하늘에는 영광이며, 땅에는 평화였다. 

마태복음 2장1-12절에을 보면, 여호와의 영광이 내 위에 임했다고 했다. 이사야 60장 1-7절의 시온사상은 이웃나라, 인류 모두에게 빛을 발하라고 한다. 이방인들이 성전에 재물을 받쳐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이웃나라와 함께 어울려 살며, 평화를 이루라고 한다. 세계를 향해 열린 마음을 가지라고 한다. 한마디로 고난을 당하더라도, 삶이 힘들고 어렵더라도 희망을 가지라는 것이다.

오늘 대한민국의 주변나라들의 모습을 보면,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중국은 대국의식이 강하고, 일본은 식민지 지배의식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소련 역시 대국의식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이런 의식을 가지고 있는 한 인류의 평화는 없다. 이사야는 이런 의식을 버리고, 이웃국가와 함께 평화를 이루고 살라고 한다. 

이사야 11장 6-8절은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거하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찐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젖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고 공의로 그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 몸의 띠를 삼으라고 한다. 

이런 세상은 두려움이 없는 세상이며, 포식자들이 없는 세상이다. 국민을 노예로 삼지 않는다. 포식자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요즘 가진자들을 보면 가관이 아니다. 이웃, 이웃나라가 잘되는 모습을 보지 못한다. 정적이 살아 있는 것을 보지 못한다. 그렇다보니 새로운 세상이 열렸어도 국민은 희망이 없다. 세계민족 역시 새로운 세상이 보이지 않는다. 

이사야는 암울하고 곤궁한 이스라엘 민족에게 시온사상으로 희망을 가져다가 주었다. 절망이 감도는 한 밤중에 아기 예수가 탄생했다. 동정녀에게서의 아기 예수의 탄생은 곤궁한 이스라엘 민족에게 희망으로 다가 왔다. 동정녀의 탄생은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을 하나님이 함께 하셨다. 이사야와 마태는 밤하늘의 별처럼 희망을 말한다. 

그리스도인들에게 복음의 빛으로 살라고 한다. 복음을 믿는자는 하나님의 유업을 이어받은 상속자이다. 율법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은 복음 앞에서 움츠려 들 수밖에 없다.  복음 앞에서는 백인이나, 흑인이나, 부유한 자나, 가난한 자나 모두가 하나님의 자녀이다. 

세계민족 모두가 복음아래 살라는 것이다. 복음을 믿고 사는 자는 행복하다. 때문에 인간 모두는 복음을 받고 기다려야 한다. 복음은 성숙한 인간이기를 포기하고 살아가는 인간에게 희망의 빛으로 다가온다. 메시아의 탄생은 한마디로 복음이다. 기쁜소식이다. 

소돔과 고모라는 의인 10명이 없어 사라졌다. 악이 범람하는데 저항하는 10사람이 없어 망했다. 착하게 오래 사는 것이 복이 아니다. 예수님을 꺽어 버리려고 했던 것은 사탄이었다. 헤롯은 예수를 죽이려고 했다. 의인 10명이 없어 소돔과 고모라는 지구상에서 영원히 없어졌다. 양떼가 이리떼에게 끌려갈 때, 이들을 보호해야 하는 것이 목자가 해야 할 일이다. 

사탄은 언제나 천사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오늘 기득권자, 권력자, 강대국은 천사의 모습을 보인다. 오늘날 이웃국가의 침략으로 고난당하는 이들, 코로나19로 힘겹게 살아가는 이웃, 노동만을 요구당하는 노동자들에게 주님의 빛으로 위로하자. 그리고 주님의 빛으로 세상을 비추자.      
      
굿-패밀리 대표•개신대 상담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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