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묘년 새해를 맞았다.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모두가 새로운 희망을 갖고, 계묘년을 시작했다. 하지만 언론에 보도되는 기사들을 보면, 양심·인격·윤리·자유·평화와 같은 단어들을 부끄럽게 만든다. 맘몬을 구축 할 수만 있다면, 쾌락을 즐길 수만 있다면, 폭력을 가하고, 생명을 위협한다. 유흥비용을 마련하려고 스스럼없이 강도가 된다. 국민들의 삶은 곤궁한데 정치인들은 민생은 내팽개치고 정쟁만 일삼는다.

교단의 지도자 역시 돈만 따라 다닌다. 모두가 유대주의자가 되어 안식일을 지킬 수 없는 가난하고 소외된 보잘 것 없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지 못한다. 모두가 자기 안일과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회가 되었다는데 참담하다. 내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내가 편해지기 위해서,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서 너를 죽이는 사회가 되었다. 소돔과 고모라보다도 음란한 세대가 아닌가.

모두가 자기를 위해서 산다. 혼자만 살겠다고 아우성친다. 남의 형편이나 처지를 생각 할 여유가 없다. 내가 앞서기 위해서 남을 가차 없이 짓밟아버려야 한다. 모두가 자기만을 섬기며 산다. 모두가 자기를 하나님으로 삼는다. 모두 자기에 대한 우상숭배자가 되었다. 자기 외에는 심각하게 생각할 것도 없다. 모두가 이단자가 됐다.

우리는 1인의 웃음과 안락을 위해 1만인이 눈물과 피를 흘려야 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자기만을 생각하고, 이웃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이 세상은 지옥으로 변해가고 있는 것이다. 이 세상에 죄 없는 자가 하나도 없다고 했다. 이 세대에 나는 죄 없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 자는 없다. 거룩하다고 말하는 성직자들은 더더욱 그렇다.

이 세대에 일어나는 추악한 범죄는, 이 세대를 지배하고 있는 구조 악에서 비롯되었다. 바울은 아담의 범죄로 온 인류에게 죄가 들어와 인류를 지배하게 됐다고 말했다. 온 인류는 모두 죄 아래 있다.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추악한 모든 범죄에 대해서 우리는 공범자이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 안에서 새 인간으로 태어났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안에 있는 진리를 예수 안에서 배웠다. 귀가 따갑도록 들었다. 평생을 교육받았다. 바울은 옛 생활을 따르는 낡은 인간성, 곧 정욕에 속아 썩어져 가는 옛 인간성을 벗어버리고 마음이 새로워져서 의와 거룩함으로 지으심 받아 하나님의 형상을 본뜬 새 인간성을 입으라고 말지 않았는가.

옛 인간은 증오의 인간이었다. 예수는 사랑의 인간이었다. 사랑받을 수 없는 인간들을 극진히 사랑했다. 십자가는 내가 아닌 다른 모든 사람을 위한 고난의 상징이다. 십자가는 지극한 아가페 사랑의 표징이다. 예수를 통해 사랑을 배운 인간은 옛 인간성을 벗어버리고 새 인간으로 태어나야 한다.

우리는 예수를 통해 사랑과 평화, 남을 위해서 사는 방법을 배웠다. 빛의 자녀가 됐다. 고통당하는 자들을 위해서 살아야 한다는 교육도 받았다. 범사에 항상 쉬지 말고 감사하고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교육도 받았다. 그런데 우리는 그렇게 살지를 못했다. 말만 앞세우고 행동하지 못했다.

계묘년 새해 새 인간으로 태어나야 한다. 혼자의 힘으로는 새 인간이 될 수 없다. 우리의 마음은 돌로 만든 떡을 먹고 돌덩어리가 됐다. 바위 덩어리가 마음을 짓누르고 있다. 그리스도는 절대로 닫혀진 인간의 마음에 머물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그리스도는 계묘년 새해 우리의 마음 문을 열고, 슬피우는 자, 고난당하는 자의 현장에로 부른다.

그리스도는 편견과 욕심 때문에 멀었던 눈을 뜨게 하고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을 보게 하고, 아집과 무관심 때문에 막혔던 귀를 열어 죽임당하는 자들의 한의 소리, 전쟁과 기아로 고통당하는 민족의 아우성을 듣게 하신다. 그리스도는 인간들 사이에 막힌 담을 헐어버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평화를 이루게 하신다. 이 만남 속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 새 인간으로 거듭난다는 진리를 깨닫자.

저작권자 © 기독교한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