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 성 길 목사
권 성 길 목사

가을이란 빛바랜 나뭇잎들이 하나둘 바람에 날려 흩어지는 계절이라고 우리는 부른다. 이때가 도면 모두 고독이라는 계절병을 앓는다. 일 년에 한 번씩 누구나 앓아보는 중병(重病)들, 가을은 고독하다고, 외로워 못 견디겠다고, 이런 강정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자연과 더불어 사는 인간은 항상 자연의 변화 속에서 인생의 의미를 터득해 나가고 자기 운명을 점검해 나가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인간도 자연도 마치 암 3기처럼 더욱 철저한 고독을, 그 마지막 나뭇잎마저 다 떨어져 버린 앙상한 골격만 남은 나뭇가지들, 이 얼마나 무서운 고독의 풍경이랴. 우리는 저 노화가(老畫家) 버어먼의 ‘마지막 잎새’ 이야기를 알고 있다.

그 마지막 담장이 넝쿨마저 다 떨어져 버리고, 그 삭막한 담벼락에 기어 올라가서 급성폐렴을 앓는 소녀를 위하여 마지막 한 잎의 모조화(模造畵)를 그려주던 비어먼, 그리고 이마저 가버린 삭막한 계절, 이때가 되면 우리는 오직 먼먼 옛날을 전설처럼 되씹고 산다. 이런 계절에 순교자처럼 고달픈 인종(忍從)으로 과거완료형의 먼 기억만을 되씹으며 훗날의 해빙(解氷)을 기다려야 하는 나목(裸木)들이 고독을 무엇에 비할 수 있으랴.

우리는 이러한 계절이 되면 모두 따뜻한 안방에 들어앉아 기나긴 이야기의 꽃을 피우며 다시 생명의 계절을 기다린다. 그러니 우리가 진정 자연을 바라보며 인생의 의미를 알고 우리의 운명을 말하고 싶거든 방 속에만 갇혀있을 일이 아니다. 

자연은 우리에게 항상 더 많은 비밀을 암시해주는 철학자와 같은 것, 자연의 가르침에는 조금도 거짓이 없다. 다만 그의 계시(啓示)를 알고자 노력하는 사람에게만 친절하게 그의 모든 슬기를 인간에게 나눠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자연이 깊이 잠든 듯한 계절, 자연이 가장 가혹한 고독의 시련을 겪는 계절에 자연을 방문하고 자연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도 뜻있는 일이 아닐까?

봄 여름 가을 우리는 모두 자연을 찾는다. 그러나 겨울만은 우리가 모두 자연을 외면하고 자기 집 울안에 웅크리고 앉아 겨울이 가버리길 기다린다. 하지만 이 인생, 이 세계, 이 우주의 진실을 더 분명하게 알고 싶거든 우리는 아무도 찾아가지 않는 겨울의 자연을 찾아가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묘지와 같은 빈터로 발길을 옮겨 보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거기서 고적(古蹟)처럼 공허한 발자국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낭만적인 센티맨탈리즘(감상주의)의 무드(분위기)라도 지닌 가을의 고독을 「문학소녀의 고독」이라고 한다면 겨울의 고독은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이제는 돌아와 겨울 앞에」 앉아서 주름살을 만지는 누님의 고독이요, 이제는 잊어도 좋은 이야기들을 전설처럼 회상하고 있는 「노년의 고독」일 것이다. 

노년의 고독…. 그것은 모든 흥분이 사라져버린 날의 고독이다. 겨울, 그것은 이미 그처럼 부끄러운 사춘기(봄)도 지나고 정열의 난숙기(여름)도 지나고 몸부림치는 갱년기(가을)도 지나 이젠 고요히 예일만을 반추하며 체념해버린 니힐리즘의 계절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좀 더 참된 인간의 모습을, 그 뼈저린 고독의 진실을, 죽음 같은 허무를 실감케 해주는 겨울은 우리 인생에 있어서 얼마나 소중한 철학의 계절이랴!

인간은 자연 소에서 살고 있다. 인간도 자연에서 나서 자연으로 돌아간다.

그렇다면 우리가 우리의 진실을 더 많이 알고 싶거든 저 삭막한 들판에 나가 나뭇잎 하나 없는 내복(裸木)들의 슬픈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줄 알아야 할 것이다.

새세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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